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15일(현지시간)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홍해 연안 제다 알 살람 궁에서 회담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지난해 7월 15일(현지시간)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홍해 연안 제다 알 살람 궁에서 회담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의 반미행보가 국내 방산업계에 호재라는 전망이 나왔다. K방산은 미국과 무기체계가 같아 무기 1위 수입국이던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과 멀어지면 국내 방산업계 주요고객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방산무기는 국가에 따라 운영체제가 달라 기존에 구입한 무기와 호환되지 않으면 연속성 있게 사용하기 힘들다. 

10일 IBK투자증권에 따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며 주요국 대부분이 올해 국방비 증액을 결정했다. 미국 10%, 인도 13%, 프랑스 7%, 독일 17%, 일본 26%, 대만 14% 등이다. 일각에서는 세계 최대 무기 거래국인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가 틀어지며 국내 방산업계가 수혜를 받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15~2020년까지 6410억달러(약 845조7995억원) 상당 무기를 미국에서 구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미국 해외 무기 수출 1위 규모다.

이러한 주장은 최근 한달새 사우디아라비아 행보에서 기인한다. 지난 2일(이하 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는 OPEC+에 속한 주요 산유국들과 동시에 깜짝 감산 계획을 밝혔다. 오는 5월부터 하루 116만배럴 감산이 목표다. 이는 지난해 10월 OPEC+가 200만배럴 감산 선언 이후 두 번째 발표로 글로벌 유가 상승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 감산 행보는 지난달 발생한 미국 뱅크데믹(뱅크+팬데믹 합성어로 은행 연쇄도산을 뜻함) 우려를 가중시켰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됐다. 글로벌 경제학자들은 일제히 맹방으로 불렸던 양국 사이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선긋기를 했다고 분석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달 중국과 원유 위안화 결제도 체결하며 미국을 놀라게 만들었다. 지난달 14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은 중국 수출입은행이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은행과 첫 위안화 대출 협력을 성공리에 마쳤다”며 “대출 자금은 양국 무역 관련 자금 수요를 충족하는 데 우선적으로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로써 달러는 기축통화 버팀목 역할을 한 ‘유일한 원유 결제 수단(페트로 달러 체제)’이라는 타이틀을 잃었다. 달러패권 위협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사우디아라비아 원유 카드가 이제 미국에 껄끄러운 견제구로 바뀌었다. 

경제학자 등은 양국 관계 분열 원인을 미국에서 찾는다. 미국이 다년간 사우디아라비아를 괄시한 데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해석이다. 달러로만 원유를 결제한다는 페트로 달러 체제는 1974년 체결됐다. 미국은 달러패권 유지,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란 등 주변국 안보 위협에서 국방 안전을 보장받는다는 약속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 요청에 때때로 증산에 나서며 손해까지 감수했지만 미국은 2000년대 들어 달라졌다. 2010년부터 ‘셰일오일’ 공급을 본격화하며 미국이 거대 산유국으로 나서기 시작하면서다.

이후 미국 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 인근에서 미군을 철수하고, 셰일오일 가격을 낮춰 석유 공급 가격 급락에 일조하기도 했다. 심지어 지난해 10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감산을 선언하자 미국 국회를 중심으로 “무기 판매를 막겠다”며 으름장까지 놨다. 사우디아라비아 원유 위안화 결제는 양국 사이가 완전히 틀어져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해석될 정도다.

덕분에 국내 방산업계가 들어갈 틈도 생겼다. 앞서 말했듯 방산무기는 이전에 구입한 무기와 향후 구입할 무기가 호환 가능해야 한다. 상호 교류가 이뤄지지 않으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지금껏 제1무기 수입국에 오를 정도로 미국 무기만 사들였다. 최근 중국이나 러시아와 친밀도가 아무리 높아졌다고 해도 양국 무기를 도입하기 힘든 이유다. 반면 국내 방산무기는 미국 무기 기반으로 제작돼 사우디아라비아가 기존에 구입한 무기와 호환이 가능한 부분이 큰 장점이다.

국내 방산업계는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세계 각국에 주목받으며 비용 대비 우수한 성능도 인정받았다. 무기시장 비중 절반을 차지하는 항공기(51.1%) 뿐 아니라 함정(14.7%), 미사일(10.1%), 기갑차량(9.9%) 등 육·해·공 모두를 담당하는 점도 국내 방산업계가 미국 무기 대체제로 손꼽히는 이유다.

IBK투자증권 조사에 따르면 올해 사우디아라비아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비호-Ⅱ’와 LIG넥스원 ‘천궁-Ⅱ’를 눈여겨보고 있다. [사진=IBK투자증권]
IBK투자증권 조사에 따르면 올해 사우디아라비아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비호-Ⅱ’와 LIG넥스원 ‘천궁-Ⅱ’를 눈여겨보고 있다. [사진=IBK투자증권]

실제 사우디아라비아에는 국내 무기가 간접적으로 침투한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해외 군사전문 매체와 사우디아라비아 소셜미디어 등에 공개된 사진과 영상 자료 등에서 국내 로켓 실전 배치가 확인됐다. 사우디아라비아 접경지역에는 다연장로켓(MLRS)인 ‘천무’(한화에어로스페이스), 신형 고속초계정(FPB) 2200 함정에는 유도 로켓 무기인 ‘비궁’(LIG넥스원)이 배치됐다. IBK투자증권 조사에 따르면 올해 사우디아라비아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비호-Ⅱ’와 LIG넥스원 ‘천궁-Ⅱ’ 무기 수입  가능성이 있다.

증권가 전망도 밝다. 이승웅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당초 예상과 다르게 장기화되고 에너지 안보 등 다양한 영역으로 영향을 미치며 세계 각국의 국방비 강화 기조로 이어지고 있다”며 “이에 따른 신규 무기 수요와 전쟁 지원으로 인한 소모품 수요가 증가해 올해도 국내 방산 업체 해외 수주와 기수주기반 실적성장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태현·이상현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은 미국, 중국, 영국 다음으로 많은 국방 R&D 투자를 기반으로 지난해 (국방과학 기술 수준이) 9위를 기록했다”며 “화포 기술수준은 4위까지 상승했고, 최근 SLBM 수중발사 시험 성공 등을 기반으로 순위 상승을 이뤘다”고 국내 방산업계 우수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