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배터리 산업 전시회 ‘인터배터리 2023’에서 참관객들이 배터리 제조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1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배터리 산업 전시회 ‘인터배터리 2023’에서 참관객들이 배터리 제조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세계 배터리업계 주도권 싸움에 정부가 전고체 배터리 드라이브를 걸었다. 향후 8년간 민‧관이 20조원을 투자해 초격차 기술로 키우겠다는 목표다. 이런 상황에서 전고체 배터리가 최근 대세로 자리 잡은 중국 중심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배터리업계에서는 기술력과 원활한 공급, 무엇보다 합리적인 비용이 전고체 배터리 흥행 열쇠가 될 것으로 분석한다.

전문가들은 전고체 배터리를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와 비교해 안전성과 성능이 획기적으로 높아져 ‘꿈의 배터리’로 부른다.

먼저 전고체 배터리에서 사용하는 고체전해질 발화점이 60~100℃로 높아 화재 위험이 낮다. 액체전해질로 발화점이 낮아 화재 위험에 노출된 삼원계(NCM‧니켈코발트망간 등) 배터리나 LFP 배터리와 차별점이다. 화재 위험성이 낮은 덕분에 냉각재나 안전부자재 등을 줄여 동일 용량대비 에너지밀도도 높일 수 있다.

물질 이온전도 경향을 나타내는 이온전도도에 따라 전고체 배터리는 산화물계, 황화물계, 폴리머계로 나뉜다. 산화물계는 이온전도도, 온도안정성, 습도안정성 모두 중간 수준으로 고온 생산에 어려움이 있다. 폴리머계는 이온전도도는 보통이나 재료 구성이 자유로운 강점이 있지만 온도에 취약하다. 대부분 국내 배터리업계에서 선택한 황화물계는 이온전도도가 높지만 습도에 민감하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이강수 부연구원, 박정원 연구원이 정리한 전고체 배터리 기술동향. [사진=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이강수 부연구원, 박정원 연구원이 정리한 전고체 배터리 기술동향. [사진=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정부가 밀어주는 전고체 배터리

지난 20일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16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이차전지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주요 방안은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로 기술 초격차 달성, 양극재‧장비 등 소부장 경쟁력 확대, LFP 2025년 양산과 2027년 세계 최고 기술력 확보, 2030년까지 국내 이차전지 100% 순환체계 확립 등이다.

이 중 핵심은 전고체 배터리 관련 내용이다. 산업부는 배터리 분야 초격차 기술 확보를 목표로 전고체 배터리 세계 최초 상용화에 도전한다. 이를 목표로 2030년까지 민‧관이 20조원을 투자한다.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제품 개발과 제조 중심축인 마더팩토리도 국내에 세워질 전망이다.

배터리 시제품 생산시설도 마찬가지로 국내에 건설한다. 이는 국가 핵심산업으로 성장한 이차전지 기술이 국외로 유출될 가능성을 최소화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부터 정부에서 이차전지 기술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있다.

국내 배터리 3사는 모두 전고체 배터리를 준비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6년 고분자계라고도 부르는 폴리머계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다. 삼성SDI와 SK온은 각각 2027년과 2030년에 황화물계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가 목표다. 앞서 2021년 정부는 이차전지 기업에 연구개발비(R&D)는 최대 40~50%, 시설투자비는 최대 20%까지 세액공제 지원을 약속한 바 있다.

이번 발표는 이차전지업계에 혜택에 혜택을 더하는 수준이다. 정부가 그야말로 이차전지 산업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업계 일각에서는 우리 정부가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를 시기에서 찾기도 한다. 향후 10년이 전고체 배터리 기술 분기점이란 예상이 적지 않아서다. 실제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전고체 배터리 시장규모는 지난해 2750만달러(약 350억원)에서 2030년 400억달러 시장으로 커질 전망이다. 연평균 성장률만 180% 수준이다.

리튬이온-전고체 배터리 구조 비교. [사진=포스코]
리튬이온-전고체 배터리 구조 비교. [사진=포스코]

 

전고체 vs LFP…성능은 ‘승’, 가격은 ‘패’

전고체 배터리의 가장 큰 단점은 가격경쟁력이다. 배터리업계 일각에서는 전고체 배터리가 안정성과 성능까지 좋으니, 개발이 좀 늦더라도 LFP 배터리와 해볼만 한 싸움이라고 평가한다. 이때 발목을 잡는 것이 가격경쟁력이다. 황화물계 고체전해질 핵심소재인 황화리튬 가격이 워낙 고가여서다. 2021년 당시 SNE리서치가 계산한 전고체 배터리 가격은 킬로와트시(KWh)당 약 70만원이다.

이는 기존 삼원계 배터리의 7배 수준으로 알려졌다. 삼원계 배터리는 KWh당 약 10만원으로 예상된다. 현재 완성차업계가 주목하는 LFP 배터리는 삼원계 배터리보다 30%가량 저렴하다. 단순산술로 계산하면 LFP 배터리가 KWh당 약 7만원일 때, 전고체 배터리는 70만원인 셈이다. 가격이 LFP의 10배인 셈이다.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가격 문턱이 너무 높다면 산업 자체가 성장하기 어렵다.

완성차업계 가격 인하 경향도 무시 못할 흐름이다. 완성차업계가 전기차 대중화 시장을 공략하며 배터리업계 가격경쟁력 확보 요구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대당 5000만원 이상 1억원을 호가하는 고급형 차를 구입할 고객은 이미 전기차를 다 샀다는 분석 때문이다. 이제 차를 구입할 사람은 상류층이 아닌 서민층이다. 세계 완성차업계가 2만달러(약 2600만원) 이하 보급형 전기차 개발에 골몰하는 이유다. 최근 국내 진출한 중국 전기차 기업 비야디(BYD)도 1000만원대 전기차 출시를 예고했다.

사정이 이렇자 완성차업계는 최근 LFP 배터리에 관심이 쏠려있다. 전기차 가격에서 약 40%가 배터리 가격이라서다. 시장조사기관 EV볼륨에 따르면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LFP 배터리 점유율은 2020년 5.5%에서 2022년 27.2%로 2년만에 21.7%포인트나 급증했다.

전고체 배터리 가격을 결정짓는 황화리튬은 이제서야 대량 양산을 준비하고 있다. 황화리튬 대표 생산업체인 이수화학은 지난 20일 대량생산 공법 관련 노하우를 보유한 켈로그브라운앤루트(KBR‧Kellogg Brown & Root)과 손잡고 상업공정 공동개발에 나섰다. 이수화학은 대량생산 성공 시 예상한 생산단가를 대외비로 밝히지 않았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아직 양산 단계에 있는 기업이 없는 만큼 (전고체 배터리) 단가를 논하기는 이르다”면서도 “일정 수준 이상 규모 경제가 생기면 단가 하락은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학계에서도 향후 전망을 긍정적으로 판단한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국내 전기차 보급 당시 주행거리 대비 가격을 따지면 배터리 가격이 10년 만에 85% 감소했다. 가격이 7분의 1로 떨어졌다는 얘기”라며 “초창기 개발비는 늘 비싸고 가격이 과도할 수밖에 없지만 대량 생산 체제, 양산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고체 배터리에서도) 규모의 경제가 10년 후에는 충분히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