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산유국 협의체 OPEC+가 지난해 10월 결정된 대규모 감산과 별도로 추가 감산에 돌입한다고 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주도 아래 전체 생산량의 5% 미만을 자발적으로 감산한다는 설명입니다.

인플레이션 우려에 증산을 요구했던 미국 입장에서는 씁쓸한 소식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만나 주먹악수까지 건내는 나름의 성의를 보냈으나 돌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네요.

미국은 사우디에 중동 역내 패권을 보장해주고 사우디는 원유를 페트로 달러 체제에서 운용하는 방식으로 이어지던 페트로 달러의 견고한 체제도 이제는 옛말이 되고있는 것일까요? 더 나아가, 이제 미국도 그 힘이 빠지고 있는 것일까요?

미중 패권전쟁의 행간
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후 영국으로부터 서방의 대표자 지위를 획득한 미국은 이어진 냉전을 통해 구 소련까지 굴복시키며 명실상부 팍스 아메리카의 세상을 열었습니다. 모든 길은 미국으로 통했습니다.

현재의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특히 세계권력의 핵심인 경제. 무엇보다 기술경제 측면에서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물론 구글과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넷플릭스, 인텔 등 최첨단 실리콘밸리 기업의 존재감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중국이라는 강력한 도전자의 등장에 잔뜩 긴장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실제로 중국은 소위 '만리방화벽'을 세워 자국의 ICT 기업들을 빠르게 키운 후 조금씩 영토확장전략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 공습은 진주만을 넘어 미국 본토에서도 진행중입니다. 중국 바이트댄스의 틱톡은 미국 MZ세대가 가장 선호하는 SNS가 되었으며 월 7억5000만명이 사용하는 중국 쇼핑앱 핀둬둬의 글로벌 버전인 테무는 3월 기준 미국 앱스토어에서 가장 많이 다운로드된 앱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모든 ICT 기술의 기반 인프라인 통신 네트워크 장비 시장은 화웨이가 오래전에 집어삼켰습니다.

중국의 무차별 ICT 공습에 미국도 움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 당시부터 시작된 패권전쟁의 서막입니다. 

처음에는 관세전쟁이었으나 그 무대는 빠르게 반도체 및 네트워크 시장으로 옮겨갔으며, 이제는 AI 및 클라우드와 사이버보안 등 방대한 영역으로 확전되는 중입니다. 화웨이 백도어 논란을 부추기며 유럽 동맹국들을 규합하기도 했으며, 틱톡 쪼개기를 재차 시도하는 배경입니다. 

핀둬둬에서 개인정보를 탈취하는 악성 소프트웨어가 발견되는 등 논란은 고차방정식으로 꼬여가는 중입니다. 그리고 이 치열한 전쟁은 '대국굴기의 바람을 탄 중국을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라는 미국의 고민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되어버렸습니다.

맞습니다. 미중 패권전쟁은 곧 미국이 느끼는 위협이며, 공포에서 시작됐습니다. 팍스 아메리카라는 한 시대를 풍미한 패러다임의 충격이자 이제 세상의 모든 길은 미국으로 통하지 않는다는 것도 의미합니다. 이제 미국의 말발(?)이 서지않는 국가는 사우디만 해당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심지어 유럽도 방심할 수 없습니다. 잊혀질 권리부터 디지털세 논란, 망 중립성 분쟁을 두고 끊임없는 충돌이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벌어집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유럽 ICT 시장 공략을 우려하는 유럽연합은 여전히 구글과 애플, 아마존에게 천문학적인 과징금을 매기고 있습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줄타기라도 해야"
실리콘밸리가 당장 무너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픈AI 및 마이크로소프트 등 기라성같은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여전히 글로벌 빅테크 시장의 핵심 트렌드인 AI 권력을 휘두르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미국의 힘도 여전히 세계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다만 글로벌 공급망 위기 당시 인도와 이란, 글로벌 원유 시장에서의 사우디 등 미국의 의지에 반하는 제3지대의 부상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중국의 ICT 기술력이 미국의 안방을 뒤덮는 한편 미래세대인 MZ세대까지 매료시키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그 덕분에 미국은 패권전쟁까지 일으켰습니다.

이 어지러운 난세에 한국, 특히 한국 ICT 기술 업계는 철저한 실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10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글로벌 기술 시장을 선도한 실리콘밸리는 나이를 먹었지만 여전히 그 저력을 자랑하고 있으며, 아편전쟁 이후로 오랜만에 대국굴기의 흐름을 탄 중국 만리방화벽의 자식들은 그 어느 때보다 매섭고 날카롭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누구 하나에 의지하지 말고 줄타기라도 하며 실익을 챙겨야 합니다.

동시에 새로운 시장을 빠르게 선점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권력의 충돌기를 맞아 어설프게 한쪽에 '올인'하는 것보다 차라리 제3지대를 구축하는 승률높은 게임을 택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특히 블록체인, 증권형토큰(STO) 등 아직 만개하지 못한 영역을 중심으로 누구보다 먼저 손을 뻗어야 합니다. 그래야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 흐름에서 최소한의 승부수를 띄우거나 '거래'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기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