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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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I am become death, the destroyer of worlds(나는 이제 죽음이자, 세계의 파괴자가 된다)”

미국을 현재의 세계 최강국 반열에 올린 원자폭탄의 아버지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Julius Robert Oppenheimer)’ 박사가 원자폭탄의 개발에 대해 남긴 감상이자 회한(悔恨)이다. 수십만 혹은 수백만의 사람을 일순간에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할 수 있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살상무기를 만들어 낸 그의 업적은 그야말로 역사를 바꿨다.  

그러나 영화 <오펜하이머> 속의 오펜하이머 박사는 한없이 연약하고 작은 사람으로 묘사된다. 작품에서 그는 한없이 열등감에 시달리며 사람들에게 쉽게 상처받고 괴로워한다. 아울러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감과 죄책감 사이에서 고뇌하기를 반복한다.  

작품은 2차대전 당시 미국의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 ‘맨해튼 계획’을 총지휘한 오펜하이머의 삶을 깊이 있게 다룬 전기 영화다. 도서로 출간돼 퓰리처 상을 수상한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의 내용을 원작으로 한다.

영화는 하나의 시간대가 아닌 세 개의 시간대로 나뉘어 흘러간다. 오펜하이머의 학창시절에서 맨해튼 계획으로 이어지는 스토리가 메인이며 1954년에 원자력 협회에서 벌어졌던 오펜하이머 청문회, 그리고 흑백화면으로 보여주는 1959년 루이스 스트로스의 청문회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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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다른 시간대를 교차되면서 한 사람의 인생이야기로 귀결되는 서사는 세계적 거장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역량을 잘 보여준다. 여기에 핵 실험 폭발 장면을 CG없이 구현해 낸 스케일과 화려한 영상미, 배경음악의 섬세한 배치는 극의 다양한 재미를 더한다. 특히 핵폭발 장면에서는 일순 모든 소리가 소거되고, 섬광과 버섯구름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이후 뒤늦게 들이닥치는 굉음과 충격파는 핵무기의 파괴력과 폭력성을 매우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핵폭발의 새하얀 섬광이 오펜하이머의 얼굴을 비추고 그가 넋을 놓고 섬광을 바라보는 장면은 본 작품의 하이라이트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종장임과 동시에 오펜하이머의 가치관과 심경이 변화하는 대목이다.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펜하이머의 고통과 고뇌를 끊임없이 보여준다. 그는 나치 독일이 핵무기를 먼저 개발해 대량 학살에 사용하는 것을 경계해 맨해튼 프로젝트에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자신의 발명품에 최소 20만명이 죽게 된 사실을 알고서 희생자들의 환각을 보며 괴로워한다. 영화는 오펜하이머가 마주하는 여러 고난들을 통해 냉전 시대의 광기 어린 매카시즘과 이데올로기 전쟁이 한 사람을 파멸로 몰아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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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용 외적으로는 화려한 출연진들이 돋보인다. 오펜하이머를 연기한 킬리언 머피를 비롯해 <아이언맨> 시리즈로 슈퍼히어로 영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첩보 영화의 교과서 <제이슨 본> 시리즈의 맷 데이먼 그리고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故프레디 머큐리를 완벽하게 되살려낸 라미 말렉까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특유의 스토리텔링이 늘 그러하듯 <오펜하이머> 역시 내용보다는 메시지와 작품성이 강조된다.  그렇기에 장장 세 시간에 이르는 긴 상영시간 그리고 수많은 인물들의 긴 대화로 극이 전개되는 시간이 늘어지는 느낌이 있다. 이는 빠른 전개의 상업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아주 소소하게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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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현대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