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16일 “전세제도가 수명을 다한 게 아닌가 보고 있다”고 말한 가운데 국토부 산하 기관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 측 관계자가 다음날 정반대의 분석을 내놨다. 전문가들도 전세제도를 놓고 긍정론과 회의론으로 엇갈리고 있다.

신형섭 LH토지연구원(LHRI) 수석연구원은 17일 오후 LHRI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전세제도 존폐에 대한 말이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수요가 많다”며 “그러므로 전세 제도를 폐지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신 수석연구원은 이에 대한 근거로 최근 LH가 시세의 90%라는 높은 가격에 전세를 공급했음에도 서울을 기준으로 322채 모집에 9000명에 이르는 신청자가 몰렸단 점을 언급했다.

17일 오후 LHRI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사진=이혜진 기자
17일 오후 LHRI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사진=이혜진 기자

이런 시각과 대조적으로 원 장관은 전날 오후 기자간담회에서 “전세제도가 그동안 사회에서 해온 역할이 있지만 이젠 수명을 다한 게 아닌가 보고 있다”며 “전세제도라는 것은 집주인이 세입자한테 몫 돈을 빌린 건데 갚을 생각 안 한다는 건 황당한 이야기”라고 꼬집었다.

이처럼 원 장관이 세입자 기준에서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문제에 집중한 것과 달리 신 수석연구원은 집주인 관점에서 전세금이 유리한 측면이 고려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세제도로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빌린 돈인 전세금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지 않으면서도 전세금을 활용할 수 있다”며 “전세제도 유지로 상호 간의 이익에 기반한 상생 관계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 관계자들 뿐 아니라 민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긍정론과 회의론이 공존하고 있다. 전세제도를 긍정하는 관계자들은 보증금 반환 문제에 대한 여러 대책을 제시했다.

이상영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가 LHRI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이혜진 기자
이상영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가 LHRI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이혜진 기자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은 “정부에서 다양한 방안이 나왔지만 다른 금융 거래들이 그렇듯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전세금을 늦게 줬을 때도 높은 지연 이자율을 적용했더라면 이들이 다른 금융사에서 빌려서라도 제때 갚았을 것”이라며 “정부 대책을 임대차 3법 폐지 등 엉뚱한 방향으로 갈 필요 없이 보증금 반환에 우선해 만들면 된다”고 말했다.

이상영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이번 사태에서 금융 기관의 책임이 잘 언급되지 않고 있다”며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임대 리츠 같은 출자 방식으로 피해 규모를 최소한으로 줄여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반면 선진국들과 달리 서민이 이용할 수 있는 양질의 주택 공급 부족이 전세제도로 이어지고 있단 지적도 나왔다.

지규현 한양사이버대학교 디지털건축도시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임대차 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선진국들처럼 서민들이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월세형 임대 주택이 없다는 것”이라며 “물론 이들에게 월세 체납의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선진국에는 이를 관리하기 위한 인프라가 구비돼 있다. 이런 유형의 주택이 공급되지 않으면 앞으로도 한국형 전세 구조 아래서 여러 문제가 계속 발생될 것으로 보인다”고 일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