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났던 서울의 아파트 매수세가 최근 한달 새 위축되고 있다. 패닉성 매도에 일방적으로 밀리던 부동산 시장에서 대세에 반발하는 매수세가 단기간 폭발했다가 사그라들었단 분석이 나온다. 매도자와 매수자 간 눈치 싸움에서 아직 매수자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만큼 과도한 호가를 제시하면 거래량이 늘어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기에 서울과 수도권의 빌라 낙찰률이 3개월 연속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어 향후 부동산 시장이 다시 약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30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6월 들어 지난 28일까지 서울 아파트 거래 건수는 1652건으로 5월(3306건)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내달 말까지 신고 기한이 남은 점을 고려해도 6월 총 거래량은 전월 대비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29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 신축 공사 현장. 사진=이혜진 기자
29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 신축 공사 현장. 사진=이혜진 기자

구별로는 서초(136건→40건)와 강남(250건→88건)이 각각 70.6%, 64.8%씩 줄어 다른 지역보다 거래량 감소 폭이 더 크다. 지난해 5월(177건) 이후 1년 1개월 만에 100건을 돌파한 중랑(66건→105건)을 제외하면 전 지역의 거래량이 줄었다. 감소 폭이 최소인 곳은 금천(40건→32건)으로 전월 대비 20% 줄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강남과 서초에서 집값이 오르기 전까지 오랜 기간 가격이 떨어진 데 대한 반발 매수세가 최근 들어왔다가, 하반기의 역전세 우려에 집주인이 내놓은 매물이 늘어나고 대규모의 입주 물량도 예정돼 관망세가 짙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서울 아파트의 매수세가 주춤해지자 매물도 느는 추세다.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3월 28일 5만9911건이던 서울 아파트 매물은 세 달 뒤 6만7201건으로 12.1% 늘었다. 같은 기간을 기준으로 세종(15.6%)에 이어 전국에서 매물 증가 폭이 가장 컸다.

구별로는 강남(5017건→6321건)이 25.9% 증가해 가장 큰 증가 폭을 보였다. 개포동(826건→1512건)에서 매물이 83.0% 늘어난 영향이 컸다. 특히 오는 11월에 입주를 앞둔 개포주공1단지(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의 매물이 7배 이상 급증(71건→514건)했다.

이는 매도자와 매수자 간 줄다리기 국면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례로 같은 기간 매물이 124.0% 증가한 단지인 개포주공7단지의 전용 면적 60.76㎡는 지난 14일 19억5000만원(12층)에 거래됐다. 현재 호가(呼價)는 21억7000만원(5층)에 나와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급매물이 소진되면 집주인이 호가를 올리는 경우와 달리 집값이 떨어져도 사실상 집을 팔 생각이 없는 집주인들이 집값을 띄우기 위해 ‘배짱 호가’를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며 “아직 부동산은 매수자 우위 시장인데다 사람들이 집주인이 일방적으로 제시한 가격보다는 실거래가를 더 믿고 있어 무리한 호가가 매수로 이어질 가능성은 적다”고 했다.  

29일 오후 서울에서 전세 사기가 가장 많이 발생한 지역인 강서구 화곡동의 한 빌라에 분양을 안내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이혜진 기자
29일 오후 서울에서 전세 사기가 가장 많이 발생한 지역인 강서구 화곡동의 한 빌라에 분양을 안내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이혜진 기자

아파트 매수세가 주춤해지며 매물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 빌라 낙찰률(경매 물건 중 최종 낙찰되는 비율)은 세 달 연속 역대 최저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날 법원경매 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전날 기준 서울 빌라 낙찰률은 8.1%로 전월보다 0.5%포인트 내려갔다. 100채 중 8채만 주인을 찾았다는 의미다.

서울 빌라 낙찰률은 지난 4월부터 세 달 연속 역대 최저를 기록 중이다. 낙찰률은 지난 2월(14.1%→10.7%)이후  5개월 연속 떨어지고 있다.

서울 빌라 낙찰률은 주택 경기 호황기였던 2020년 12월만 하더라도 43.3%였는데 지난해 8월부터 20%를 밑돌았다. 이후 12.7%(9월), 12.0%(10월), 10.0%(11월) 순으로 꺾이다 한자리수대로 주저앉았다.

빌라 낙찰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 것은 부동산 호황 국면 때보다 높은 금리에 이른바 '깡통 전세(계약 만기 시 전셋값이 떨어져 보증금을 못 받는 것)' 물건이 경매 매물로 대거 풀리고 있는 점이 원인으로 꼽힌다.

같은 기간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은 79.4%로 집계됐다. 낙찰가율은 높을수록 경쟁이 치열하다는 뜻이다. 전월 낙찰가율은 83.2%였다. '전세 사기'가 문제가 되기 전인 지난해 5월 97.6%에서 서서히 내려가다 같은 해 10월 1년여 만에 80%대로 하락했다. 그러다 두 달 새 10%p가 더 떨어져 70%대를 기록했다.

수도권에서도 이달 낙찰가율은 전월에 비해 떨어졌다. 권역별로 경기(72.3%→70.2%)의 낙폭이 인천(71.1%→69.5%)보다 크다. 경기와 인천도 서울과 비슷한 시기, 각각 2021년 4월(85.4%)‧6월(91.5%)에 최고치를 기록한 뒤 1년새 크게 빠졌다. 특히 인천은 2021년 5월(69.4%) 이래 2년여 만에 60%대를 기록했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향후 집값을 가늠하는 지표로 청약 열기와 함께 경매시장 동향을 꼽는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매매 시장이 잘 굴러가야 경매로 진입했던 물건이 매매 시장에서 소화된다"며 "그러나 현재는 이게 어려워 경매 물건이 과거보다 늘었다"고 했다.

실제로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21년엔 매매 시장이 활성화돼 경매를 취하하는 건수가 증가했으나 최근에는 시장 침체에 경매로 계속 진행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나온 물건 중 상당수가 2~3회씩 유찰되는 사례가 발생하며 적체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빌라 경매의 인기를 떨어뜨리는 요인은 '깡통 전세' 물건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깡통 전세 피해를 겪은 뒤 진행되는 강제경매(국가가 채무자의 부동산을 압류한 뒤 이를 팔아 채권자에게 돈으로 돌려주는 것)가 급증했다.

이날 법원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서울 집합건물(아파트·빌라·오피스텔) 강제경매 개시결정 등기신청 부동산은 549건으로 전월(329건)보다 66.9% 증가했다. 이 중 약 4분의 1은 전세 사기가 집중된 강서(130건)에서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깡통 전세가 빌라 경매 시장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한다.

이 선임연구원은 "특히 서울 빌라는 깡통 전세 문제로 낙찰률이 더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