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세부법안이 큰 변경 없이 확정되며 국내 배터리업계가 한숨을 돌렸다. 반면 중국계 배터리업체 CATL 우회 진출 등을 금지하지 않은 점이나 광물 우려국가 지정 등이 미뤄진 점 등에서 불확실성은 여전하다는 분석이다.

앞서 미국은 지난해 8월 북미에서 생산된 전기차에 최대 7500달러(약 1000만원) 세액을 공제하는 IRA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중 배터리업계 관련 내용은 보조금 절반(3570달러)에 해당하는 핵심광물과 핵심부품 요건이다. 배터리 핵심광물(리튬·니켈·코발트 등)은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2024년 40%에서 2026년말부터는 80%를 조달해야 한다. 핵심부품은 2024년부터 북미 제조로 50%를 채워야 하며 2028년 말부터는 100%까지 높여가야 한다.

IRA 법안에 서명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AP연합뉴스]
IRA 법안에 서명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AP연합뉴스]

3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미국 재무부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IRA 세부법안에서 전기차 배터리 보조금 지급 기준을 원안과 유사한 안으로 확정했다. 이 법안은 이달 18일(현지시간)부터 발효된다. 이번 IRA 세부법안 통과로 양·음극재 등 소재업체는 숨통이 트였으나, 배터리셀업체 근심은 여전하다는 분석이다. 가장 큰 문제는 CATL 등 중국업제와 정면대결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부분이다.

IRA 세부법안에 따르면 배터리 핵심부품 및 핵심광물 충족 비율은 올해 각각 50%와 40%로 확정됐다. 매년 10%가량 비율이 인상돼 2025년 각각 60%, 2027년 80% 비율을 맞춰야 한다. 핵심광물은 미국과 FTA 체결국에서 80% 이상만 맞추면 된다. 하지만 핵심부품은 2029년까지 100%를 북미에서 조달해야 한다. 세액 공제 제외기준인 우려기관(foreign entity of concern) 세부 정의는 추후 제시로 남겼다.

이번 법안으로 이차전지 소재업체와 배터리셀업체 희비도 갈렸다. 양·음극재 등을 생산하는 소재업체는 광물로 분류돼 무조건적인 북미 생산 필요성이 없어 부담이 확실히 경감됐다.  인력수급부터 어려운 미국보다 국내 생산 유지는 금전적, 생산 효율적 측면에서 우위에 있다. 단 핵심광물인 리튬이나 니켈 등을 중국 외 즉 북미나 미국과 FTA를 맺은 국가에서 조달해야 한다는 이슈는 여전하다. 이와 달리 배터리셀업체는 북미제조가 필수라 설비투자와 빠른 수율 향상 등에서 어려움이 예상된다.

IRA 세부법안과 관련해 가장 큰 배터리셀업체 불안요소는 중국계 업체 침투 가능성이다. 국내 배터리업계는 지난달 포드에 이어 최근 테슬라도 미국에 합작 배터리공장을 짓는다는 소식이 이어지자 좌불안석이다. 양사 모두 건물 등 공장 지분을 100% 완성차업체가 소유하고 글로벌 배터리업계 1위인 CATL 기술력만 빌린다는 방침이다. 배터리업계에서는 이를 사실상 조인트벤처(JV)와 같다고 평가한다. 오히려 공장 건설비용을 들이지 않아 CATL에 이익이라는 언급도 나온다. 이번 IRA 세부법안에서 CATL 견제 내용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했으나 수포로 돌아갔다. 

문제는 CATL이 막강한 기술과 가격 경쟁력을 갖췄다는 점이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CATL은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점유율 39.1%(출하량 기준)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점유율 합계는 26.5%로 CATL과 비교해 12.6%포인트나 낮았다. 배터리업계에서는 압도적인 CATL 점유율 핵심을 가격에서 찾는다. CATL 주력인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는 국내 3사가 주력으로 하는 삼원계(NCM·니켈코발트망간 등) 배터리보다 30%가량 저렴하다. LFP 배터리가 삼원계 배터리보다 무겁다는 단점이 있었으나 모듈 방식을 활용해 이마저 극복했다. 우리 배터리셀 업체로서는 CATL 진출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CATL 진출을 막으려면 정부가 유럽연합(EU)이나 일본과 힘을 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IRA 법안은 사실상 탈중국과 프렌드쇼어링(동맹국과 함께 하는 정책)으로 출발했다. CATL이 미국에 진출한다면 IRA 법안 자체 취지에 반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미국 정치권에서도 CATL 자국 진출에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고 있어 해볼만 하다는 분석이다. 특히 IRA 법안 제정을 주도한 미국 민주당 소속 조 맨친 의원 등이 포드와 협업에 나선 CATL 을 비판하고 있다. 

배터리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배터리업계 처지에서는 CATL 미국 진출이 꼼수나 변칙으로 밖에 안 보인다”며 “CATL이 (미국에) 들어가면 (국내 배터리업계가) 정말 힘들어지고, IRA 법안 통과도 의미 없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아직 우려대상 국가나 비율과 관련한 계산법 등 세부사항이 정해지지 않아 기업들이 긴장을 놓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