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프로 포항캠퍼스 전경. 사진=포항시
에코프로 포항캠퍼스 전경. 사진=포항시

경기침체, 인구감소에도 세계적으로 성장하는 산업이 있다. 바로 전기차 산업이다. 전기차가 늘며 동반 상승하는 산업은 전기차용 배터리 즉 이차전지 분야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2035년 글로벌 전기차용 이차전지 시장은 6160억달러(약 800조8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이차전지 개발에 2000년대 초반부터 일찌감치 나선 덕분에 시장 선점이 가능했다. 이제 이차전지는 지방 도시의 흥망성쇠를 가를 정도로 국가 주요 산업으로 자리잡았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세부규정에서 보조금 지급 대상인 양‧음극재 등 이차전지 배터리 핵심소재의 추출및 가공 지역에 북미 이외에 FTA 체결 국가도 포함되며 국내에 공장건설이 가능해졌다. 이에 지역간 산업 유치전이 더욱 치열해졌다. 이 중 포항과 새만금이 위치한 군산 등이 이차전지 기업 유치 격전장으로 떠올랐다.

전통의 강자 포항

포항이 이차전지 도시가 된 것은 2004년 영일만 산업단지가 꾸려지면서부터다. 에코프로그룹이 에코배터리 포항캠퍼스로 양극재 밸류체인을 꾸리며 자리를 잡았다. 이후 포스코퓨처엠이 포스코의 지역기반인 포항에 양‧음극재 공장을 건설하며 이차전지 산업으로 뿌리를 내렸다. 포항은 광양에 위치한 포스코홀딩스 리튬 공장과도 인접해 있다. 

에코프로는 2017년 포항에 첫삽을 떴다. 영일만 산업단지 일원 31만㎡에 1조7000억원을 들여 ‘에코배터리 포항캠퍼스’를 짓고 지금까지 총 6개의 에코프로 그룹사를 입주시켰다. ▲전기차 배터리 핵심소재인 양극재 생산기업 에코프로BM, 에코프로EM ▲양극재 핵심원료인 전구체를 생산하는 에코프로머티리얼즈(옛 에코프로GEM) ▲리튬화합물 제조와 가공기술을 담당하는 에코프로이노베이션 ▲폐배터리 리사이클 기업 에코프로CnG ▲양극재 소재개발 및 고순도 산소‧수소 공급 기업 에코프로AP 등이다.

포항 내 에코프로 투자는 현재 진행형이다. 올해 4월 영일만 산업단지 인근에 위치한 블루밸리 국가산단에 2027년까지 향후 2조원을 더 투자해 ‘에코프로 블루밸리 캠퍼스(가칭)’를 세울 계획이기 때문이다. 에코배터리 포항캠퍼스에서 양극재 관련기업을 모아 관련 밸류체인을 완성했다는데 목적이 있다면, 이번 투자는 ‘증설’에 의의가 있다. 에코프로는 신증설로 양극재 생산능력을 현재 연산 18만톤에서 2027년 71만톤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포스코 그룹 계열사 포스코퓨처엠도 포항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에코프로가 선점한 영일만 산업단지에 포스코퓨처엠도 포스코홀딩스, 중국 중웨이(CNGR)사와 1조5000억원을 투자해 합작투자계약(JVA)을 체결했다. 삼원계(NCM‧니켈코발트망간,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등) 배터리 핵심소재인 니켈을 정제하고 전구체를 생산하는 공장이다. 3사는 1조5000억원가량을 들여 연산 5만t 규모 황산니켈과 전구체 11만t을 생산할 공장을 건설하고, 2026년부터 양산하는 것이 목표다. 이외에도 영일만 산업단지에 NCA‧NCMA 양극재 공장을 짓고 2025년 각각 연산 3만t 규모를 생산할 예정이다. NCA 양극재 공장 신설에만 3920억원이 투입된다.

영일만 산업단지가 꽉 차자 포스코퓨처엠은 인근 블루밸리 국가산단으로 발을 넓혔다. 지난 5월 세계 최대 코발트 생산기업인 절강화유코발트와 손을 잡고 고순도 니켈과 전구체를 생산할 방침을 세웠다. CNGR 합작공장과 같다. 총 1조2000억원이 투자되는 이번 프로젝트는 약 8만평 부지에 2027년까지 준공 예정이다. 포스코퓨처엠은 포항 내에서 생산하는 음극재 물량도 증설을 통해 현재 연산 8000톤에서 2030년까지 32만톤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다.

포항시에 따르면 내년까지 조성 예정인 영일만 산업단지는 사실상 산업시설 분양이 끝난 상태다. 전체면적 중 7%에 달하는 미분양 물량은 포항시에서 운영용으로 남겨둔 차고지와 물류 용지 등 뿐이기 때문이다. 포항시에 따르면 블루베리 국가산단도 이차전지 관련 기업들이 다수 입주한 영일만 국가산단 인근에 있어 문의가 적지 않다.

IRA 세부규정 발표 이후로는 포항시에 이차전지 산업단지 관련 문의가 부쩍 늘었다. 국내 대기업 2~3개사가 물밑 접촉 중으로 대부분이 합작사 형태로 문의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차전지가 장치산업인 만큼 5만~10만평 정도 부지가 필요해, 투자금액이 최소 5000억원에서 1조원 상당으로 높은 영향이다. 포항시는 입주기업에 수도권 이전 기업 취득세 면제 등을 비롯해 경제자유구역, 중소기업투자, 외국인투자 등에서 교육 훈련을 비롯해 현금지원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4월 19일 LG화학과 절강화유코발트가 새만금 국가산업단지 투자협약식을 진행했다. 사진=새만금투자청
4월 19일 LG화학과 절강화유코발트가 새만금 국가산업단지 투자협약식을 진행했다. 사진=새만금투자청

신흥강자 새만금, 1년만에 29개사 유치

이차전지 지역 신흥강자로 대두된 곳은 새만금이다. 새만금개발청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기업 유치에 나선 새만금은 최근 1년간 29개 기업, 약 4조8000억원의 기업유치 성과를 달성했다. 새만금개발청에 따르면 이는 개청 이후 9년간 거둔 실적 보다 3배 많은 수준이다. 새만금개발청은 앞서 9년간 투자 33건과 1조474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한 바 있다.

현재 새만금에는 이차전지 기업 총 15개사가 입주해 있다. 성일하이텍, 대주전자재료, 덕산테코피아, 하이드로리튬 등이다. 양극재·음극재·전해액 등 소재산업부터 사용 후 배터리 재활용 분야까지 이차전지 밸류체인을 형성하는 핵심 기업들이 고루 포진해 있어 시너지가 기대된다.

새만금 역시 포항시처럼 IRA 영향을 받아 이차전지 기업 진출이 늘고 있다. 지난 3월 SK온과 에코프로, 중국 거린메이(GEM)는 합작사 GEM코리아뉴에너지머티리얼즈(GEM코리아)를 만들고 새만금에 내년 완공을 목표로 연산 5만t 수준의 전구체 공장을 짓기로 했다. 최대 1조2100억원을 투자하는 이번 공장은 1000명 이상의 대규모 신규채용도 예정됐다.

지난 4월에는 LG화학‧절강화유코발트가 신규법인을 설립해 1조2000억원 규모 전구체 공장 건설 투자협약을 맺었다. 2026년까지 1단계로 5만t, 2028년까지 1단계로 10만t으로 연간 생산능력을 늘릴 계획이다. 신규 직원도 700명가량 채용이 예고됐다. 양사는 새만금 생산공장에 메탈 정련 설비도 만들고 전구체 소재인 황산메탈까지 생산해 소재 공급망을 강화할 방침이다.

새만금은 투자 관련 법안 통과로 이차전지 관련 기업의 주목도가 높아질 전망이다. 지난 20일 ‘새만금 사업 추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3년간 법인세‧소득세 100%를 감면하는 일종의 경제특구로 지정돼서다. 새만금사업지역(군산·김제·부안)에서 창업하거나 사업장을 신설하는 기업이라면 이차전지 제조기업은 물론이고 연구개발업이나 태양광 사업 등도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외에도 새만금투자청은 교통 인프라와 행정구역을 강력한 입지조건으로 내세운다. 매립지역인 만큼 토지규제나 민원, 토지보상 등의 리스크 없이 사업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트라이포트(항만‧공항‧철도) 구축사업도 준비 중이다. 신항만은 5만t급 선박이 접안 가능한 부두 2선석이 2026년 개항을 목표로 한다. 새만금항 인입철도는 2030년 개통을 목표로 주민 의견을 청취 중이며, 국제공항은 기본계획을 완료하고 2029년 개항 예정이다. 새만금투자청은 현재 입주를 고민 중인 기업들이 많아 투자유인책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