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21일 서울 강남구 한국토지주택공사 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의 전세사기 관련 긴급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21일 서울 강남구 한국토지주택공사 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의 전세사기 관련 긴급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어제(20일)만 해도 전세사기 피해 주택 공공매입이 피해자에게 도움이 안 된다며, 매입할 생각이 전혀 없다던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하루 만에 생각을 바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공공 매입임대주택 제도를 활용해 전세사기 피해 주택을 사들이는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인천 미추홀구와 서울 강서구, 경기 동탄, 대전, 부산 등 전국에서 대규모 전세사기 피해가 잇따르고 있어 각계에서는 이에 대한 빠른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 중 하나로 제시된 것이 공공이 피해 주택을 직접 매입하는 방안이다. 정치권에서는 특별법안을 발의할 정도로 적극 나서고 있는 반면 정부는 부정적인 의견을 고수하고 있었다.

앞서 원희룡 장관은 2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공공매입을 해야 한다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설전을 벌이며, 부정적인 의견을 고수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난 21일 원 장관이 LH 서울지역본부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전세사기 피해 주택 매입 방안을 밝혔다.

원 장관은 “전세 피해가 시급하고 워낙 절박한 만큼 이미 예산과 사업 시스템이 갖춰진 LH 매입임대제도를 확대 적용해 전세사기 피해 물건을 최우선 매입 대상으로 지정하겠다”며 “이를 범정부 태스크포스(TF) 회의에 제의하려 한다”고 말했다.

LH가 운영하고 있는 매입임대주택은 기존에 지어진 주택을 사들여서 고친 다음 무주택 청년과 신혼부부, 취약계층 등에 시세의 30∼50% 수준으로 저렴한 가격에 임대하는 사업이다. 2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며, 최대 20년까지 지낼 수 있다.

올해 LH와 지방공사 등이 계획하고 있는 공공 매입임대주택 물량은 3만5000가구다. 정부는 이 예정 물량에서 전세사기 피해 주택을 가장 우선해서 매입한다는 계획이다. LH와 지방공사 같은 공공이 전세사기 피해 주택을 매입하면 전세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쫓겨나지 않고 살던 집을 그대로 임대하며 살 수 있다.

LH는 올해 책정한 예산 5조5000억원을 활용해 주택 2만6000가구를 매입해 임대주택으로 제공할 계획이었다. 지자체와 지방공사 매입임대주택 9000호를 포함하면 전세사기 피해 주택 3만5000가구를 매입할 수 있는 셈이다. 매입임대주택 평균 가격이 2억원임을 감안하면 최대 7조원가량이 투입될 전망이다.

원 장관은 “올해 매입임대주택 사업 물량을 피해 주택 매입에 우선적으로 배정하는 것만으로도 피해 주택 대부분을 커버할 수 있는 규모”라며 “그래도 부족하다면 추가 물량을 배정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정부는 피해 임차인이 원하면 경매에 나온 주택 우선매수권을 주고, 구입을 원하지 않지만 해당 집에 계속 살길 바라는 피해자에게는 LH가 주택을 매입한 뒤 임대할 계획이다.

하지만 피해 주택 매입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인천 미추홀구 사례처럼 선순위 채권자가 있으면 보증금 회수가 어려워서다. 경매로 공공기관이 매입하며 지불한 대금이 은행 등 선순위 채권자들에게 먼저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경매에서 임차인이나 LH에 우선 매수권을 주려면 법을 개정해야 한다. LH가 전세사기 피해 주택을 매입하기 전에 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다.

전세사기 피해 주택 선정에서도 논란이 발생할 소지가 크다.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다고 해서, 모두 전세사기 피해 주택으로 볼 수 없어서다.

이에 정부와 여당은 오는 23일 고위 당정협의회를 열어 전세사기 피해 주택 매입 문제를 집중 논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