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 나주본사 전경. 사진=한국전력공사
한국전력공사 나주본사 전경. 사진=한국전력공사

한국전력공사 적자 불똥이 발전자회사로 튀었다. 한국전력공사가 지분 100%를 소유한 5개 발전자회사도 속속 비상경영을 선언했다. 5개 발전자회사는 2026년까지 6조원 이상 비용을 줄이겠다는 목표다. 에너지업계 일각에서는 지나친 긴축재정이 에너지전환 시기 투자가 급한 5개사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2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한국전력공사 재무구조 개선을 지원하려 5개 발전자회사도 비상경영체제를 선언하고 자구노력을 발표하고 있다. 이들이 밝힌 총 재정건전화 금액은 6조2631억원에 달한다. 재정건전화 주요 내용은 비핵심자산 매각, 임금 인상분 반납, 정원 감축 등과 투자 등에서 사업비를 줄이는 것이 골자다. 5개 발전자회사는 한국전력공사 완전자회사로 재무건전성 내용이 그대로 연결 재무제표에 반영된다.

비핵심자산 팔고, 조직 슬림화

한국서부발전이 가장 큰 규모의 절감계획을 밝혔다. 회사는 이전에 발표한 2조318억원에 971억원을 추가해 총 2조1289억원의 재정건전화 계획을 세웠다. 복합발전소 건설 시 신기술 적용과 부산물 재활용 등을 통해서다. 지난 1월 공공기관 기능조정 및 조직·인력 효율화 계획으로 정원 77명을 줄였고 19개 부서 통폐합을 마쳤다. 2직급 이상 간부의 올해 임금 인상분을 반납해 에너지 취약계층 지원도 진행한다.

2026년까지 1조2300억원 상당 재정건전화 계획을 밝힌 한국중부발전도 있다. 비핵심 자산 적기 매각으로 2800억원, 투자 규모 및 시기 조정으로 4200억원 등의 비용을 줄일 것으로 기대했다. 한국중부발전 역시 2직급 이상 주요 간부들의 올해 임금인상분을 반납한다. 지난 1월 정원 148명 감축, 57명 재배치로 정원 91명을 반납한 바 있다.

한국남부발전은 지난해 재정건전화 계획 당시 목표 금액인 6883억원에 4396억원을 추가해 총 1조1279억원의 경영효율화를 추진한다. 인금 인상분 반납도 2직급 이상 간부(임금 인상분 100%)과 3직급 이상 직원(50%)을 대상으로 추진한다. 석탄광산 등 각종 보유지분 매각으로 3000억원 상당 부채를 감축할 예정이다. 한국남부발전도 지난 1월 정원 185명(6.8%)를 줄여 효율화를 추진하고 사업소의 유사 중복업무 발굴 및 대부서화를 통한 조직 통폐합으로 효율화를 우선할 방침이다.

9481억원 규모 자구책을 추진하는 한국동서발전도 있다. 2026년까지 비핵심 자산 매각, 우선사업 선별·시기조정, 조직·인력효율화 등으로 슬림한 조직을 만들겠다는 목표다. 한국동서발전도 경영진을 비롯한 2직급 이상 간부 임금 인상분 100% 반납을 결정했다. 인력효율화는 지난 1월 정원 80명 감축으로 1차 진행을 마쳤다. 추가적인 인력효율화도 적극 검토중이다.

한국남동발전의 재정건전화 예정 규모는 8282억원이다. 5개 발전사 중 가장 적은 수준이나 지난해 세운 목표치(5874억원)보다 2400억원을 더했다. 비핵심자산 매각으로 2800억원, 투자 등 사업비 3600억원 등의 절감이 예정됐다. 인력은 지난 1월 87명의 정원을 반납하고 신규 사업에 36명을 재배치해 모두 123명을 감축했다. 임금 인상분 반납은 현재 2직급 이상 간부에 한해 100% 적용했으며, 3직급으로 확대도 고려 중이다.

나이스신용평가 조사에 따르면 한국전력공사 5개 발전자회사는 최근 4년간 사채와 유동성장기부채 등으로 차입금이 급증했다. 사진=이하영
나이스신용평가 조사에 따르면 한국전력공사 5개 발전자회사는 최근 4년간 사채와 유동성장기부채 등으로 차입금이 급증했다. 사진=이하영

투자·인력 다이어트…부작용 우려

지나친 긴축재정에 성장성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에너지전환 시대를 대비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 자칫 미래 성장 동력을 해칠 수 있다는 논리다. 실제 한국신용평가는 이미 지난해 5월 발전자회사 자구안이 나온 이후 재무구조에 주의를 요한다고 밝힌 바 있다. 노후 석탄발전소 폐쇄, LNG 발전 비중 증가, 신재생에너지 투자 부담 증가 등으로 수익성 및 재무안정성이 저하되는 와중에 에너지 전환정책에 따른 투자부담은  지속되는데 따른  우려다.

5개사는 ‘화력발전자회사’로도 불린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5개사는 2022년 6월말 기준 석탄과 유연탄 발전 설비 비중이 50~80%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전체 전력판매량의 약 40%를 담당한다. 지난해 급격히 오른 에너지 가격과 에너지 전환을 위한 재무부담 증가로 2중고를 겪은 이유다.

이상은 한국신용평가 선임연구원은 “2017년 이후 5개 화력발전자회사 합산 기준 5년 평균 영업이익률은 2.5%, 상각전영업이익(EBITDA마진율)은 18.5%에 그쳤으며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2022년 6월말 기준 5개 화력발전자회사의 순차입금은 31조원 수준으로 확대됐고 부채비율도 163.6%로 증가했다. 향후 저탄소발전 전환을 위한 투자가 각 사별 연간 1조원 내외로 예정돼 재무부담 증가가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에너지전환 투자가 지연될 경우 전기 사용이 많은 국내 기업들의 해외 이탈도 우려된다. RE100은 기업 전력을 100% 재생 에너지로 사용하자는 캠페인이다. 현재 RE100은 또 다른 수출규제 장벽이 되고 있어, 다수 기업이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말레이시아 등지로 공장을 옮기거나 이전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월 마이크 피어스 RE100 대표는 MBC와 인터뷰에서 “한국이 재생에너지 목표를 30%에서 20%를 조금 넘는 수준으로 줄인 것은 실수”라며 “그런 정책은 세계적으로 입지를 확보하려는 기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5대 발전자회사는 각종 투자로 차입금도 큰폭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나이스신용평가 조사에 따르면 5개사 사채 총액은 2019년 19조4853억원에서 지난해 23조1562억원으로 3조6000억원 상당 늘었다. 1년 이내에 상환해야 하는 유동성장기부채도 5540억원이나 증가했다. 투자 기간이 늘어지면 풍력‧태양광‧수소발전 등 에너지 전환 작업이 늦어져 RE100 기준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이자 비용만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전력도매가(SMP)상한제 역시 발전자회사에는 실적저하 요인 중 하나다. SMP상한제는 한국전력공사가 발전사에서 전기를 살 때 가격에 상한선을 둔 제도다. 한국전력공사는 지난해 전쟁으로 높아진 에너지 가격만큼 소매가격을 올리지 못해 부채가 쌓였는데 이를 어느 정도 해소했다는 평가다. 자연히 전력을 생산해 판매하는 발전자회사에는 마이너스가 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과도한 업무효율 요구와 임금 삭감이 또 다른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평가도 있다. 정원축소와 업무효율화는 안전불감증과 연결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인력축소로 발전소 재해가 잇따르기도 했다. 신사업을 확장하며 기존 인원마저 축소하면 인력 부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지나친 임금 삭감이 사기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한 발전자회사 관계자는 “발전자회사는 정년이 보장된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1월 인원 감축은 거의 퇴임한 사람들일 것”이라면서도 “향후 인력 감축으로 업무 부담이 가중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발전자회사 관계자는 “(최근) 한국전력공사가 필요한 돈마저 가져가 사정이 더 어렵다”고 하소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