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이 국내 건설업계 시공능력평가에서 10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주택경기 침체 영향에 아파트 사업을 주로 하는 대형건설사들의 순위는 지난해와 같거나 주저앉았다.

국토교통부는 전국 8만여 건설사를 대상으로 공사실적·경영상태·기술능력·신인도 등을 종합평가한 ‘2023 시공능력평가’ 결과, 삼성물산 시공능력평가액(토목·건축공사업)이 20조7296억원으로 1위를 기록했다고 31일 밝혔다. 다만 지난해(21조9473억원)와 비교하면 5.5% 감소했다.

2위는 현대건설(14조9791억원)로 지난해보다 시평액이 늘어나 삼성물산과의 격차를 좁혔다. 3위 대우건설과 4위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해보다 3계단씩 뛰었다.

양사 모두 영업이익과 재무건전성 등을 기준으로 한 경영평가액은 줄었다. 대신 신인도평가액이 30% 가까이 급증했고 나머지 평가액(공사실적, 기술능력)도 늘었다.

양사 간 시평액 차이는 지난해 약 1119억원에서 올해 323억원으로 약 72% 축소됐다. 대우건설의 공사실적‧기술능력 평가액이 작년보다 각각 5.0%, 2.2% 증가하는 동안 현대ENG는 18.5%, 9.7% 늘어난 영향이다.

현대ENG 관계자는 “산업생산시설 공사 실적(업계 1위)과 기술 능력 평가액의 증가 등이 순위가 오르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사업의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고 있다”며 “과거 70% 가까이까지 갔던 아파트 사업 비중이 최근엔 55% 수준으로 떨어졌다. 앞으로 비주택 사업의 비중이 더 커질 것”이라고 했다. 대우건설은 최근 부채 비율도 급감하고 있어 경영평가액 항목에서 향후 더 높은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DL이앤씨(3위→6위)와 포스코이앤씨(4위→7위)는 순위가 떨어졌다. 포스코이앤씨는 전체 사업 중 건축이 차지하는 비중(1분기 기준)이 42.1%로 현대ENG에 이어 10대 건설사 중 특히 낮다. 그럼에도 순위가 하락한 이유는 주택 사업 비중과 별개로 유동성 확보와 안전, 신사업 추진에 투입한 자금때문에 경영평가액이 줄었기 때문이다.

10대 건설사 관계자는 “포스코이앤씨가 최근 금융 위기에 대비하기 위한 차입금과 안전 및 친환경 관련 예산에 돈을 많이 들여 이익률이 떨어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음으로는 8위 롯데건설, 9위 SK에코플랜트 차례다. 11위 HDC현대산업개발과 10위 호반건설은 자리바꿈을 했다. HDC현산의 시평액 하락 폭(-24.7%)은 DL이앤씨(-4.1%)와 포스코이앤씨(-6.4%)보다 크다.  

5대 건설사 관계자는 “현산은 지난 1분기 (외주) 주택 사업 비중이 45.8%로 2021년(72.8%)보다 급감했지만 이는 주택 비중을 줄이기 위한 노력 때문이 아니라 2021~2022년 광주 학동과 화정동에서 일어난 붕괴 사고때문에 나타난 타격에 불과하다”며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비중이 줄어드는 추세가 아니라 일시적으로 떨어진 것이고, 다시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호반건설은 HDC현산의 시평액이 미끄러지며 어부지리로 10위권에 올랐단 게 업계의 분석이다.

20위권 건설사 관계자는 “10위권 건설사 가운데 토목 사업을 하지 않고 주택 사업에 치우친 데다 한국보다 주택 경기가 상대적으로 나은 해외에서 사업을 하지 않는 곳은 호반건설이 유일하다. 이런 예외 사례를 제외하면 주택 사업 비중과 시평액 순위가 어느 정도 반비례하는 게 맞다”면서도 “호반건설은 순위는 높지만 정부의 공식적인 기준에 따르면 대기업이 아니라 기타 법인에 해당하는 곳이고, 이 회사가 잘해서 10위권에 들어온 게 아니라 HDC현산의 시평액이 급감해 얼떨결에 진입했단 게 업계의 시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10위인 호반건설과 9위인 SK에코플랜트의 시평액 차이는 1조원이 넘는다. 호반건설의 시평액 증가보단 HDC현산의 하락이 더 큰 요인인 것이다. 호반건설에서 현재 진행하는 사업이 과거보다 줄어든 점도 앞으로 순위가 떨어질 수 있음을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10위권 밖에서는 12위 한화 건설부문과 13위 DL건설이 지난해와 순위가 뒤바뀌었다.

한화 관계자는 “최근 토목건축 공사실적이 약 7500억원 증가한 점이 시평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중흥토건은 지난해 18위에서 올해 15위로 3계단 상승했다. 업계에 따르면 중흥토건은 호반건설에 못지 않게 주택 사업 비중이 높은 회사인데 이와 별개로 기존에 순위가 높았던 회사들의 시평액 감소가 영향을 미쳤단 게 업계 분석이다.

중흥토건 관계자는 “회사의 시평액이 소폭 증가한 게 순위 상승에 영향을 미쳤지만 다른 건설사들의 평가액 감소도 영향을 줬다”며 “지난해에 15위(올해 21위)였던 금호건설(2조5529억원→2조3463억원)의 시평액과 중흥토건(2조2934억원→2조6498억원)의 올해 시평액은 비슷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9위와 10위 건설사의 시평액 격차가 조 단위인 것과 달리 양사의 평가액 차이는 3000억원 수준에 그친다. 이에 해외 토목 공사 비중이 특히 높은 쌍용건설(33위→28위) 등 일부 건설사를 제외하면 순위가 밑으로 내려갈수록 건설사 내 사업 부문 비중보단 타 회사의 시평액 변동이 순위에 영향을 미쳤다.

30위권 건설사 중 순위가 급등한 아이에스동서(37위→23위)에 대해서도 내년 평가에선 순위가 다시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올해 시평액은 2020~2022년 실적을 기준으로 평가한 것”이라며 “이런 의미에서 아이에스동서는 지난해에 중요한 프로젝트가 대부분 끝났기 때문에 (올해 실적도 반영되는) 내년 평가에서 다시 순위가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일각에서는 정부가 경영평가액과 같은 기업의 외형에 평가 비중을 많이 둬 건설사 순위가 제대로 평가되지 않고 있단 지적이 나온다.  

10대 건설사 관계자는 “사실 1위, 2위는 정해진 순위나 다름 없는데 전체 도급액 중 주택 사업이 차지하는 부분이 10% 수준에 불과한 삼성물산이 기업의 외형이 크단 이유로 10년째 1위인 게 과연 올바른 평가인지 모르겠다”며 “중대 재해 및 하자 비율 등 정작 소비자에게 중요한 지표들은 평가 비중이 너무 낮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