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기업이 산학협력을 통해 인재를 육성한다고 가정해보자. 대부분의 기업들은 훈련을 마친 인재가 기업으로 들어와 힘을 보태주기를 바란다. 당연한 일이다. 무엇보다 고질적인 인재난을 겪는 'AI인재'라면 더욱 욕심을 낼 수 밖에 없다.

스마일게이트 AI센터는 생각이 다르다. 입체적인 산학협력 커리큘럼으로 AI인재를 키워내지만 이들이 스마일게이트에 입사하도록 강하게 종용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른 기업들은 그동안 '투자'한 것이 아쉬워 인재를 육성한 후 빨아들이려 노력하지만 스마일게이트 AI센터는 아무런 조건없이 지원하고, 이들을 놓아준다는 방침을 세웠다.

물론 '쿨'하게 놓아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와 함께 해줬으면"하는 마음만큼은 간절하다. 

그럼에도 놓아줄 것이라는 설명이다. "사부님, 이제 하산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드넓은 강호로 떠나려는 문파 제자에게 "그동안 함께 수련해주어 고맙다. 이제 하산하거라. 소식은 강호에 떨치는 너의 위명으로 대신하겠다!"고 멋지게 말해놓고 문 옆에서 작별의 아쉬움에 눈물을 흘리며 비통해하는 소녀감성의 고수라고 할까.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한우진 스마일게이트 AI센터장은 "그것이 바로 스마일게이트가 사회에 기여하는 방식"이라며 "장기적으로 국내 AI 생태계의 에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한우진 센터장은 카이스트(KAIST) 음성언어연구실에서 음성·오디오 신호처리에 대한 연구를 통해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삼성전자에서 동영상 분석 합성 기술을 연구했으며 딥러닝 시대가 열리기 시작하자 가천대로 자리를 옮겨 딥러닝 자체에 집중했던 대표적인 AI 전문가다. NHN AI랩, 넷마블 자회사인 IGS 등에서 AI를 연구했으며 2019년 스마일게이트에 합류한 후 2020년 AI센터 설립을 주도했다.

AI 고수 한우진 센터장을 지난 17일 버추얼 인플루언서 한유아로 도배되어 소녀감성 뿜뿜 내뿜고 있는 스마일게이트 사옥에서 만났다.

한우진 센터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스마일게이트
한우진 센터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스마일게이트

"AI인재 꼭 필요하지만...이것이 스마일게이트 스타일"
스마일게이트는 2021년 서강대학교와 협력해 별도의 AI센터를 열었다. 매년 10억원을 서강대학교 AI센터에 지원하며 다양한 산학협력 프로젝트 및 전문 인력 양성에 집중하는 중이다.

목표는 '즉시 전력이 가능한' AI 인재다.

한우진 센터장은 "학교에서 AI를 전공한 학생들은 대부분은 기초 인프라에 대해서만 배우고 졸업하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 즉시 활용할 수 있는 인력이 아니다"면서 "학교와 기업현장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즉시 전력이 가능한' AI 인재의 필요성을 느꼈기에 서강대학교와 협력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직 첫 졸업생을 배출하지 못했으나 이미 성과는 나오고 있다. 한 센터장은 "학생들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학회에서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는 등 우수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면서 "실제 AI 현장과 연계한 현장감있는 교육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재미있는 점은 교내 AI센터 졸업생들에게 '어떠한 조건'도 달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다른 기업들은 산학협력을 통해 배출한 졸업생에게 입사를 조건으로 걸지만, 교내 AI센터는 해당사항이 없다. 실제로 한 센터장은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을 제공하지만 어떤 조건도 없다"고 말했다. 

교내 AI센터를 통해 AI인재를 육성하는 것은 스마일게이트라는 회사를 위한 것이 아닌, AI업계 전반을 위한 일종의 사회공헌이기 때문이다.

한 센터장은 "물론 교내AI 센터에서 배출된 AI인재들이 스마일게이트로 와준다면 너무 좋고, 사실 은근히 바라는 마음은 있다"면서도 "마음만 그럴 뿐, 교내 AI센터를 통해 배출된 인재들이 대한민국 AI 업계를 위해 큰 역할을 수행하고 시장의 발전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대만족"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교내 AI센터를 통해 배출된 AI인재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경험을 쌓고 스마일게이트의 문을 두드릴 수도 있는 일"이라며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국내 AI 에코 생태계가 스마일게이트의 사회공헌으로 만개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척척박사 AI? 친구같은 AI

한우진 센터장이 이끄는 스마일게이트 AI센터가 그리는 AI 전략은 무엇일까. 

한 센터장은 "스마일게이트는 엔터테인먼트의 영역에 속했고, AI 전략도 여기에 맞춰 연구하고 있다"면서 "정확히 말하자면 비서같은 AI가 아니라 친구같은 AI를 추구한다"고 설명했다.

오픈AI의 챗GPT가 글로벌 빅테크 업계를 강타한 후 AI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은 '척척박사'다. 이용자가 질문하는 것에 명확한 답을 주고 생산성을 돕는 AI가 당연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코파일럿처럼 AI는 정확히 인간을 보조해야 하며, 이를 통해 확실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전제가 강하다.

한 센터장과 스마일게이트 AI센터가 추구하는 것은 약간 결이 다르다. '척척박사'와 같은 AI의 일반적인 스펙트럼도 일부 필요하지만 엔터의 영역에서는 감성을 더욱 추구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AI는 'Artificial Intelligence'로 풀어쓸 수 있지만 게임, 특히 엔터에서는 AE(Artificial Emotion)로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면서 "똑 부러지는 척척박사가 아닌 친구처럼 어울릴 수 있는 AI, 감성을 가진 AI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식보다는 감성, 이성보다는 단순한 재미에 방점을 둔 엔터 AI다. 바로 AE가 바로 한 센터장의 지향점이라는 뜻이다.

이를 바탕으로 FUN AI, 즉 재미있는 AI를 개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설명이다.

자연스럽게 사람에 가장 가까운 AI를 지향할 수 밖에 없다. 'Human Like AI' 전략이다. 한 센터장은 "인간은 완전하지 못하며 간혹 착각을 하거나 살아온 굴곡에 따라 성격도 천차만별이 된다"면서 "우리가 추구하는 AI는 재미있는 감성을 추구하며 실제 사람처럼 실수도 하고 성격을 가진, 완전무결한 비서가 아닌 진짜 사람같은 AI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스마일게이트 AI센터는 기반기술인 인공 신경망, 나아가 음성인식 및 번역 등 단위기술과 같은 AI 기반 인프라에는 크게 주목하지 않는다.

한 센터장은 "초거대AI에서는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는 수준이며, 기반기술과 단위기술과 같은 기반 인프라 기술보다는 이를 융합한 응용기술에 집중하고 있다"면서 "버티컬한 AI가 아닌 우리가 추구하는 엔터AI, 즉 AE의 방향성에 따라 융합을 통한 서비스AI에 주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물론 비용절감 측면에서 초거대AI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기울이고, 감성을 가진 AI를 추구하다보니 나올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서도 충분한 사적 포석을 쌓았다. 다만 스마일게이트 AI센터는 AI 기반기술보다 응용을 통한 감성을 가진 AI와 사람같은 AI를 추구한다는 설명이다.

한 센터장은 "법률 지식까지 완벽한 40대 엘리트가 아닌, 배가 고프면 보채고 기분이 좋을 때 노래를 부를 수 있는 9살 어린이가 우리의 목표"라며 "최근 글로벌 빅테크 업계가 모두 법률 지식까지 완벽한 40대 엘리트만 지향하고 있지만, 우리 AI는 수 많은 감정의 스펙트럼을 가진 9살 어린이를 구현하는 것"이라 강조했다.

한우진 센터장이 문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스마일게이트
한우진 센터장이 문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스마일게이트

AI가 말한다 "라면먹고 갈래?"
스마일게이트 AI센터의 또 다른 AI '특이점'은 게임 제작 및 관리에서의 AI 활용이다.

한우진 센터장은 "게임을 제작 초반 단계에서 시나리오 초안을 다듬고 캐릭터를 구성하는 창작의 단계에서 AI를 활용하는 일이 많다"면서 "게임이 출시된 후 관련 빅데이터를 분석해 더 좋은 게임을 만드는 단계에서도 AI가 점점 영역을 넓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창작 및 생성AI와 분석AI가 실제 게임환경에서 큰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이는 스마일게이트 AI센터의 중요한 연구 대상이라는 설명이다.

'넥스트 레벨'은 인게임AI, 즉 게임 안에 AI를 자유자재로 넣어 활용하는 단계다. 한 센터장은 "감정을 가진 AI가 게임에서 자유롭게 활동한다면 NPC가 보여줄 수 있는 재미의 스펙트럼 자체가 달라질 것"이라며 "연예 시뮬레이션 게임의 경우 정해진 퀘스트에 따라 기계적인 상황만 펼쳐지는데, 인게임AI가 활성화되면 말 그대로 무한대의 상황이 펼쳐지며 게임의 재미가 달라질 것"이라 말했다.

오랜만에 만난 첫사랑이 개발자의 기본 시나리오에서 벗어나 유저에게 "라면먹고 갈래?"라고 자연스럽게 말하는 순간, 새로운 시대가 펼쳐질 것이라는 뜻이다.

오픈소스 이후의 시대 준비하라..."우리와 함께"

감정을 가진 AI, 사람같은 AI를 추구하는 AI센터는 심리학부터 인문학까지 답습하며 융합형AI 시대와 서비스형 AI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인게임AI 시대가 열린다면 NPC가 바쁘다며 말 걸지 말라며 짜증을 내고, 기분이 좋을 때 던전 공략을 대방출하는 의외의 재미(?)도 느낄 수 있다.

문제는 '다음'이다. AI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한편 펼쳐질 상황도 녹록치않기 때문이다.

특히 시장 상황을 마냥 낙관하기 어렵다. 한 센터장은 "지난해 챗GPT가 큰 역할을 해주지 못했다면 '돈을 벌지 못하는' 글로벌 AI 업계는 위기에 빠질 수도 있었다"면서  "지금은 생성형AI가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지만 이 조차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2년 예상한다"고 우려했다.

AI 발전을 이끌어 온 오픈소스 흐름도 조만간 끝날 수 있다. 한 센터장은 "AI는 오픈소스를 통해 발전했으나, 그 이유는 역설적으로 AI로 돈을 벌지 못하는 이들이 AI 모델을 오픈소스로 풀어 브랜드 마케팅을 진행하고 자체 생태계라도 만들려고 했던 것"이라며 "누군가 AI로 제대로 돈을 벌기 시작한다면 AI 발전을 견인한 오픈소스 흐름은 단숨에 깨지고 시장은 몇 개의 기업으로 고착화되고 말 것"이라 말했다.

특정 초거대AI가 일종의 운영체제가 되어 글로벌 인터넷 시장을 집어삼키고, 그 위에서 구동되는 모든 서비스도 이에 종속될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대비해야 한다. 다만 혼자서는 어려운 길이다.

한 센터장은 "챗GPT의 등장으로 AI 시장에서 기술 리더십도 중요하지만 챗봇이라는 서비스 리더십도 강해지고 있다"면서 "AI 시대가 다양해지는 가운데 우리는 많은 협력에 오픈되어 있고, 기다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서비스AI를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는 우리는 일반적인 연구개발 조직과 달리 당장 활용할 수 있는 융합AI 전략을 핵심으로 삼는다"면서 "우리와 함께 AI 에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면 다양한 연대의 가능성을 타진할 것이며, 이 과정에서 서강대학교 AI센터의 인재들이 당장이라도, 혹은 나중에라도 합류해준다면 더 기쁠 것"이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