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재건(再建) 사업과 관련, 국내에서 참여 가능성이 특히 높게 점쳐지는 업종은 건설‧철강‧철도 등이다. 다만 재건 사업에 대한 기대감에 있어서는 업종간에 다소 온도차가 느껴지고 있다.

건설사 중에서는 쌍용건설이 가장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쌍용건설 관계자는 19일 “현재 폴란드에 설치된 우크라이나 난민 수용 시설을 리모델링하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며 “지난달 미국 비영리단체 자선 행사 참석을 계기로 인도적 차원에서 재건 사업에 참여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향후 전개될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 참여 여부와 관련해 확정된 것은 없다”면서도 “사업 확대 가능성은 열려 있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쌍용건설에 이어 코오롱글로벌 관계자도 같은 날 “사업 분야 등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지만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에 참여한다는 방침은 세워진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업계에선 코오롱글로벌이 상하수도 시설 시공에 참여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코오롱글로벌은 그동안 해외에서 상하수도 사업을 많이 해왔고 국내에선 10대 건설사들보다도 더 많이 상하수도 시공을 맡아왔다”며 “상하수도뿐 아니라 수처리까지 포함해 환경 분야에서 코오롱글로벌은 국내 건설사 기준 ‘톱2’로 꼽히는 기업”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김정일 코오롱글로벌 사장이 7월 14일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한 간담회에서 “전쟁으로 파괴된 우크라이나의 상하수도 복구사업 수요가 클 것으로 예상한다”고 발언한 것도 관련 사업에 참여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7월 14일(현지 시간) 폴란드 바르샤바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국토교통부 원희룡(가운데)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현대건설 윤영준(왼쪽) 사장과 보리스필 국제공항공사 올렉시 두브레브스키 사장이 키이우 보리스필 국제공항 확장 사업에 관한 협약 후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현대건설
7월 14일(현지 시간) 폴란드 바르샤바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국토교통부 원희룡(가운데)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현대건설 윤영준(왼쪽) 사장과 보리스필 국제공항공사 올렉시 두브레브스키 사장이 키이우 보리스필 국제공항 확장 사업에 관한 협약 후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현대건설

10대 건설사 중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 추진 속도 빠른 곳은

주식 시장에선 우크라이나 재건 관련 건설 분야의 수혜주 찾기에 분주하다. 현대건설과 두산에너빌리티, 대우건설, 삼부토건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이 중 현대건설과 대우건설은 동시에 각각 우크라이나 공항 확장 공사와 폴란드 내 공공 인프라 사업에 대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재건 사업에 뛰어든 건설사 중 업계에서 순위(70위, 지난해 시공능력평가액 기준)가 가장 낮은 삼부토건의 진출에 대해선 특수한 사례라는 해석이 나온다.

중견사 관계자는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재건 사업은 보통 ‘그들만의 리그’라 대부분의 중견사는 하고 싶어도 하기 힘들다”며 “삼부토건은 규모는 작지만 토목 분야에서 역사가 깊고 기술력을 알아주는 회사라 이번 재건 사업 참여는 특수한 경우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 우크라이나 재건 테마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삼성물산과 현대엔지니어링(현대ENG)도 재건 사업에 뛰어들었다. 삼성물산은 최근 우크라이나 리비우시와 스마트시티 개발에 대한 MOU를 맺고 발주 계약까지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재건 사업이 시작된 쌍용건설을 제외하면 아직 MOU 단계(19일 기준)거나 사업 계획만 갖고 있는 타사에 비해 사업에 속도가 붙은 셈이다.

업계에선 삼성물산이 ▲교통 자동화 시스템의 적용 ▲물류와 통신, 스마트홈 시스템의 상호 연결 등에 대해 현지 지방자치단체의 청사진에 따라 사업을 추진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현대ENG는 폴란드 국영 방산그룹인 PGZ와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에 협력키로 했다.

수혜주 중 상당수는 관련 계획 없어…사업 수익 낮단 지적도

한편 시평액 20~130위권 건설사 중 수혜주로 꼽히는 상당수의 회사는 재건 사업 참여 여부에 대해 아직 확정된 바가 없거나 사업 계획을 세운 적이 없다고 밝혔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일각에서 테마주로 언급됐지만 현재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과 관련해 추진하고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사업장 자체가 아예 없다”며 “이 사업에 대해 정부가 발표한지 오래되지 않아 아직 발표 내용에 구체적인 게 없다보니 지켜보고만 있다”고 밝혔다.

이 회사를 포함해 시평액 기준 50위 내 건설사 중 사업 참여 의지가 있는 곳은 10개 미만에 그친다. 나머지 건설사들은 “사업에 대한 계획이 없다”고 못 박거나 “지켜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이유는 “주택 사업을 주로 하고 있어 인프라 재건 사업에 참여하는 게 회사 성격상 맞지 않다”였다.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처럼 해외 사업 비중과 관련 실적이 많은 메이저 건설사 중에도 신중한 모습을 보이는 곳들이 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최근까지 러시아 시장에서 사업 비중이 컸던 건설사의 경우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는데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에 참여하겠다고 했다간 러시아로부터 불이익을 당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지 않겠나”라며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이 일각의 기대만큼 건설사에 수익을 안겨주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많은 건설사들이 사업에 회의적인 ‘진짜 이유’일 수 있다.

백광제 교보증권 수석연구원은 “재건 사업 테마주라며 최근 일부 건설사 주가가 요동치고 있지만 재건 사업이 애초에 주가가 뛸 만큼의 이슈가 아니다”라며 “우리 측이 (우크라이나에) 금융 지원을 해야 하고 그 조건들도 굉장히 복잡한 만큼 수익으로 연결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마진을 많이 남기기도 힘든 구조”라고 말했다.

재건의 기본은 철강재 확보…국내 철강업계 특수 예견돼

조심스런 반응의 건설업계와 달리 철강업계는 적지 않은 기대감을 갖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건축, 교통 등 각종 인프라를 재건하기 위해 철강재 수요가 커짐에 따라 국내 철강업계에도 특수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세계은행은 우크라이나 재건비용만 4110억달러(약 520조원) 이상 들 것으로 올해 3월 추정했다. 이 중 교통운송(22%)과 주택(17%) 분야에서 특히 철강 수요가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건설협회의 2021년도 완성공사 원가통계에 따르면 통상 토목공사에서 재료비 비중은 15%, 주택 등 건축공사에서 재료비 비율은 25% 정도다. 재료비에서는 금속제품 비중이 50%를 차지한다.

이 비율을 바탕으로 대략적인 철강재 수요를 예측하면 86조원의 총 복구비용이 필요한 주택은 약 10조원 정도의 철강재가 필요하다. 총 복구비용만 116조원에 달하는 운송 분야는 대략 17조원 가량의 철강재를 요구한다. 이밖에 에너지와 철도 분야 같은 각종 인프라사업에서도 철강 금속재를 필수로 사용하는 만큼, 국내 철강업계가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에 진출하면서 특수를 누릴 수 있으리란 전망이 유력하다.

세계은행이 3월 발표한 전쟁 피해 및 손실, 총 복구비용 추정 자료. 자료=세계은행
세계은행이 3월 발표한 전쟁 피해 및 손실, 총 복구비용 추정 자료. 자료=세계은행

주요 철강재 태부족, 생산 인프라 파괴돼…해외 수입 불가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생하기 전 우크라이나는 2021년 기준 2140만톤의 철강을 생산하며 생산량에서 세계 14위를 달성했다. 수출액만 228억달러(약 29조원)를 기록하며 전체 수출에서 33.5%를 차지하던 철강 강국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동부지역에 몰려있던 제철소 상당수가 파괴됐고, 2022년 철강 생산량이 약 70% 감소해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코트라에서 공개한 우크라이나 철강 생산 감소치. 자료=코트라, 우크라이나철강제조협회(Ukrmetprom)
코트라에서 공개한 우크라이나 철강 생산 감소치. 자료=코트라, 우크라이나철강제조협회(Ukrmetprom)

철강산업 전문가에 따르면 현재 우크라이나는 후판, I형강, ㄷ형강, 스틸코너, 강판 제품이 부족해 제품의 90%를 수입하고 있다. 완전히 파괴된 아조우스탈(Azovstal) 제철소에서만 조선·전력·건설·특수기기 등에 사용되는 두께 6~200㎜, 너비 1500∼3200㎜의 고품질 압연제품을 생산했는데, 이조차 공장 파괴로 자국 내 생산이 불가한 상태다.

우크라이나의 철강기업뿐 아니라 제조기업들도 자국내 철강 원부자재 수급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코트라 키이우 무역관이 접촉한 바이어에 따르면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냉연 강판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냉연강판은 주로 자동차 차체나 계측기, 전기제품 등에 사용된다.

국내 업체 중 냉연강판에 강세를 보이는 기업은 동국제강그룹의 냉연사업법인 동국씨엠이다. 동국제강그룹 관계자는 “동국씨엠은 냉연도금재를 연간 170만톤가량 생산하며, 수출물량도 컬러 강판 회사 중 1위”라며 “회사 역시 우크라이나에서 냉연강판 수요가 급증할 것을 예상하고 포트폴리오를 유럽과 우크라이나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조정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관과 특수강이 주력 상품인 세아그룹 역시 전망이 밝다. 세아홀딩스 관계자는 “철강 수요가 증가하면 매출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세아제강의 주력제품인 강관의 경우 EPC 업체의 재건사업에 기자재로 공급할 것이고, 세아베스틸이 생산하는 특수강 소재는 재건사업에 필요한 굴착기 같은 건설중장비 등에 공급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아제강에서 생산한 강관. 사진=세아그룹
세아제강에서 생산한 강관. 사진=세아그룹

이 밖에도 국내 1위 철강회사이자 전반적인 분야에 걸쳐 철강 제품을 생산하는 포스코그룹, 강관과 봉강에 강한 현대제철 등 여러 유력 업체들이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을 것으로 보인다.

철도 재건사업에 현대로템 참여 유력…국가철도공단도 지원 준비 중

우크라이나의 교통과 화물 운송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철도 재건사업도 화두다. 한국에선 현대로템이 우크라이나와의 인연을 바탕으로 대규모의 재건사업 계약을 체결할 수 있으리란 기대가 높다.

지난 7월 16일 우크라이나 국영철도기업 우크잘리즈니차는 우크라이나에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이르핀 지역으로 초대해 현대로템 HRCS2 고속열차를 시연했다고 텔레그램을 통해 밝혔다. HRCS2는 2012년부터 우크라이나에 90량, 3억700만달러(약 3900억원)에 도입돼 현재까지 운행 중이다.

이후 현대로템은 2015년 우크라이나와 기차 유지보수 계약을 연장하는 등 꾸준히 철도 교류 사업을 이어왔다. 폭설이 잦은 우크라이나의 동절기에 맞춰 장치별로 동절기 특별 점검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우크라이나 전쟁 동안에도 철수하지 않고 현지 고속열차를 수리 보수하는 등 신뢰를 지켰다.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는 현대로템의 열차로 수만명에 달하는 피난민을 대피시키기도 했다. 지난 6월엔 슈크라코프 바실리 우크라이나 인프라부 1차관이 방한해 현대로템 공장을 살펴본 적도 있다.

다만 현대로템은 재건사업 참여를 기정사실화하긴 이르다는 의견이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현대로템이 현지에서 사업 중이라 물망에 오른 건 맞다”면서도 “아직 구체적으로 논의된 재건사업 건은 없으며, 만일 사업에 참여하면 신규 철도차량 공급과 기존 차량의 유지·보수가 주가 될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현대로템이 우크라이나에 납품한 고속열차 HRCS2. 사진=현대로템
현대로템이 우크라이나에 납품한 고속열차 HRCS2. 사진=현대로템

공공기관 차원에서도 철도 재건 사업 지원을 준비하고 있다. 선로, 철도 건설 등 각종 철도 인프라를 총괄하는 조직인 국가철도공단은 해외사업부를 통해 지원 방안을 고려 중이다. 앞서 국가철도공단은 해외사업부를 통해 중국, 몽골 등 다양한 아시아 국가에 철도 건설 등을 지원한 이력이 있다.

국가철도공단 관계자는 “상세 내용은 현재 내부검토가 끝나지 않은 사항으로 외부 공개가 어렵다”면서도 “우크라이나 철도 재건과 관련된 지원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우르크잘리즈니차 관할 전차 궤도는 총 2만3000km로 세계에서 13번째로 크다. 2019년에만 승객 약 3억6000만명과 화물 약 3억3000만톤을 운송하는 등 거대한 철도 산업 규모를 자랑한다. 해당 철도 복구 사업을 국내 업체와 공공기관이 따낸다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