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연합뉴스 
故정몽헌 회장의 15주기 추모식을 위해 2018년 8월 방북길에 오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강원 고성군 동해선남북출입사무소에 도착했다. 사진= 연합뉴스 

故정몽헌 회장의 20주기 추모식을 위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 요청이 북한 측의 거부로 무산됐다.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북한에 약 1조4000억원을 투자해 준 현대를 대하는 북한의 태도를 놓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속된 말로 표현하면 '쌩깐다'는 비판이다. 아쉬울 때 도움을 받아놓고 이제와 '나 몰라라'하는 식이기 때문이다. 

현대그룹의 대북(對北) 사업은 기아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들을 항상 안타깝게 생각했던 故정주영 창업주 회장의 의지에서 시작됐다. 정몽헌 회장은 부친의 의지를 이어 1990년대에 본격화된 현대그룹의 대북사업을 진두지휘했던 인물이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으로 대표되는 현대그룹의 대북사업은 실제로 북한의 경제에 긍정적으로 작용했고, 이는 김정일 시대의 북한에서도 그 공로를 인정했다. 

정몽헌 회장 별세 후 김정일은 직접 조전(弔電)을 보냈으며, 북한 강원도 금강산관광지구에 분향소가 마련되기도 했다. 이러한 기조는 김정은 시대의 초반까지도 이어져 2018년 현대그룹은 금강산에서 정몽헌 회장의 15주기 추모식을 가졌고, 이 자리에는 북한의 관료들도 참석했다. 

2013년 8월, 금강산에서 개최된 故정몽헌 회장 10주기 추모식. 사진= 연합뉴스
2013년 8월, 금강산에서 개최된 故정몽헌 회장 10주기 추모식. 사진= 연합뉴스

이에 현정은 회장은 오는 8월 3일 정몽헌 회장의 20주기에 맞춰 지난 6월 정부를 통해 북한에 방북을 신청했다. 그러나 지난 1일 김성일 북한 외무성 국장은 “남조선 그 어떤 인사의 방문 의향에 대해 통보 받은 바 없고, 알지도 못한다”라면서 “(사안을) 검토해 볼 의향도 없음을 명백하게 밝힌다”라고 조선중앙통신 담화를 통해 발표했다. 

대북사업이 진행된 1998년에서 2008년까지 현대그룹이 ‘공식적으로’ 북한에 투자한 투자금은 약 1조4400억원이다. 이 자금은 크게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SOC(사회간접자본) 사업권 등 3개 영역에 투자됐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금강산 관광 사업에는 총 8112억원(시설투자 2268억원 + 관광대가 지급 4억8700억달러(5844억원, 1달러=1200원 환율 기준))이 들어갔다. 개성공단의 시설 조성에는 312억원(사업소·공장 건립) 그리고 북한 측 SOC(철도, 통신, 전력 등) 사업권 대가 5억달러(6000억원)가 투입됐다. 

출처= 현대아산 공식 자료
출처= 현대아산 공식 자료

그간의 인플레이션을 적용해 당시의 대북 투자액을 현재 수준으로 환산하면, 그 가치는 액면의 최대 10배인 10조원 이상으로 계산할 수도 있다. 게다가 이 투자액은 어디까지나 대북사업의 핵심이었던 현대아산에 의해 기록된 ‘공식적’ 액수라는 것이다. 현대그룹이 이끈 투자의 직간접적인 영향으로 북한에는 당시 액면 기준으로 약 2조원 혹은 그 이상의 자본이 유입됐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현대그룹에 대한 북한의 배은망덕한 행위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금강산 관광객들을 위한 공간으로 조성된 호텔인 ‘호텔해금강’은 현대아산이 베트남을 통해 인수한 세계최초의 수상호텔이다. 2008년 관광객 피살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이후 시설이 폐쇄됐다. 북한은 ‘명백하게’ 현대아산의 자산인 호텔해금강을 “보기 싫으니 치워라”는 김정은의 지시로 현대 측에 통보도 없이 철거했다. 호텔의 철거 사실마저도 미국의 언론을 통해서야 확인됐다. 

무르익은 남북 화해의 분위기 속에서 북한 주민을 위한 연민으로 시작된 현대그룹의 대북사업을 이끈 인물의 추모식도 가로막는 북한의 ‘상식 밖’ 태도는 국내 기업인들에게 많은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사례들로 인해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강경한 대북정책은 더욱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