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상하이 국제 자동차 산업 전시회. [사진=연합뉴스]
제20회 상하이 국제 자동차 산업 전시회. [사진=연합뉴스]

이기는 싸움의 시작은 적을 아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중국 춘추전국시대를 관통한 ‘손자병법’은 26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K배터리가 적수인 CATL‧BYD 등 중국 배터리업계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 이유다.

시대를 보고 투자한 쩡위친

CATL은 엔지니어 출신 쩡위친(曾毓群)이 2011년 세운 배터리 기업이다. 그는 아이폰에 독점 납품하는 일본 전자기기업체 TDK 산하에서 일했다. 이직을 준비하던 쩡위친은 당시 임원의 공동창업 제안을 받고 CATL 전신으로 부르는 ATL을 세운다. ATL은 전자기기 배터리 제작 회사다. 후에 쩡위친은 전기차 배터리 전망을 매우 높게 보고 이 부분만 따로 떼어 CATL로 독립한다. TDK 배터리 기술이 CATL로 연결됐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CATL은 기술보다 시장공략에서 더 유리한 지점을 획득했다. 당시 중국 공산당 정책과 전기차 배터리 사업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자동차분야에 유독 약했던 중국은 기존 자동차 시장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는 전기차를 신성장산업으로 결정하고 일찍부터 육성에 나섰다. 또 중국이 추진하는 신 실크로드 정책인 일대일로(一帶一路)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에서 배터리 광물소재 주도권도 획득했다. 여기에 중국은 친환경차 보조금도 적극 지원하며 국가적으로 전기차 사업 확장에 힘을 쏟았다. 이 과정에서 CATL은 자연스럽게 중국 내 잘 갖춰진 광물과 부품 밸류체인, 보조금 수혜를 받았다. 일각에서 배터리업계 세계 1위에 오른 CATL을 폄하하는 이유 중 하나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CATL은 명실상부한 글로벌 선두 기업이다. 지난해 CATL의 전기차용 배터리 판매 실적은 출하량 기준 270기가와트시(GWh), 시장점유율로는 39.1%로 1위다. 뒤를 이어 2위를 기록한 LG에너지솔루션 출하량이 103GWh, 14.9%를 기록했다. 양사를 비교하면 CATL은 점유율만 2배를 넘어선다. SK온(44GWh, 6.4%)과 삼성SDI(36GWh, 5.2%) 실적을 더해도, 국내 배터리 3사는 CATL보다 출하량은 87GWh, 점유율은 12.6% 못 미친다.

CATL 배터리 제작공정. [사진=CATL 유튜브 캡처]
CATL 배터리 제작공정. [사진=CATL 유튜브 캡처]

약점을 강점으로…‘샤오미 전략’ 택한 CATL·BYD

물론 CATL도 처음부터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다. CATL이 문을 연 2010년대만 해도 삼원계(NCM·니켈코발트망간,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NCMA·니켈코발트망간알루미늄 등) 배터리가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주류였고 향후 70% 점유율을 차지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이렇게 되면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주종목으로 하는 CATL은 아무리 성장해도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 30%를 넘을 수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당시는 에너지밀도가 높고 가벼운 배터리의 성장성을 높게 평가했다. 전기차 충전기 보급률이 낮아 충전이 쉽지 않다보니 1회 충전 주행거리를 중시해서다. LFP 배터리 핵심소재인 인산이나 철은 삼원계 배터리에 들어가는 니켈이나 코발트보다 무겁다. 이로 인해 같은 무게에서 낼 수 있는 에너지 효율이 떨어져 LFP 배터리는 삼원계 배터리보다 낮은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CATL은 소재의 단점을 구조로 뛰어넘었다. 모듈 없이 배터리팩을 넣는 셀투팩(Cell To Pack‧CTP) 기술을 적용해서다. 리튬이온배터리인 삼원계‧LFP 배터리는 화재 위험성이 높아 배터리를 모듈로 감싸는 형태로 발전했다. CATL은 여기서 모듈을 걷어내고 사용할 수 있는 배터리팩 기술을 개발해 LFP가 무겁다는 단점을 극복했다. 제외한 모듈만큼 배터리팩을 넣어 삼원계와 비슷한 에너지 용량을 맞출 수 있었다.

중국 배터리 점유율 2위이자 전기차 1위 기업인 BYD도 셀투팩 기술을 적용한 블레이드 배터리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블레이드 배터리는 기존 배터리에 비해 절반 두께에 효율적인 열관리로 1회 충전 주행거리가 600km에 달한다. 배터리 효율을 인정받아 버스나 트럭 등 상용차에 다수 차용됐다.

제20회 상하이 국제 자동차 산업 전시회. [사진=연합뉴스]
제20회 상하이 국제 자동차 산업 전시회. [사진=연합뉴스]

무게 문제를 해결하자 가격경쟁력이 떠올랐다. 희귀금속인 니켈이나 코발트를 사용하는 삼원계 배터리는 가격 인상 요인이 높은 반면 인산이나 철은 자원이 풍부해 가격 인상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 업계에 따르면 소재 영향으로 삼원계 배터리보다 LFP 배터리 가격이 30%가량 저렴하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낮은 인건비와 전기요금이 합쳐져 가격경쟁력이 생긴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배터리 원가에서 70%가 핵심광물임을 감안하면 인건비와 전기요금이 전체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 의견이다.

현재 CATL과 BYD는 LFP 가격경쟁력으로 완성차업계 러브콜을 받고 있다. 전기차 시장이 보급형으로 주류시장이 빠르게 전환되면서 배터리 가격경쟁력이 무엇보다 중요해져서다. 이미 CATL의 LFP 배터리는 테슬라 모델3(중국산 유럽, 북미, 아시아 수출 물량)를 비롯해 중국 내 제너럴모터스(GM) JV에 탑재되고 있다. 현대자동차도 신형 코나EV에 CATL의 LFP 배터리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BYD는 배터리와 전기차를 모두 생산하는 거의 유일한 회사다. 이 덕분에 배터리 자체 공급 및 차량 제조 등 수직통합적 공급망관리(SCM) 구축으로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BYD는 가격경쟁력 장점을 활용해 최근 국내에서도 1000만원대 전기차로 시장 공략에 나섰다.

이 외에도 LFP 배터리 도입을 예고한 완성차 회사가 많다. 토요타와 포드, BMW, 볼보그룹, 다임러, 리비안 등이다. 사실상 글로벌 완성차업계 대부분이 LFP 배터리를 신형 전기차에 도입할 것이 확실시된다. CATL에게는 시장이 더 커지고 있는 셈이다. CATL 성장스토리는 필수 기능만 넣어 가격경쟁력을 확보한 샤오미의 전략을 연상시킨다. 샤오미가 글로벌 가전업계에서 입지를 다진 것처럼 CATL도 무게라는 단점을 극복해 독보적인 위치를 형성했다.

CATL 기린 배터리. [사진=CATL 유튜브 캡처]
CATL 기린 배터리. [사진=CATL 유튜브 캡처]

후발주자 견제 나선 CATL

왕좌에 오른 CATL은 자만하지 않고 지난해부터 후발주자 견제에 나서고 있다.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 등에 따르면 CATL은 올해 하반기부터 3년간 자사 배터리를 80% 이상 공급받기로 한 회사에 리튬가격 인하를 결정했다. 증권가에 따르면 대상은 중국 내 일부 전기차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사인 니오와 리오토 등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향후 3년간 탄산리튬 가격을 현재 톤당 40만위안에서 절반 가격인 톤당 20만위안 수준으로 할인해 공급받는다. 이는 후발주자를 따돌리며 시장점유율을 더 늘리려는 시도로 분석된다.

LFP 배터리가 대세로 등극하며 CATL도 성장했지만 중국 내 기업들이 라이벌로 함께 성장해서다. 특히 업계에 따르면 배터리 99% 이상을 LFP로 생산하는 BYD 성장세가 가파르다. SNE리서치가 2022년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을 분석한 결과 BYD는 지난해 167.1%의 고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는 상위 5개사 중 가장 높은 성장률이다. SNE리서치는 BYD가 2023년에도 꾸준한 성장세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했다.

그동안 중국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CATL은 최근 미국과 유럽 시장진출에 적극적이다. 특히 미국이 사실상 중국 기업 진출을 막은 인플레이션방지법(IRA) 위협에 대응하고자 미국과 유럽 기업과 협업을 확대했다. 미국 완성차회사 포드와는 미시간주 배터리 공장을 포드가 짓고 기술제휴 형태로 사업을 진행했다. 지난 3월 미시간주는 해당 공장에 1억2300만달러(약 1600억원) 규모 보조금 지급을 승인했다.

CATL은 테슬라와도 협업해 미국에 진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해 독일 튀링겐주 공장에서 배터리 생산을 진행했으며, 같은 해 9월 헝가리 데브레첸에 73억유로(약 10조6000억원) 규모 배터리 공장 건설 계획을 밝혔다. 국내 배터리업계가 IRA에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이유다.

김현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CATL과 포드 협력에 대해 “백악관에서 해당 공장 설립 환영 성명을 발표한 것과 중국 정부 역시 기술 수출을 제한하지 않겠다고 언급한 점을 감안할 때 해당 공장 설립이 최종 승인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며 “한국이 집중하고 있는 시장과 달리 저가 시장으로 CATL이 침투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한적인 경쟁이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