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가 포털 다음(Daum) 사업을 담당하는 사내독립기업(CIC; Company in Company)을 오는 15일 설립한다고 4일 밝혔다. 

검색 및 콘텐츠 유통 플랫폼으로서 다음 서비스의 가치에 더욱 집중하고 성과를 내고자 다음사업부문을 CIC로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신속하고 독자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한 조직체계를 확립해 다음 서비스만의 목표를 수립하고 서비스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다음 CIC 대표는 황유지 현 다음사업부문장이 맡는다. 네이버를 거쳐 카카오 서비스플랫폼실장을 맡았던 황유지 대표 내정자는 플랫폼 사업과 서비스 운영 전반에 대한 업무 역량과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CIC를 안정적으로 이끌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업계에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카카오가 사실상 다음을 버리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는 가운데 반대편에서는 다음의 화려한 귀환을 예상하기도 한다. 그리고 냉정하게 말해 업계에서는 전자에 더 무게를 싣고 있으나, AI와 포털의 판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도 무겁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사진=카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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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아픈 손가락
2014년 카카오와 다음이 합병한 후 포털 다음에게는 찬바람이 몰아쳤다. 일각에서 카카오가 다음을 정복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당시 합병법인 '다음카카오'는 이름의 순서와 달리 카카오톡 중심의 전략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당시는 모바일 및 O2O 전략이 빠르게 가동되던 때였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를 중심으로 재규합된 조직의 정체성은 카카오톡을 통한 다양한 온오프라인 전략으로 수렴됐다. 이후 사명이 '카카오'로 굳어지며 모바일 메신저 기업으로 활동하는 한편 온오프라인 확장 전략을 가동하는 흐름은 더욱 강해졌다.

네이버가 포털을 중심으로 중앙집중형 생태계를 그리는 한편 다양한 영역에 침투해 수직계열화, 나아가 다른 회사와의 협업으로 미래를 타진했다면 카카오는 모바일 메신저를 바탕에 두고 각자독립경영에 집중하는 한편 다소 파편화된 전략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이 과정에서 다음의 검색 점유율은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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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그리고 AI
상황이 달라진 것은 최근 글로벌 빅테크 시장을 휩쓸고 있는 초거대AI 및 생성형AI 시대가 열리면서다. 

오픈AI의 챗GPT가 등장하며 메타버스와 NFT 등 기존의 메가 IT 이슈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AI 자체가 급부상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 이른바 생존주로 분류되는 안보 및 방산, 농업 등의 FANG2.0이 각광을 받았으나 지난해 말부터 올해초까지 몰아친 AI 이슈는 다시 빅테크를 세상의 중심에 올려놨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각에서는 이 또한 유행이며 마케팅 전략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으나 현 상황에서 AI가 중심이 되는 빅테크 업계의 움직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공격적이고 확장적이다.

그 트리거로 볼 수 있는 오픈AI의 챗GPT는 그 자체로 AI챗봇으로 탁월한 존재감을 자랑하며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렸다. 

구글은 빠르게 대응했다. AI 측면에서 보면 완전한 뒤통수를 맞았기 때문이다. 딥마인드 알파고 이슈를 터트리며 글로벌 AI 시장의 큰 손으로 활동하는 한편 지난해 AI 람다를 통해 AI 영혼의 가능성까지 타진했던 구글이지만, 오픈AI의 챗GPT 등장으로 AI 주도권을 놓칠 수 있다는 공포가 피어났다.

부랴부랴 바드를 출시하는 한편 동시다발적인 AI 전략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내부적으로 '코드레드'까지 발령하며 속도전에 뛰어들었다. 한때 미 국방성과 프로젝트 메이븐을 진행하며 AI 살상무기 논란이 벌어졌고, 이에 대한 반성으로 AI 윤리 가이드 라인을 만드는 등 공격적 AI 로드맵에 거리를 뒀으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그 충격은 단순한 AI로 대표되는 빅테크 시장 흐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AI가 웹2.0 시대의 맹주인 포털의 정체성을 뒤흔들며 시장 전반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최초의 불꽃은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빙이다. MS가 오픈AI와의 빠른 협력을 바탕으로 챗GPT를 자사의 검색엔진 빙에 탑재하는 순간 포털 검색 시장이 요동을 쳤다. 아직은 글로벌 시장 점유율 측면에서 구글에 역부족이지만 빠르게 간격을 좁히기 시작했다. 심지어 삼성전자가 스마트 디바이스의 기본 검색엔진에 구글이 아닌 빙을 채택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까지 전해졌다. 

구글 입장에서는 더욱 공포스러운 일이다. 빠르게 출시한 바드가 의외로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상태에서 AI 패권 주도권을 일부 상실한 상태다. 여기에 자사가 장악한 검색엔진 시장도 'AI-빙' 충격에 흔들리며 위기감은 고조됐다.

여기서 구글은 새로운 전략적 방향성을 모색한다. 포털과 AI챗봇의 결합인 빙에 대항해 자체 포털 플랫폼을 중심으로 새로운 접근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을 이끄는 선다 피차이 CEO가 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AI챗봇이 구글의 검색 사업에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프로젝트 메자이를 준비하고 있음을 알렸다.

정확한 내용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다만 포털에 AI챗봇을 도입하는 빙 인터페이스 전략이 아닌, 포털 자체에 AI를 지원하며 AI챗봇에는 거리를 두는 인터페이스를 준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에는 구글 브레인과 딥마인드 합병을 통해 AI 전략에 더욱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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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의 발견
빙과 챗GPT의 결합은 구글 제국이 지배하는 글로벌 검색엔진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이는 막대한 수익을 자랑하는 디지털 광고시장을 노릴 수 있다는 뜻이며, 웹2.0 시대를 장악한 포털 시장의 흐름이 요동치고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카카오가 포털 다음을 CIC로 구성한 결정적 배경이다. 

글로벌에서는 구글이, 국내에서는 네이버가 포털 검색시장을 장악한 가운데 다음은 반등의 기회를 찾지 못한 바 있다. 그러나 AI와 결합한 빙이 새로운 길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줬다. 심지어 포털은 그 특성상 커뮤니티 기반의 방대한 데이터가 흘러 AI 전략 가동에 있어 약속의 땅이 될 수 있다. 카카오가 다음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이유다.

그 연장선에서 카카오는 다음CIC 설립을 통해 AI 포털 속도전을 벌일 전망이다. 당분간 매각 등을 고려하지 않은체, 견고한 제국의 틈을 빠르게 후려치겠다는 각오다.

실제로 카카오는 "다음 CIC는 검색, 미디어, 커뮤니티 서비스 등 핵심 사업을 중심으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특히 급변하는 트렌드에 맞춰 AI를 활용한 신규 서비스를 출시해 이용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기술 선도적 서비스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내부적으로도 기회가 보이는 순간 빠르게 시장에 뛰어들어 성과를 낸 사례도 있다. 이커머스 시장에서 속도감 있게 사업을 전개하고, 커머스 사업 특성에 맞는 경영 제반 및 보상 체계 등을 갖추고자 지난해 8월 커머스 CIC를 설립해 관계형 커머스 플랫폼으로 입지를 강화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다음CIC도 속도전이다.

물론 업계 전반적으로는 부정적인 분석이 우세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카카오가 포털 다음을 사실상 버리는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글로벌에서는 구글, 국내에서는 네이버에 밀려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카카오가 '온리 카카오' 전략으로 나갈 것이라는 뜻이다.

다만 CIC 자체가 무조건 매각의 전제조건은 아닌데다, 지금의 상황을 보면 AI 등장으로 포털 업계에 '조금이지만' 변화의 기회가 생긴 것은 확실하다. 카카오가 다음을 사실상 버린다고 해도 그 전에 CIC 형태를 중심으로 다음을 통해 승부를 걸어볼 여지는 있다. 그 정도로 AI와 포털 시너지는 잠재력이 충만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