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림 KT 대표 후보가 27일 사임했다. 

윤 후보는 지난 22일 이사들과의 조찬간담회에서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 버티기 어려울 것 같다"면서 "이대로 가다가는 KT가 더 망가질 것 같다"는 말을 했다는 설명이다. 일부 이사들이 그의 사퇴를 적극 만류했으나 윤 후보는 뜻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KT는 당분간 리더십 부재의 협곡에 갇힐 전망이다. 31일 예정된 주주총회는 정상적으로 열릴 것으로 보이지만 심각한 혼란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윤경림 대표 후보자. 사진=KT
윤경림 대표 후보자. 사진=KT

연임 의지 강했던 구현모 대표의 '후퇴'
현재 KT를 이끌고 있는 구현모 대표는 지난해 가을부터 연임에 강한 의지를 보인 바 있다.

문제는 국민연금을 바탕으로 하는 정부의 비토 정서다. KT 이사회가 구 대표의 연임 적격을 선언했으나 국민연금은 물론 여당에서는 강한 반발이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구 대표도 승수수를 던졌다. KT 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가 지난해 12월 13일 구현모 대표와 면접을 진행한 결과 "적격하다"는 입장을 KT 이사회에 보고했음에도 국민연금의 반발이 시작되자, 복수후보와의 경쟁이라는 카드를 뽑아들었기 때문이다.

KT 이사회는 이를 바탕으로 대표 후보로 거론된 인사를 비롯해 14명의 사외 인사와 내부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에서 검증된 13명의 사내 후보자에 대한 대표 적격 여부를 검토, 총 7차례의 추가 심사 과정을 거쳐 구현모 대표를 차기 대표이사 최종 후보자로 재차 확정했다.

그럼에도 국민연금을 필두로 하는 정부 여당은 오히려 공세의 수위를 더욱 끌어올렸다. 윤석열 대통령까지 전면에 나서며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주문하며 사실상 구 대표를 압박했다.

사면초가에 빠진 구 대표는 두 번째 승부수를 던졌다. 완전 공개경쟁을 통해 차기 대표를 선발하자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구 대표 본인은 지배구조위원회, 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 이사회 등 대표이사 후보 심사 과정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으며 외 지원자 및 사내 후보자 명단, 인선자문단 구성, 위원회 및 이사회 회의 결과 등을 포함한 대표이사 후보 심사 절차와 단계별 심사결과 등은 투명하게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공개경쟁이 시작된 후 KT 전현직 인사들은 물론 수 많은 정치권 인사들이 차기 대표 후보에 도전했다. 실제로 가장 먼저 지원서를 낸 권은희 전 새누리당 의원을 필두로 윤석열 대통령 후보 시절 정보통신기술(ICT)희망본부 본부장으로 활동했던 김기열 전 KTF 사장, 윤석열 캠프에서 IT특보를 맡았던 김성태 전 의원,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 등이 등판했다.

경쟁이 치열해진 가운데 구 대표가 재차 KT 이사회의 선택을 받았다. 디지코 전략을 힘있게 끌어간 공로와 더불어 기업가치제고에 있어 구 대표가 유리하다는 여론이 강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정부 여당의 외풍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내부의 의지도 강했다.

다만 이와 비례해 정부 여당의 압박도 강해졌다. 구 대표의 연임 포기를 종용하는 정치원의 목소리도 노골적으로 커졌기 땜ㄴ이다. 그 결과 구 대표는 지난 2월 23일 끝내 차기 대표 후보자군에서 사퇴했다.

KT 사옥. 사진=연합뉴스
KT 사옥. 사진=연합뉴스

윤경림 후보의 부상
구 대표가 연임을 포기한 상태에서 KT 이사회는 2월 28일 새로운 대표 후보군을 발표했다. 지배구조위원회에서 선정한 대표이사후보 심사대상자(가나다 순)는 박윤영(전 KT 기업부문장, 사장), 신수정(KT Enterprise부문장, 부사장), 윤경림(KT 그룹Transformation부문장, 사장), 임헌문(전 KT Mass총괄, 사장)으로 총 4인으로 좁혀졌다.

구 대표 연임이 좌절된 후 전직 KT 인사 2명과 현직 KT 인사 2명이 발탁, 정치인 출신 대표 취임에 선을 그은 조치다. '이대로 외풍에 꺾이지 않겠다'는 의지다.

정부 여당의 공세는 극한을 향해 달렸다.

구현모 대표가 연임을 포기하고 마지막 출장 일정인 MWC 2023이 열리는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떠난 가운데 최종 4인 명단을 발표한 KT에 정치권의 비판이 쇄도했다. 당장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속 여당 의원들은 2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KT 이사회가 전현직 인사들만 차기 대표 후보군으로 추린 것을 두고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고 직격했다.

특히 과방위 여당 간사인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과 과방위 소속인 김영식 의원은 "KT 내부 카르텔만으로는 KT를 혁신할 수 없다"면서 "페쇄적인 인선을 당장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KT도 물러나지 않았다. 지난 7일 윤경림 사장을 최종 후보로 낙점했기 때문이다. 

윤 후보는 통신업계에서는 LG유플러스의 전신인 LG텔레콤에서 경력을 시작했으며 하나로텔레콤 창립 초기부터 영업 및 마케팅을 담당하다 2006년 KT로 이동, 2009년 서비스개발실장을 끝으로 CJ로 자리를 옮겼다. CJ에서는 부사장을 맡아 기획과 사업팀을 총괄했다.

2014년 황창규 당시 회장 시절 재차 KT로 복귀했다. KT그룹 미래전략 수립을 책임지는 미래융합전략실장(전무)으로 영입됐으며 2019년 글로벌부문장을 맡았으나 돌연 퇴사했다. 이후 현대자동차로 이동해 부사장을 맡으며 미래전략기획을 수립했고 2021년 구현모 대표 체제가 시작되자 다시 KT로 돌아온 인물이다. 대표적인 전략 기획통인 그는 구 대표의 최측근 중 하나이자 디지코 전략을 이어갈 적임자라는 평가가 나왔다. 

정부 여당은 다시 반발했다. 심지어 구 대표의 배임 논란에 윤 후보가 연루됐다는 주장을 하며 그의 사퇴를 노골적으로 주장했다.

윤 후보는 KT를 쇄신할 수 있는 카드를 뽑아들며 대응했다. 정부 여당과의 정면충돌은 피하면서도 논란의 소지가 될 수 있는 대목은 피해가는 전략이다.

그 연장선에서 KT는 윤 후보의 요청으로 ‘지배구조개선TF’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지배구조개선에 돌입하기도 했다. 지배구조개선TF는 ▲대표이사 선임절차 ▲사외 이사 등 이사회 구성 ▲ESG 모범규준 등 최근 주요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지적 받은 사항을 중심으로 지배구조 강화 방안을 고민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글래슬이스 등 글로벌 의결권 자문기관들도 윤 후보에게 힘을 실었으며 KT 소액주주들의 기류도 비슷해졌다.

다만 윤 대통령의 고등학교 동문인 윤정식 KT스카이라이프 대표 내정자, 나아가 금융위원회 사무처장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을 지냈으며 지난 대선에는 윤석열 후보 캠프에서 상임경제특보를 맡은 임승태 법무법인 화우 고문이 사외이사 후보에서 사퇴하며 상황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일감 몰아주기 논란 등을 수사하기 시작한 검찰의 칼날도 조여왔다. KT는 이러한 의혹에 대해 "근거없는 공세"라는 메시지를 냈으나 정부 여당의 압박은 그칠 줄 몰랐다. 우군인 현대차마저 KT에 "이사회가 대주주 의사를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며 판이 흔들렸다.

그 결과 윤 후보는 차기 대표 내정 21일만에 결국 사의를 표명했다.

KT 사옥. 사진=연합뉴스
KT 사옥. 사진=연합뉴스

혼란의 KT
민영화 21주년을 맞이한 KT는 구현모 대표 연임 포기 및 윤경림 후보 사퇴로 당분간 리더십 공백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KT는 조기 경영 안정화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입장이지만 혼란은 불가피하다.

상무급 이상의 인사조치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경영 큰 그림을 그려야 하는 중요한 시기를 소모적인 충돌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31일로 예정된 주주총회는 계획대로 열리지만 이사회가 새로운 대표를 물색하려면 최대 3개월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정부 여당의 압박에 비틀거리는 KT의 스텝이 제대로 꼬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무엇보다 정부 여당의 강력한 개입, 즉 '보이는 손'으로 KT의 차기 대표직이 흔들리는 장면을 연출된 것은 심각한 일이라는 평가다. 특히 정치권의 입김에 강해지며 KT가 정권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더욱 강해진 것은 논란의 여지가 크다는 말이 나온다.

KT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윤 후보의 사퇴로 KT는 결국 정권의 입맛대로 요리될 수 있다는 인식이 더욱 강해진 것"이라며 "KT의 기업가치 제고 등을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인물이 빠르게 등판해 조속한 경영 정상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