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보증금을 제대로 반환받지 못해 눈물 짓는 깡통전세·전세사기 피해자가 늘어나는 중이다. 5월 1일 정부가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특별법을 보완했지만 피해자의 보증금 전액 회수가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이 사회적 재난은 한국 사회에 깊은 생채기를 남기고 있다. 2일 한국부동산원의 ‘임대차시장 사이렌’에 따르면 올해 1~3월 전국에서 발생한 보증사고 3474건 중 수도권 비중이 90.8%를 기록한 가운데 지방에서도 1월 104건, 2월 122건, 3월 95건 등 월마다 100건 내외로 관련 사고가 일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수도권에서는 인천 부평구(285건)와 경기도 부천(282건), 서울 강서구(269건), 인천 서구(242건)‧미추홀구(238건) 등 순으로 사고가 많이 발생했다. 수도권에서도 서부 지역에서 주로 보증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 1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부동산 사무소에 급전세 매물을 알리는 홍보물들이 붙어 있다. 초역세권에 관리비 2만원, 풀옵션이지만 인근 중개 업계에 따르면 찾는 이가 드물다. 사진=이혜진 기자
지난 1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부동산 사무소에 급전세 매물을 알리는 홍보물들이 붙어 있다. 초역세권에 관리비 2만원, 풀옵션이지만 인근 중개 업계에 따르면 찾는 이가 드물다. 사진=이혜진 기자

전세사기 공포에 피해자 밀집 지역 전세 거래량, 전셋값↓

그러면서 이 일대 전세 매물이 최근 많이 줄어들고 있다. 이에 따라 거래량도 급감했다. 서울부동산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기준 강서구의 다세대‧연립 주택 전세 거래량은 전월(545건)보다 43.5% 감소한 308건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서울 전체 다세대‧연립 주택 전세 거래량이 33.1% 줄어든 것과 비교해 감소 폭이 훨씬 크다.

경기부동산포털에 따르면 부천도 이 기간 다세대‧연립 주택 전세 거래량이 전월(215건) 대비 39.6%가 급감한 215건에 그쳤다. 이는 경기도의 전체 다세대‧연립 주택 전세 거래량 하락 폭(-34.0%)보다 크다.

거래량만 줄어든 것이 아니다. 가격도 내려갔다. 부동산원의 연립·다세대 월간 평균 전셋값 자료를 보면 3월 서울 서남부(강서구 등) 지역에 위치한 빌라의 평균 전셋값은 1억9013만원으로 집계됐다. 이 지역 빌라 평균 전셋값은 지난해 7월 2억68만원을 찍고 8월 2억49만원으로 내린 이래 8개월 연속 하락세다.

인천도 빌라 전셋값 하락 추세를 비껴가지 못했다. 이 일대 평균 전셋값은 지난해 6월(7957만원)부터 10개월 연속 하락 중이다. 올해 3월 인천 빌라 평균 전셋값은 7735만원으로 파악됐다.

이렇게 전셋값이 떨어지는데도 “새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전세보증금을 반환할 수 없다”고 하는 임대인이 허다하다. “돌려줄 수 있다면 주고 싶다”는 식의 적반하장이 4월 30일 전국임대인연합회 기자회견에서 나오기도 했다. 전세보증금을 상식적으로나 법적으로 반환해야 마땅한 채권으로 생각하지 않고 ‘내 집 마련’의 종잣돈처럼 여기는 통념이 자리잡았단 의미다.  

이런 인식은 특히 요즘처럼 ‘부동산 거품’이 꺼지는 기간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 기준금리(0.25%)가 역대 최저 같은 요인으로 집값이 폭등하던 지난 2020년 말~2021년 초에 많은 이가 이른바 ‘무자본 갭투기(세입자의 전세보증금으로 다른 주택을 사들이는 것)’를 단행했다.

세입자들은 월세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주거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 기관에서 빌린 자금을 임대인의 갭투기 수단으로 제공했다. 여기에 전세대출과 보증도 어렵지 않아 이를 악용한 전세사기꾼들이 주택 시장에 모여들었다. 그때부터 2년이 지난 현재 집값이 내려가면서 돈줄이 막히기 시작하면서 우르르 무너지는 ‘다단계식 전세사기 피해’가 발생한 이유다.

대규모 전세사기 피해는 지난해 하반기  깡통주택을 많게는 수천 채 단위로 가진 악질적인 집주인, 이른바 ‘빌라왕’으로 인해 강서구 화곡동을 중심으로 1000명이 넘는 세입자가 전세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하는 피해를 입은 사실이 처음 알려지면서 세상에 드러났다. 

이후 인천의 ‘청년 빌라왕(58채)’과 ‘건축왕(2709채)’을 포함해 수도권에서 각각 ‘빌라의 신(3493채)’, ‘제2빌라왕(1050채)’ 등으로 불리는 전세사기꾼들의 행적이 잇따라 드러났다. 지방에서도 ‘광주 빌라왕(400여채)’에 이어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유사한 사례가 발생했다. 지난 3월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연구팀에서 사기 조직과 연계된 것으로 추정한 전세사기꾼을 모두 합산하면 176명이다.

피해자들은 전세사기 문제를 비교적 이른 시기에 해결할 수도 있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1세대 빌라왕이라 불리는 강 모 씨는 수년 전부터 사기를 치고 있었지만 전세사기 관련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뒤인 지난 1월에야 구속됐다. 현재 수사하고 있는 주범 가운데 가장 악질적인 인물로 꼽히는 건축왕 남씨에 대한 재판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1일 오후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전신주에 급매를 안내하는 내용의 홍보물이 붙어 있다. 홍보물엔 방 세 칸짜리 집을 1억6500만원에 내놓겠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이혜진 기자
1일 오후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전신주에 급매를 안내하는 내용의 홍보물이 붙어 있다. 홍보물엔 방 세 칸짜리 집을 1억6500만원에 내놓겠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이혜진 기자

임대차 3법 이후 빌라 전셋값 치솟아…폐지 퇴행적이란 의견도

일각에선 문재인 정부가 도입한 임대차 3법(주택임대차보호법)이 선의로 시작했으나 전세사기의 빌미를 줬다고 비판한다. 2020년 7월 30일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이 법안은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 전월세신고제를 골자로 한다. 

이를 통해 임차인이 원하면 전·월세 계약을 연장해 최대 4년까지 살 수 있다. 월세 상승률을 5% 내로 제한하는 것도 가능하다. 당시 여당은 임차인의 주거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법안 통과 바로 다음 날부터 이 조항을 신속하게 시행했다.

그러자 임대인들은 4년 동안 월세를 인상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시세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전세를 내놓았다. 실제로 KB부동산에 의하면 임대차 3법이 통과된 뒤인 2020년 8월부터 이듬해 말까지 불과 1년여 만에 빌라 전셋값은 13%나 올랐다.  

정부는 전세보증 기준 강화 등 전세사기 예방책은 충분하다고 보고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 개정에 총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하지만 참여연대는 “임대차법 폐지와 같은 퇴행적인 방법을 취하는 것이 아닌 세입자 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피해자 중에서도 전세사기 원인을 임대차 3법에서 찾는 이는 드물다. 공인중개사를 포함한 전세사기 공범의 책임이 크다는 설명이다.

미추홀구에서 피해를 입은 최은선 씨는 “계약 당시 공인중개사가 이행보증서를 주면서 ‘집주인이 잡아둔 근저당(시세 3억원의 반값 수준)을 전액 보상해 줄 수 있다’고 해서 사기당한 것”이라며 “임대인연합회 등에서 임대차 3법이 폐지되면 마치 피해자에게도 좋을 것처럼 말하지만 그렇게 돼도 세입자에게 유리해지는 것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