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MWC 2023이 열리는 가운데 망 이용료 분담 이슈가 미묘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GSMA(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를 중심으로 CP(콘텐츠제공사업자)에 대한 망 이용료 분담 목소리가 강하게 나올 것으로 예상됐으나 유럽연합이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반격에 나섰다. 유럽연합의 '미적지근한 반응'을 매개로 삼아 망 이용료 분담 이슈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행보를 시작했다.

MWC 2023이 펼쳐지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MWC 2023이 펼쳐지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유럽연합의 속도조절
망 이용료 분담 이슈의 핵심은 ISP(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의 네트워크 인프라에서 활동하는 CP도 망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는 주장에 있다. 구글 및 넷플릭스와 같은 막대한 트래픽을 일으키는 CP들도 ISP가 유지하는 망의 이용료를 분담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만 CP들은 ISP가 이미 망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을 가입자로부터 받고 있으며 자신들은 콘텐츠 발전을 위한 비용만 내면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양측의 힘겨루기가 거센 가운데 업계의 시선은 MWC 2023으로 쏠렸다. 통신사들의 축제인 MWC 2023을 통해 CP에 대한 ISP들의 강력한 망 이용료 분담 촉구 메시지가 나올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MWC 2022에서는 GSMA 차원의 망 이용료 분담 메시지가 나온 바 있다. 

CP들이 대부분 미국 빅테크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최근 유럽연합이 자국 ICT 시장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막대한 과징금 등을 무기로 반 실리콘밸리 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에, 유럽인 스페인에서 열리는 MWC 2023은 ISP 연합군이 활동하기에 최적의 무대기도 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자 상황은 정반대로 펼쳐졌다. 유럽연합은 CP의 망 이용료 분담 필요성을 전제하기는 했으나 관련 분쟁을 이분법적 시각으로 재단하지 말고 자원의 배분적 측면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티에리 브르통 유럽연합 내부시장담당 집행위원. 출처=연합뉴스
티에리 브르통 유럽연합 내부시장담당 집행위원. 출처=연합뉴스

실제로 티에리 브르통 유럽연합 내부시장담당 집행위원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기조연설을 통해 망 이용료 문제를 두고 '공정 가치'에 주목했다. 공정한 경쟁을 우선시하는 발언을 통해 사실상 중립에 가까운 메시지를 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최근 기가비트 연결법(Gigabit Connectivity Act)을 준비하며 CP인 빅테크의 망 이용료 분담을 촉구하는 중이라는 점에서 의외의 메시지라는 분석이다. 심지어 미키 아드리안센스 네덜란드 장관은 "소비자는 넷플릭스, 스포티파이, 비아플레이, 유튜브와 같은 스트리밍 및 동영상 서비스에 가입할지 여부를 선택하고 이를 위해 통신 사업자에게 구독 비용을 (별도로) 지불한다"면서 사실상 기가비트 연결법을 매개로 망 이용료 공세를 펴는 유럽연합의 기본 방침에 반기를 들기도 했다.

GSMA 이사회 의장인 호세 마리아 알바레스 팔레트 로페즈 CEO도 티에리 브르통 집행위원의 주장인 '공정 이용'을 언급하며 일부 찬성하는 스탠스를 보였다.

물론 GSMA와 유럽연합의 MWC 2023 메시지가 CP의 망 이용료 분담을 포기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다만 CP의 망 이용료 분담을 논하기 전 해당 이슈를 이분법적 사고에서 보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한 점과, 유럽연합에서 "거대 통신사의 편에 서지 않겠다"는 명확한 메시지가 나온 것은 판을 흔들기에 충분하다는 평가다. 

실제로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티에리 브르통 유럽연합 내부시장담당 집행위원은 기조연설 후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나는 새로운 접근법을 제안하고 있다"면서 "거대 통신사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경쟁 심화로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CP와 ISP 모두 각자의 역할에 집중한다면 그에 대한 보답을 받으리라 확신한다는 뜻이다. CP의 망 이용료 분담을 강조하는 메시지와는 거리가 있다.

넷플릭스 공동 CEO 그렉 피터스. 출처=연합뉴스
넷플릭스 공동 CEO 그렉 피터스. 출처=연합뉴스

넷플릭스의 반격
MWC 2023을 통해 유럽연합 차원의 예상 외 온건한 메시지가 나오자 일각에서는 넷플릭스도 수위 조절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넷플릭스는 결론적으로 '톤 다운'된 목소리를 냈다. 유럽연합 차원의 메시지에 주목하면서 공정 이용에 동의한다는 메시지를 냈기 때문이다. 다만 망 이용료 분담이라는 최초의 주제에 대해서는 강력한 기조가 여전하다.

넷플릭스 공동 CEO 그렉 피터스(Greg Peters)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기조연설을 통해 인터넷 생태계를 두고 ISP, 기기 제조사 등 다양한 ‘파트너십’과 함께해야 한다며 선순환의 고리(virtuous flywheel)라는 프레임을 꺼냈다.

그는 "성공적인 창작 산업과 성공적인 인터넷 생태계 사이에는 명징하고도 직접적인 관계가 존재한다"면서 "소비자는 훌륭한 콘텐츠를 원하며, 본인이 사랑하는 콘텐츠를 즐기기 위해 더 고품질의 인터넷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할 의향이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인터넷 트래픽 증가는 선도적인 위치의 통신사들이 최근 인정하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CP와 ISP) 모두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수요 증가이자 곧 엄청난 ‘기회’임을 지난 10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유럽연합이 말한 공정 이용에 집중하며, 이를 바탕으로 하는 선순환 구조가 현재 펼쳐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CP가 망 이용료를 부담하지 않는 현재의 체제가 유럽연합이 말한 공정 이용이며, 인터넷 선순환의 고리가 완성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유럽연합이 던진 '양자택일' 이슈도 거론했다. 망 이용료 분쟁이 CP의 망 이용료 부담 여부라는 흑백논리가 아니라는 메시지에 주목했다. 

그는 업계 일부에서 논의되고 있는 네트워크 인프라 증설을 위한 CP 과금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미래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한 우려를 표하며, CP와 ISP가 각자의 의무를 최선을 다해 수행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동반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나아가 CP가 망 이용료를 분담할 경우 콘텐츠에 대한 투자 감소, 창작 커뮤니티의 발전 저하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고가의 통신사 요금제가 가진 매력을 반감시키는 것은 물론 본래의 목적과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해 궁극적으로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고 주장했다.

CP의 망 이용료 분담이 이중요금제 도입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그는 “유럽 소비자 단체연합인 ‘BEUC(European Consumer Organization)’가 지적한 것처럼 (CP의 망 이용료 분담을 촉구하는) ISP의 행동이 소비자들을 위한 더 낮은 가격, 혹은 더 좋은 인프라로 이어진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한 발 더 나아가 기존 전략적 방향성도 재차 강조됐다.

CP로서 생태계 전반에 '이미'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유럽연합'발' 공정 이용을 넘어서 망 이용료 분쟁의 직접적인 소재 중 하나인 비용에 대한 메시지다.

CP 본연의 책무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본연의 책무인 콘텐츠 인프라 확충을 위해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렉 피터스 공동 CEO는 "늘어나는 수요에는 이에 상응하는 투자가 요구된다"면서 "넷플릭스는 지난 5년 동안 매출의 절반에 달하는 600억 달러(한화로 약 79조원) 이상을 콘텐츠에 투자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투자는 다양성을 겸비한 더 좋은 콘텐츠들이 늘어나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좋은 브로드밴드 서비스를 원하게 되는 ‘선순환의 고리’를 위한 넷플릭스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ISP의 망 유지 비용을 분담을 할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의 '기본 논리'다.

심지어 ISP가 말하는 망 이용료 분담을 상쇄할 수 있는, 망 유지에 대한 비용을 이미 치르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새벽 콘텐츠 배송으로 불리는 오픈 커넥트다. 

그렉 피터스 공동 CEO는 "넷플릭스는 1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 자체 콘텐츠 전송 네트워크인 오픈커넥트를 구축했으며 이를 ISP에게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면서 "현재 175개국의 6,000여 곳에 위치한 1만 8,000여대의 서버가 오픈커넥트의 일부로 연결 작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파일 크기를 줄이고 대역폭 사용을 최적화하는 인코딩 기술 개발로 2015년과 2020년을 비교했을 때 같은 품질의 동영상을 전달하는데 요구되는 비트를 절반으로 줄였다" 강조하기도 했다.

출처=갈무리
출처=갈무리

SK브로드밴드 vs 넷플릭스 공방 영향은?

GSMA 차원의 ISP들이 CP에 대한 망 이용료 부과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뵈리에 에크홀름 에릭슨 CEO는 기조연설에 나서 "통신업계는 4G 이후 디지털 전략을 이끌었으나 수익은 OTT 등만 얻었다"고 비판했으며 팀 회트게스 도이치텔레콤 CEO도 유럽 지역에 대한 실리콘밸리 빅테크의 투자 기여도가 낮다고 주장했다. 크리스텔 하이데만 오렌지 CEO도 빅테크가 망 인프라에 필요한 투자에 노력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제도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MWC 2023을 통해 그 기세가 다소 꺾인 것은 사실이다. 유럽연합도 공정 이용에 방점을 찍은 관계로 역시 온건한 메시지만 나왔기 때문에 CP에 대한 망 이용료 부과 동력이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대목에서 넷플릭스는 유럽연합의 온건한 메시지를 재차 강조하며 해당 이슈를 망 이용료 부담 논쟁이 아닌, 공정 이용 프레임으로 바꾸며 판을 흔들기 시작했다. 직접적인 이슈에 대한 집중이 아닌, 이슈에 접근하는 방식의 변화 여부로 모두의 시선을 돌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이런 흐름은 망 이용료 분담을 두고 국내에서 벌어지는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소송전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단기적으로는 SKB에 불리한 흐름이다. 글로벌 빅테크에 대항하는 한국 인터넷의 반격이라는 프레임으로 망 이용료 소송전을 이끌었으나 최근 법원의 기류는 불확실의 연속에 빠졌기 때문이다. 

구글과 넷플릭스 등이 콘텐츠 생태계 파괴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압박하는 상황에서 MWC 2023에서 강력한 한 방이 나오지 않은 것은 아쉽다는 기류가 강하다. 심지어 망 이용료와 관련된 이슈의 프레임마저 넷플릭스가 의도하는 대로 흘러갈 가능성도 커졌다.

다만 통신사 등 ISP의 방향성이 새롭게 정립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망 이용료 분쟁에 있어 CP에게 그 부담을 나누려면 ISP의 망 유지 및 보수비용도 공개해야 하는데, 여기에 부담을 느낀 ISP들이 MWC 2023 정국에서 유연한 전략적 선택을 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당장 CP에게 망 이용료를 분담하라 주장하기에는 망, 즉 네트워크 인프라 투자가 미흡한 ISP들의 알려지지 않은 약점도 많다. 탈통신 전략을 추진하며 상대적으로 망에 투자하는 비용이 줄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연합의 기가비트 법안 처리 등을 살펴보며 긴 호흡을 통해 CP의 약점을 파고들 가능성이 있다.

그렉 피터스 넷플릭스 공동 CEO의 기조연설을 보면 유럽연합의 메시지에 동조하는 한편 CP의 망 이용료 분담 가능성을 일축하면서도 새로운 논리는 보이지 않는다. 이는 역으로 ISP가 파고들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는 분석이다.

한편 유럽연합이 망 이용료 분쟁에 있어 정제된 메시지를 내기도 했으나 CP에 대한 망 이용료 부담 전략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기가비트 법 등 유럽연합에서 현재 추진되는 법안들은 CP에 대한 망 이용료 부담을 비교적 선명하게 전제하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티에리 브르통 집행위원이 MWC 2023에서 보여준 메시지는 정무적 판단에 기댄 것이며, 큰 틀에서 망 이용료 분쟁에 대한 입장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국내 소송에서 티에리 브르통 집행위원의 정제된 메시지가 결정타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