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 상하이 2023’에서 PRiMX 배터리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삼성SDI]
‘오토 상하이 2023’에서 PRiMX 배터리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삼성SDI]

2000년대 초반 발아한 K배터리는 꾸준히 성장해왔다. 국내에서 시작해 유럽과 동남아 시장으로 점차 발을 넓혀갔다. 내수 시장이 크지 않은 한국에서 글로벌 10위 배터리사를 3사나 보유했다는 사실 자체가 시사하는 점이 크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K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연간 누적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점유율은 2018년 11.8%에서 2020년 34.7%를 기록했다. 2020년은 K배터리3사가 중국계 배터리사인 CATL과 BYD 점유율을 뛰어넘은 해다. 문제는 이듬해 다시 점유율이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점이다.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2020년 당시 점유율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중국 전기차 시장 위축 및 보조금 축소 영향이 컸다. 여기에 국내 배터리업계가 지속적으로 진행한 유럽 판매 확대 전략도 일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K배터리가 CATL로 대표되는 중국 배터리를 넘어 2020년 영광을 회복할 방법은 무엇일까. 배터리업계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 광물 기준, 전고체‧LFP 배터리 상용화 등을 감안해 향후 4년이 미래를 좌우할 생존시기라는 판단이다. 현재 점유율 하락이 위기의 전조증상이라는 논리다.

장밋빛 IRA에 잊혀진 점유율 감소

지난해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은 K배터리에 새로운 기회가 됐다. IRA 법안 자체가 미국 전기차 산업 내 동맹국 우대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핵심광물과 부품 도입 등을 북미나 미국 FTA 체결국으로 한정해 중국 진입을 막는 역할을 했다. 이 수혜를 노리고 국내 배터리업계도 북미에 단독과 합작(JV) 형태로 공장건설을 추진했다. 덕분에 올 초에는 K배터리3사 합산 누적수주금액이 1000조원을 넘는다는 희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이러는 동안 잊혀진 것이 점유율 하락이다. SNE리서치 연간 누적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점유율 조사 결과 K배터리 3사 합산 점유율은 2020년 34.7%에서 2022년 23.7%로 2년 만에 11%포인트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중국 2사 글로벌 점유율은 20%포인트가량 급증했다. K배터리 점유율 하락세는 중국 배터리 상승세와 겹치며 우려를 낳았으나, 배터리업계는 성장세에 집중해 점유율 하락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견이 발견된 것은 올해 3월이다. 배터리 3사는 ‘인터배터리 2023’에서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개발 및 양산 계획을 발표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애리조나에 16GW 규모 LFP 파우치형 배터리 생산공장을 건설, 2026년부터 양산 계획을 세웠다. SK온은 지난해 7월 개발을 선언한 LFP 배터리 시제품을 선보였다. 삼성SDI도 개발 계획 발표에 이어 이달 초 에코프로그룹과 함께 총 233억원 국책사업을 진행하며 사업 개발에 나섰다.

배터리업계 일각에서는 LFP 배터리 분야 진출을 ‘늑장대응’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이때부터 완성차업계는 대중시장을 겨냥한 배터리로 LFP를 눈여겨봤다.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속도를 내는 현재는 대부분 완성차업계가 삼원계보다 30% 저렴한 LFP 배터리 도입을 선언했다. 업계는 LFP 배터리를 상용화하는데 2년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글로벌 점유율이 최고점을 찍은 2020년에만 준비했어도 올해부터 상용화로 고객사 대응이 가능했을 것이란 계산이 나온다.

미적대는 사이 CATL을 필두로 한 중국계 배터리 약진이 두드러졌다. 실제 한국신용평가는 4월 2차전지 산업 이슈 관련 웹캐스트에서 전기차 배터리시장 내 LFP 배터리의 비중 확대(2020년 약 5%→2022년 약 30%)가 국내 3사 글로벌 점유율 하락으로 연결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글로벌 LFP 배터리 중 95% 이상이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이 8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글로벌 인재 채용 행사 BTC(Battery Tech Conference)를 개최했다. [사진=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이 8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글로벌 인재 채용 행사 BTC(Battery Tech Conference)를 개최했다. [사진=LG에너지솔루션]

K배터리 과제, 첩첩산중

한 전문가는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LFP 배터리 과제마저 CATL의 지난해 모델보다 기술이 뒤처진 부분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CATL이 지난해 발표한 신형 LFP 배터리인 ‘M3P 배터리’는 1회 충전으로 최대 700km를 주행가능하다. 2030년 산업부 연구과제가 끝나봐야 7년 뒤진 기술을 내놓는다는 고민이다.

고객사인 완성차업계가 원하는 개발 방향인지도 고민이 필요하다. 완성차업계에서는 CATL이 개발한 셀에서 바로 팩으로 연결되는 셀투팩(CTP‧Cell to Pack) 기술을 선호한다. 현대차그룹 주요 부품사인 현대모비스도 지난 2021년 CATL과 셀투팩 기술협약을 진행한 바 있다. CATL은 2025년 전후로 배터리셀을 전기차에 그대로 붙이는 셀투섀시(CTC‧Cell to Chassis) 상용화를 검토하고 있다. LFP 배터리 도입 자체가 고객사 요구로 이뤄진 것인 만큼 ‘기본만 한다’는 식이 아닌 더 다각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이 외에도 K배터리 과제는 산적해 있다. 하이니켈과 하이망간, 코발트프리 등 삼원계 제품 개발을 비롯해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 소디움 배터리 등 미래 소재 개발이 있다.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진행 중인 해외 공장건설 투자금이 재무건전성을 해치지 않는지도 살펴야 한다.

화재 문제도 넘어야 할 산이다. 지난달 한국미래기술교육연구원 주최로 진행된 ‘리튬이차전지 열폭주 방지 및 화재진압 기술’ 세미나에서는 삼원계 배터리가 LFP 배터리에 점유율 싸움에서 밀린 이유로 ‘화재 원인 규명 불가’를 수차례 지목했다. 

향후 4년이 분기점

배터리업계에서는 향후 4년이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국내 배터리업계에서는 2027년까지 ▲IRA 핵심광물 80%로 상향조정 ▲전고체 배터리 사업 윤곽(삼성SDI 상용화 예상 시점) ▲LFP 배터리 생산 본격화 등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한다. 반대로 이 부분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면 사업 정체나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LFP 배터리와 관련해 김종훈 충남대 전기공학과 교수는 “기존에 전기차 화재에서는 삼원계 배터리, 하이니켈 이슈가 있었다. 니켈이 에너지 밀도를 높일 수는 있지만 안전성을 떨어뜨려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LFP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떨어질 수 있지만 안전성 장점으로 현대자동차뿐만 아니라 배터리 3사도 관련된 연구를 다시 진행할 정도”라고 말했다.

재무와 사업적 측면에서 주의를 환기한 전문가도 있다. 박종일 나이스신용평가 기업평가본부 선임연구원은 “2027년까지 미국을 중심으로 대규모 투자가 진행될 예정”이라며 “해외 투자로 생산이 진행되는 만큼 수율이나 가동률 문제로 투자금 회수가 지연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현재 상위 이차전지 기업들은 (배터리가) 없어서 못 팔지만 중국‧일본을 비롯해 유럽에서도 신규 공급자들이 늘어나 경쟁 기업이 생길 우려가 있다”며 “공급과잉 전환 등 수급 상황 변화가 부담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안정적인 배터리 소재 확보가 급선무라 판단한 전문가도 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IRA 때문에 지금 중국 업체가 약간 뒷걸음질 치면서 한국 기업체들이 반사이익을 보는 것은 맞다”면서도 “포드가 CATL과 합작한 것처럼 (IRA와 같은) 어떤 호황과 유리한 조건이 영구하지 않고 중국 업체도 어떻게든 해결책이나 편법을 찾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최근 미국도 배터리 패권 중국 배제에서 한발 물러난 모양새다. 리튬‧흑연 등 광물 자원에서 중국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인도네시아나 호주 등을 통해 원자재 확보 경쟁력을 키우지 않으면 중국에 뒤쳐질 것이다. 3~4년이 지나면 (역전할) 기회도 없다”고 판단했다.

국내 배터리 산업이 중국에 못 미치는 점을 인정하고 정책을 재정립하고 인력양성에 힘써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 “점유율이 밀리는 이유는 복합적인데 이 부분에 대한 고민과 반성이 필요하다”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인력양성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 기업이 열심히 하고 있지만 (현재 국내 배터리업계에) 초격차는 없다”며 “삼원계‧LFP로 표출되는 기술력 문제를 돌아보기 위해 정부 정책을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