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가 얼마 전 소재지인 충북 충주와 일대에 살았던 선조들의 제철 과정을 복원하고 있음을 대중에 알렸다. 현 세대의 변화무쌍한 철강업계 흐름을 좇던 중 연구소가 던진 화두인 ‘제철’을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연구소는 지난 2014년부터 고대 제철과정 복원작업을 개시해 이날까지 13차례 진행했다. 유튜브 영상에 담긴 복원 작업에는 철광석을 국내 광산에서 채굴하고 이를 선별한 후 가열하고 부순 다음 녹여 쇳물을 만드는 과정이 담겼다. 오늘날 대규모 장치들을 통해 자동 진행되는 제철 순서와 같다. 연구소는 현재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철 생산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역사적 원천을 되짚어보는 것을 이번 연구의 목적 중 하나로 꼽았다.

연구소는 “한국이 우수한 기술력을 통해 글로벌 제철 산업을 선도하고 있지만 철 생산의 역사에 대한 연구는 미비한 상황”이라며 “제철 관련 유적을 조사하고 제철 기술을 복원하는 실험 등은 철을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의 5대 사회 발전상을 밝히는 중요한 연구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에서 고대 제철작업 복원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출처=유튜브 캡처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에서 고대 제철작업 복원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출처=유튜브 캡처

한국 철강사 발전의 마중물은 ‘외국 기술’

연구소의 연구목적에 또 한번 ‘꽂혀’ 한반도의 철 발달사를 찾아봤다. 한반도 철 발달사 초기 내용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기원전 3세기경 한반도에서 처음 생산된 철이 전국시대 중국의 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점이다.

고조선 시대 중국에서 이주해온 집단이 건국한 위만조선은 한반도 철기시대를 연 뒤 철 생산·활용능력을 바탕으로 아시아 국가와 교역하며 국익을 창출하고 군사력을 강화했다. 당시 중국 한나라가 위만조선의 기세에 위협을 느끼고 전쟁을 일으켜 위만조선을 제압할 정도로 한반도의 제철 경쟁력이 높았다.

해외 기술을 전수받아 한반도의 고유 경쟁력을 확보한 사례는 포항제철소에서도 찾을 수 있다. 포항제철소는 6·25 전쟁 이후 황폐해진 대한민국의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해 종합제철 사업을 강력히 추진한 박정희 정권의 결실이다.

당시 정부는 미국, 일본 등에 요청해 전문가들을 초청해 기술자문을 받고, 튀르키예에 위치한 제철소를 찾아 건설 경위와 현황 등을 조사하며 설립 노하우를 발굴했다. 포항제철소에 수반되는 시설 중 하나인 항만을 설계하는 과정에서도 일본 전문 업체의 도움을 받았다.

한국은 세계 여러 나라의 도움을 받아 우여곡절 끝에 1973년 포항제철소에서 쇳물을 처음 쏟아내는데 성공했다. 한국은 이후 국내 철강 산업에 대한 정부 개입을 견제하는 해외 시선을 고려해 포항제철을 민영화해야 할 정도로 역량을 강화시켰다.

세계에서 한국 철강 산업의 높은 위상은 오늘날 여전히 공고하다. 한국은 지난해 철강(crude steel) 6590만톤을 생산해 세계 6위에 올랐다.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은 지난해 리더십을 인정받아 세계철강협회(World steel Association) 회장으로 취임하고 S&P 글로벌 코모디티 인사이츠로부터 ‘올해의 CEO’에 선정되는 등 국위선양도 했다.

지난 15일 포스코 포항제철소의 2열연공장에서 제품이 만들어지는 모습. 출처=포스코
지난 15일 포스코 포항제철소의 2열연공장에서 제품이 만들어지는 모습. 출처=포스코

이제는 외산과 경쟁 중

한국 철강 산업이 외국 선진 문물을 바탕으로 성장해왔지만 지금은 그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상황이다. 한국 철강산업 발전의 계기를 제공한 외국과 경쟁하는 점 자체는 역사적인 장면이지만 경쟁구도에 대한 현업의 고민은 자못 깊다.

최근 한국산에 비해 저렴한 외산 수입량 증가가 고민거리로 떠올랐다. 지난해 철강(HS부호 72) 무역수지는 239억2310만달러로 지난 2019년 284억5736만달러에 비해 15.9% 감소했다. 해당 기간 철강의 수출량과 수입량이 함께 기복을 보였지만 두 수치의 차이는 점차 좁혀지고 있다. 국내외 시장에서 국산 철강의 위상이 약해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대목이다.

이에 따라 철강업계에서는 국내 자동차, 선박, 건설 등 철강수요 산업(전방산업)의 사업체들이 국산 철강 제품을 이용하도록 유도하는 ‘신토불이’ 마케팅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철강협회는 케이-스틸(K-STEEL)이라는 국산 철강 브랜드를 출범시킨 뒤 업계 종사자 뿐 아니라 대중을 대상으로 한국산 철강제품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국산 철강의 내수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사회적 공감대를 조성하는 중이다.

한국철강협회가 국산 철강 소비를 장려하는 명분은 ‘우리 몸엔 우리 것’이라는 노랫말처럼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 다만 대규모 생산능력을 갖춘 외국 업체가 값싸게 공급하는 철강 제품을 소비하고 있는 전방산업 종사자들의 경제논리를 ‘애국 소비’만으로 극복하기는 어렵다. 국산 제품을 구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철강업체와 정부가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현대제철의 고급 강판이 적용된 기아 전기차 EV9. 출처=기아
현대제철의 고급 강판이 적용된 기아 전기차 EV9. 출처=기아

친환경·고급 제품으로 K-철강 발돋움해야

최근 정부가 저탄소·고부가 제품을 국산 철강의 경쟁력 관건으로 두고 이를 발전시키기 위해 지원하기로 결정한 점은 바람직한 정책 방향이다.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국내 주요 철강업체들이 친환경·고급 철강 브랜드를 론칭한 뒤 업계에서 활발히 마케팅하고 있는 것도 유효한 대책으로 분석된다.

한국의 철은 역사적으로 외국 선진 기술을 마중물로 발전해왔다. 하지만 한국은 결국 우리만의 강점을 만들어냈고 이를 통해 산업 경쟁력을 독자적으로 강화해왔다. 수입산 공세와 요동치는 세계 시황은 한국 철강 산업에게 또 다른 위기이자 발전의 기회로 다가왔다. 기회를 살릴 수 있을지도 걸국 우리에게 달려있다.

한국철강협회는 홈페이지에 “우리 철강 산업이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왔던 과거의 발전 경험을 살펴봄으로써 현재 위기를 재도약의 기회로 전환시킬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썼다. 국내 철강업체들이 한국의 자랑스러운 산업 발전사를 통해, 외세에도 굳건한 ‘K철강’을 또 한번 일으켜세우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