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루멜트 크럭스> 리처드 루멜트 지음, 조용빈 옮김, 한빛비즈 펴냄.

세계적 기업일지라도 언제든지 전혀 경험해본 적 없는 형태로 위기는 찾아온다. 경영전략의 대가로 꼽히는 저자는 위기의 순간이 촉발한 기업의 꼬인 문제를 ‘크럭스(crux)’에 비유한다.

크럭스란 암벽등반에서 가장 어렵고 복잡한 구간이다. 특히 보조장비 없이 바위를 오르는 ‘볼더링(bouldering)’에서 힘과 패기만으로는 크럭스를 정복할 수 없다. 전략적으로 움직여야 넘어설 수 있다. 마찬가지로 기업 역시 핵심을 찾아 파고들어야 문제의 고리를 풀어낼 수 있다.

저자는 크럭스의 사례로 최근 삼성이 겪는 위기를 소개한다. 그는 대부분의 반도체 회사들이 전문화된 반도체 제조회사로 생산을 분산했고, 오늘날에는 인텔과 삼성만이 대규모의 자체 생산설비를 유지하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2023년 현재, 삼성은 반도체 생산설비 면에서 경쟁력이 있었기에 오히려 위기를 맞았다. 미국이 사실상 중국과의 거래를 중단하고 미국 내 반도체 생산 단지를 만들라는 사인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업의 특장점이었던 것이 오히려 크럭스가 되기도 한다.

 

                        위기란 스스로 선택한 암벽의 복잡 구간...해법 있어

 

저자에 따르면 전략은 매출 목표, 손익에 대한 야망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라 위기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위기란 당면한 문제다. 단단한 땅을 딛고 있다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게 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암벽을 오르다가 만난 ‘복잡한 구간’이다.

기업 활동을 하다 보면 여러 이슈가 꼬여 있는 크럭스 구간을 마주치게 된다. 그렇지만 대부분 확연히 그 형태를 인식할 정도로 정리되지 않은 상태일 수 있다. 그러므로, 크럭스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략 수립은 그 다음의 일이다.

크럭스 파악 방법은 3단계로 이뤄진다. 먼저 '모으기(collecting)'다. 자기 회사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와 기회를 목록으로 작성한다. 2단계는 '구분하기(clustering)'이다. 수집한 문제와 기회를 그룹으로 나눈다. 문제의 원인이 내부에 있는지 혹은 외부에 있는지 등으로 구분한다. 3단계는 '필터링(filtering)'하기다. 수집하고 구분한 문제를 긴급한 정도, 해결 가능성, 중요도에 따라 나열한다.

크럭스는 세 가지 전략 기술을 사용해서 해결할 수 있다. 첫째로 어떤 이슈의 경중을 판단하고, 둘째로 이들 이슈를 해결하는 데 어떤 어려움이 발생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마지막 셋째는 자원의 분산을 방지하고, 한 번에 해결하려는 조급함 대신 집중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를 조합해서 크럭스를 해결한다.

때로는 경쟁사도, 앞서가는 기술도 아니고 대응능력이 부족한 조직이 ‘꼬인 문제’일 수 있다. 필요한 기술이 없거나 조직의 리더십, 구조 또는 처리과정에 문제가 있어 그 기술을 찾아내 적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문제에서 크럭스는 리더가 조직을 어떻게 구성하고 운영하느냐에 달려 있다.

 

                          머스크 화성프로젝트의 크럭스, ‘로켓 재사용’

 

일론 머스크는 화성에 사람을 이주시키고 싶었으나 당시만 해도 로켓은 일회용이었기 때문에 너무 많은 돈이 필요했다. 머스크는 로켓을 재사용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이 문제의 크럭스라고 생각했다.

일론 머스크는 로켓의 재진입 시 초고온을 견디게 만드는 과학적 방법을 고민하다 그 역시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복잡한 과학적 지식이 아닌 그저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 자체를 고민해야 한다고.

이후 일론 머스크는 연료가 우주선 자체보다 훨씬 저렴하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러니 비싸고 복잡하게 우주선의 설계를 바꾸기보다는 연료를 더 많이 실어서 우주선이 지구로 돌아오는 속도를 줄이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연구 끝에 로켓의 귀환 시 우주선을 180도 회전시켜 발사할 때의 모습으로 천천히 내려 앉는 방법을 고안했다. 엔진의 역분사를 통해 부드럽게 착륙시킬 방법이 있었다. 덕분에 스페이스X는 과거 바다나 지상으로 자유 낙하한 뒤 폐기됐던 로켓 연료통과 엔진을 재활용하면서 발사 비용을 기존의 10분의 1로 대폭 감축할 수 있었다.

일론 머스크는 문제를 마주했을 때 자신의 능력과 지식을 정확히 크럭스에 집중시켰고 돌파구를 찾아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단순한 문제 해결이 아닌 스페이스X의 한 단계 도약을 이뤄낼 수 있었다.

 

               라이언에어 성공 비결, “기득권 항공사 피해서 변두리로”

아일랜드 출신 기업가 토니 라이언과 2명의 투자자들은 1984년 라이언에어(Ryanair)를 창립했다. 라이언은 런던-더블린 구간에서 아일랜드 항공사 에어링구스, 영국항공 등과 경쟁했다. 그는 서비스 품질은 올리고 운임은 낮춰 시장점유율을 잠식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전략이 먹히지 않았다. 작은 스타트업 기업이 각 정부의 지원을 받는 두 항공사와 품질경쟁과 동시에 가격경쟁까지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라이언에어는 1992년 파산하고 말았다. 이 과제에 있어서 크럭스는 기존 항공사가 주요 구간에 보유한 ‘기득권’이었다.

회사의 구조조정이 이뤄지는 가운데 CEO 마이클 오리어리는 저가 항공사로 크게 성공한 미국의 사우스웨스트항공을 방문했다. 오리어리는 사우스웨스트항공이 대형 항공사들과의 정면대결을 피해 거점공항이 아닌 소형공항을 이용하여 외곽노선에 취항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라이언에어는 신규 자본을 얻은 뒤 비용을 최소화하여 더블린에서 런던 개트윅공항 대신에 더블린에서 루턴(Luton) 구간으로 옮겨 운행했다. 그리고 사우스웨스트항공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비용을 절감해서 운임을 최대한 낮췄다.

티켓 값은 승객의 운송비였다. 수하물 처리, 우선 탑승, 급행 수속, 좌석 선택, 탑승권 재발급, 기내 간식 및 음료수 등은 추가 비용을 받았다. 환불은 아예 없앴다. 비행기 내부는 온통 광고로 도배했다.

라이언에어는 유럽 소도시로 점차 운행 구간을 확대하면서 매출과 수익이 급속히 증가했다. 현재 라이언에어는 유럽 최대의 저가 항공사가 되었다. 영국에서 40여 개국으로 가는 노선을 운행중이다. 2019년 매출액은 77억 유로, 세전이익은 8억 8500만 유로였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삼성, 스페이스X뿐 아니라 구글, 넷플릭스, 애플 등 다양한 세계적 기업들의 위기 도약 사례를 들어 문제의 크럭스를 발견하고 전략을 세우는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