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는 다른 나라에서 거의 볼 수 없는 독특한 제도가 하나 있다. 바로 전세다. 최근 외국인들이 국내에 많이 들어와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에게 전세 제도를 들려주면 대부분 매우 낯설고 신기하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전세는 주택가격의 일부를 보증금으로 맡기고 남의 집을 빌려 거주한 뒤 계약기간이 끝나면 보증금을 돌려받는 주택임대차의 한 유형이다. 정기적으로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월세와는 다르다.

통계청이 2021년에 발표한 ‘2020 인구주택 총조사 표본 집계 결과 가구·주택 특성 항목’에 따르면 2020년 11월 기준 우리나라 전체 가구 가운데 월세로 거주하는 가구는 478만 8000가구로 23%를, 전세 가구는 325만 2000가구로 16%를 차지했다.

2015년에 처음으로 월세 가구 비중이 전세 가구를 앞지른 다음 전세가 줄고 월세가 늘어나는 추세가 유지되고 있다. 전세 비중은 1995년 30%에서 2000년 28%, 2010년 22% 등 꾸준히 줄고 있다. 반면 월세는 1995년 12%에서 2010년 20%, 2015년 23%로 상승하다 최근에는 잠시 정체하는 분위기다.

이 전세 제도를 거슬러 올라가면 1876년 강화도 조약 즈음에 이른다. 당시 부산과 인천, 원산 등 3개 항구를 개항하면서 일본인 거류지가 만들어지고, 농촌인구가 서울로 이동하면서 서울 인구가 갑자기 늘면서 전세라는 주택임대차 관계가 생겼다고 전해진다. 이때 전셋값은 집값의 절반이 보통이고, 비싼 곳은 70∼80% 수준이었다.

국내에서 전세 제도는 집주인과 세입자의 이해가 서로 맞아떨어지면서 확산됐다. 집주인은 부족한 주택구입자금을 전세금으로 이자없이 마련하고, 세입자는 매달 이자를 내는 것보다 집값의 절반 정도로 주택을 이용할 수 있어 서로 이득이다. 임대인을 믿을 수 있고 집값이 은행이자보다 적게 오른다면 임차인에게 전세는 경제적으로 자가나 월세보다도 이득이다.

전세가 발전한 또 다른 이유는 과거의 기업 중심 대출 구조다. 개인이 은행에서 대출을 하려면 조건이 매우 까다롭고 이율도 높아 현실적으로 대출을 받기가 매우 어려웠다. 은행 대출에서 가계대출 비중은 10% 미만이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20%가 넘는 가계 저축률로 모은 자금을 기업이 가져가 산업을 발전시키는 구조였다. 은행에서도 다수의 가계를 관리하기보다 소수 기업에 대규모로 대출하는 방식이 관리하기 편리한 측면도 있었다.

25일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전세사기 피해 지원을 위해 주택 매각 시 지방세 납부보다 전세 보증금을 우선적으로 갚도록 하는 지방세법 개정안이 통과했다. 사진=연합뉴스
25일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전세사기 피해 지원을 위해 주택 매각 시 지방세 납부보다 전세 보증금을 우선적으로 갚도록 하는 지방세법 개정안이 통과했다. 사진=연합뉴스

이렇게 150년가량이나 이어온 전세 제도가 존폐 위기에 봉착했다. 집값이 하락하면서 전세가격이 집값보다 높은 ‘깡통 전세’가 전세 사기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며 전세 제도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집주인이 집을 팔아도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제대로 돌려줄 수 없는 사례가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특히 자본금 없이 전세보증금으로 수백, 수천 채를 사들였던 빌라왕 같은 갭투자자를 빙자한 사기꾼들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면서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전세 제도가 문제일까. 제도가 문제였다면 150년이나 이어온 배경은 무엇일까. 음주운전으로 사고가 발생해 사람이 사망하면 일부는 술이 문제고 일부는 자동차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음주운전을 한 사람의 잘못이다. 음주운전자는 사고를 한 번 일으킨 것만으로도 두 번 다시는 술을 마실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엄중하게 처벌받아야 하고, 운전대도 잡지 못하게 강제해야 한다.

비슷한 잘못된 사고가 이어진다면 이는 법과 제도를 제대로 유지보수하지 않아서다. 이는 곧 정부와 법조계, 국회의원 잘못이라는 얘기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자들의 노력으로 과학기술이 끊임없이 발전하듯이 법과 제도도 관계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발전해야 한다. 어릴 때 맞았던 옷이 크면 맞지 않는 것처럼 시대가 변함에 따라 과거에는 괜찮았으나 지금은 달라져야 하는 제도가 적지 않다. 사람과 사회가 변하는 만큼 법과 제도도 함께 변해야 한다. 자율주행이 보편화되기 이전에 자율주행 시대에 맞는 법과 제도를 준비해야 하는 것처럼.

전세 제도도 마찬가지다. 세입자들이 주장하는 세입자에 불합리한 몇 가지 조항을 조절했다면…, 부동산 중개인이 수수료를 받는 만큼 권리관계 확인을 소홀히 했을 때 피해액보다 높게 책임지도록 했다면…, 사기꾼들이 사기 치려는 노력의 10분의 1만큼이라도 정부와 관계자들이 노력했다면…, 사기꾼을 반드시 잡고 경제사범을 중형 처벌했다면 이번과 같은 대규모 전세 사기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전세 제도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살고 있던 주택에서 쫓겨나거나 거주할 곳을 잃어버릴 처지에 놓인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다. 국민을 위하는 정부라면 세금을 걱정하기보다 피해자를 최소화하고 피해자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방안에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