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가계 대출(신용·전세 자금·주택담보대출) 잔액이 사상 최대 사상 최대 규모로 불어났다. 최근 정부의 규제 완화에 집값 하락세가 둔화되자 가계가 은행에서 빌리는 돈이 늘어났기 때문이란 게 많은 전문가의 분석이다. 시장에선 ‘9월 위기설(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중소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이 끝나는 9월 말부터 가계부채 위기가 닥칠 것이란 주장)’이 나도는 가운데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단 분석도 나온다.

한국은행은 앞서 12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지난달 말 가계 대출 잔액이 1062조3000억원으로 사상 최대 수준이라고 밝혔다. 은행권 신규 가계 대출 금리가 연 4~5%로 여전히 높은데도 빚이 꾸준히 증가한 것이다.

지난달 은행권의 주담대는 7조원 가량 증가했다. 2020년 2월(7조8000억원 증가) 이래 최대 증가 폭이다. 은행권 주담대는 올해 2월 3000억원 줄어 일시적으로 감소했으나, 이후 4개월째 증가세다.

한은 측은 정부의 대출규제 완화 영향에 지난달 주담대가 늘어 은행권 가계 대출 잔액이 급증했단 입장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13일 기자 간담회에서 “(가계 부채는) 부동산 시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전문가들도 부동산 규제 완화가 대출 확대를 부추겼다고 분석했다.

14일 백광제 교보증권 수석연구원은 “한은이 올 2월 동결한 기준금리가 3.5%인데 그러면 대출금리가 적어도 5% 후반은 돼야 정상”이라며 “하지만 한국주택금융공사(HF)가 동결한 이달 특례보금자리론(9억원 이하 주택에 대해 시중 금리보다 낮은 수준으로 최대 5억원을 빌려주는 제도)의 금리는 연 4.15∼4.45%(일반형)다. 그래서 실수요자와 투기 수요가 몰렸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은도 지난 5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전월에 금융권 가계대출이 증가세로 전환된 데는 특례보금자리론의 영향이 크다고 분석한 바 있다. HF에 따르면 특례보금자리론은 상반기(1월30일부터 6월30일까지)에만 올해 공급 목표액(39조6000억원)의 71.3%(28조2360억원)가 풀렸다.  

15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아파트 단지 전경. 사진=이혜진 기자
15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아파트 단지 전경. 사진=이혜진 기자

역전세 지원이 가계부채 늘려…“DTI 규제 완화 영향 적을 것” 의견도

정부의 역전세(이전 계약보다 전셋값이 하락하는 현상) 지원 제도가 가계부채를 늘리고 있다고도 했다.

백 수석연구원은 “최근 역전세때문에 (전세보증금) 하락분에 대한 대출이 늘어난 영향도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이달 말부터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려고 대출을 받을 때 ‘총부채상환비율(DTI·금융 부채 상환액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 60%’ 기준이 적용돼 대출 한도가 더 늘어나게 된다”고 우려했다.  

김규정 한국투자증권 자산승계연구소장도 “전년 동기 대비나 분기별로 최근 (은행권 가계 대출) 증가 폭을 보면 (부동산) 규제 완화가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며 “고가 주택(15억원 이상)과 ‘집단 대출(아파트 분양 시 건설사가 금융기관에서 한꺼번에 돈을 빌려 계약자가 중도금 등을 치르게 해주는 상품)’에 대한 규제가 풀려 주담대 증가에 큰 영향을 줬다”고 했다.

다만 DTI 규제 완화가 가계 부채에 미칠 영향을 놓고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김 소장은 “지난달 한은에서 전세가구의 절반 이상(52.4%)은 역전세 위험에 놓여있고 깡통전세(역전세때문에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현상) 위험가구 비중도 올해 4월 약 8%(16만3000채)로 지난해 1월(2.8%)보다 급증했다고 밝혔다”며 “DTI 규제 완화는 전세를 사는 서민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임대인들이 역전세때문에 전세금을 못 갚고 있단 말이 많이 나오지만 사실로 볼 만한 통계는 없다”며 “사실이라 쳐도 당연히 이들이 DTI 한도까지 대출을 받을리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관련 규제 완화로 집주인이 DTI를 많이 이용해 가계 부채에 악영향을 줄거라고 전망하긴 어렵단 것이다.

김인만 부동산연구소장은 “주택 거래량이 수개월째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주담대가 그만큼 늘었단 뜻”이라며 “그런데 대출을 받은 사람들이 복권에 당첨되지 않는 이상 돈을 어떻게 한꺼번에 갚겠나. 매월 조금씩 갚을테니 주담대를 포함한 총 가계 부채에 큰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거래량 증가는 총액뿐만 아니라 증가 속도가 빨라지는데도 영향을 줬을 것”이라며 “속도와 총액도 중요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가계대출 연체율(지난해 1분기 0.56%→올해 1분기 0.83%)로 인한 부실화”라고 분석했다.

15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에 한 주상복합 아파트 단지가 위치해 있다. 사진=이혜진 기자
15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에 한 주상복합 아파트 단지가 위치해 있다. 사진=이혜진 기자

‘주택구입 이외 목적의 대출’ 비중 커…“부동산 규제 완화는 ‘양날의 검’”

정부의 그동안 실시한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이 가계부채 규모에 심각한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란 해석도 있다. 민간 건설사들이 출연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서 지난달 말 부동산 시장 침체가 장기화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 등 주택 경기가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김기원 데이터노우즈 대표는 “정부가 올 초 ‘둔촌주공 살리기’를 위해 부동산 규제를 완화했지만 주택 거래량이 아직 많지 않다”고 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5월 전국 주택 거래량은 8만8797건으로 지난해 11월(5만5588건) 이후 반년째 증가세지만 부동산 경기가 침체됐던 같은 해 5월(9만6979건)보다 8.4% 적다.

지난 3월 생활안정자금 목적의 주담대 관련 규제가 완화돼 이로 인해 주택구입 이외 목적의 대출이 늘어나 가계부채 증가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줬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지규현 한국주택학회 고문은 “예를 들어 자영업자가 장사가 잘 안 되는데 임대료는 계속 내야 할 때 자신이 받을 수 있는 대출 중 그나마 저리인 게 주담대”라며 “또 의료비와 교육비 등 생계비 목적으로 빌리는 주담대가 있다. 이렇게 집을 사는 것과 별개의 주담대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고 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도 “생활안정자금 목적의 주담대 규제 정상화로 인한 주택구입 이외 목적의 대출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12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가계대출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주택 구입 외 목적 주담대는 8조원으로 전월(7조8000억원)보다 2.6%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부동산 규제 완화가 맞는 조처인지에 대해선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구체적으론 “상황이 심각한 만큼 부실 폭탄이 터질 수 있다(백 수석연구원)”,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102.2%, 5월 국제금융협회)이 세계 1위인데다 경기 회복력도 지지부진해 부채가 더 증가하면 매우 위험하다. 다만 집값이 큰 변동성을 보이는 것도 경제에 부작용을 미쳐 양날의 검같은 문제(김 소장)” 등이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전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장)는 “금융권 대출을 찾는 기업과 가계가 증가해 총 부채가 상당히 많아 우려스럽다”며 “더 염려스러운 점은 하반기 아파트 입주 물량이 늘어날 예정이라 대출이 늘어나게 돼 있고 기업과 가계의 연체율이 증가했단 것”이라고 했다.

다만 “IMF 때 연체율은 7%,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는 1.3%였는데 이 때보단 낮다”며 “은행은 대손충당금(대출을 떼일 것에 대비한 돈) 관리를 잘 한다. 부동산 정책은 정책대로 가고 위험 관리는 금융사에서 알아서 하면 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