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빅테크 업계를 주도하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유럽전선'이 예상보다 조용하다. MWC 2023이 열리며 망 이용료 전쟁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됐으나 현지에서 낮은 수위의 발언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전선'의 상황은 격전의 연속이다. 특히 SNS 틱톡을 사이에 두고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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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 이용료 분쟁 '간 보기'
현재 ISP(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와 CP(콘텐츠제공사업자)가 망 이용료를 두고 치열하게 싸우는 가운데, ISP 진영은 통신업계의 축제인 MWC 2023를 통해 강력한 공세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최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기가비트 연결법(Gigabit Connectivity Act)을 준비하며 CP인 빅테크의 망 이용료 분담을 촉구하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은 최근 현지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실리콘밸리 빅테크에 대한 경계감이 상당한데다, 지난해 MWC 2022를 통해서도 GSMA(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 중심의 망 이용료 전략을 공표한 바 있다.

그 연장선에서 올해에도 실리콘밸리 중심의 빅테크를 겨냥해 망 이용료 공격에 드라이브를 걸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표면적으로는 이러한 예상이 들어맞았다. 뵈리에 에크홀름 에릭슨 CEO는 기조연설에 나서 "통신업계는 4G 이후 디지털 전략을 이끌었으나 수익은 OTT 등만 얻었다"고 비판했으며 팀 회트게스 도이치텔레콤 CEO도 유럽 지역에 대한 실리콘밸리 빅테크의 투자 기여도가 낮다고 주장했다.

실리콘밸리 빅테크, 특히 넷플릭스와 같은 CP들도 망 이용료 분담에 나서야 한다는 취지다.

크리스텔 하이데만 오렌지 CEO도 빅테크가 망 인프라에 필요한 투자에 노력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제도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간 보기' 수준이다. 망 이용료 분담을 강하게 주장하는 유럽 통신업계와는 달리 유럽연합 차원에서는 정제적인 메시지만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티에리 브르통 유럽연합 내부시장담당 집행위원. 출처=연합뉴스
티에리 브르통 유럽연합 내부시장담당 집행위원. 출처=연합뉴스

실제로 티에리 브르통 유럽연합 내부시장담당 집행위원은 27일(현지시간) 기조연설을 통해 망 이용료 문제를 두고 '공정 가치'에 주목했다. 실리콘밸리 중심의 CP에게 망 이용료 분담을 강하게 촉구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망 이용료 분쟁을 이분법적 시각으로 재단하지 말고 자원의 배분적 측면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원 배분적 가치에서 빅테크가 망 이용료를 분담할 수 있다는 여지는 열었다. 다만 공정한 경쟁을 우선시하는 발언을 통해 사실상 중립에 가까운 메시지를 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비슷한 시기 네달란드 정부가 오히려 ISP인 통신사업자를 겨냥해 "두 번 요금을 받으려 한다"고 비판하는 성명을 낸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키 아드리안센스 네덜란드 장관은 "소비자는 넷플릭스, 스포티파이, 비아플레이, 유튜브와 같은 스트리밍 및 동영상 서비스에 가입할지 여부를 선택하고 이를 위해 통신 사업자에게 구독 비용을 (별도로) 지불한다"면서 사실상 기가비트 연결법을 매개로 망 이용료 공세를 펴는 유럽연합에 반기를 들었다.

GSMA도 조용하다. GSMA 이사회 의장인 호세 마리아 알바레스 팔레트 로페즈 CEO는 티에리 브르통 집행위원의 주장인 '공정 이용'을 언급하며 ISP와 CP의 협력에 방점을 찍었다.

업계에서는유럽연합 중심의 망 이용료 공세가 한 풀 꺾인 배경으로 '정치적 부담'을 지목한다.

미국 실리콘밸리 빅테크와의 지나친 날 세우기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한때 양측이 디지털세를 두고 정면충돌했으나 큰 틀에서는 지정학적 위기까지 커지는 가운데 기본적인 협력전선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다.

나아가 망 이용료 논쟁을 본격화하려면 통신사들의 네트워크 투자 인프라 진척도를 공개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의외로 취약한 통신사 네트워크 인프라 투자가 공개될 경우 오히려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우려도 상당하다는 평가다. 

다만 지금의 유화적인 제스쳐가 망 이용료 분쟁을 '공정 이용'의 틀로 끌어들여 이를 법제화시키는 사전작업이라는 반론도 있다.

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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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톡, 모바일 정찰 풍선"
실리콘밸리의 망 이용료 전쟁 중심 유럽전선은 상대적으로 고요하지만, 틱톡으로 불거진 중국전선은 격변의 연속이다.

말 그대로 난타전이 벌어지고 있다.

일본, 유럽연합, 캐나다 등 많은 나라들이 틱톡 금지령을 내리는 가운데 틱톡 몰아내기의 중심에는 미국이 있다. 당장 미국 연방 및 주 정부는 틱톡 금지령을 발표했으며 마이클 매콜 미국 하원 외교위원장은 최근 틱톡을 두고 논란이 됐던 중국 정찰 풍선에 빗대어 "모바일 정찰 풍선"이라고 맹폭했다.

미국 등 서방이 틱톡을 경계하는 이유는 백도어, 나아가 중국 공산당과 관련된 콘텐츠 노출, 불건전 콘텐츠 노출로 요약할 수 있다.

백도어 문제의 경우 틱톡과 관련된 오래된 이슈다. 중국 SNS인 틱톡이 사용자 정보를 무단으로 빼내는 모바일 정찰 풍선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화웨이 견제 당시에도 백도어 논란이 불거진 바 있으며, 틱톡에도 비슷한 프레임이 씌워지는 분위기다.

중국 공산당 관련된 콘텐츠가 자주 노출된다는 점도 논란이다. 미국 청소년의 3분의 2가 틱톡을 사용하는 가운데 이는 좌시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 미국 당국의 주장이다.

불건전 콘텐츠 논란도 있다. 실제로 틱톡은 지난해 자사 플랫폼을 통해 유통되는 콘텐츠가 미성년자들의 정신건강을 해친다는 의혹을 받아 8개 미국 주 법무부 장관이 주도하는 합동조사를 받은 바 있다.

틱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미 백악관 예산관리국(OMB)이 27일(현지시각) 연방정부 전 기관에 틱톡을 삭제하라는 지침을 내린 직후 정식 성명을 통해 강하게 반발했다. 브룩 오버웨터 틱톡 대변인은 "틱톡 금지는 정치적 연극에 불과하다"면서 "틱톡 사용 금지가 신중한 검토 없이 의회에서 통과됐다"고 주장했다.

한편 업계에서는 서방의 틱톡 금지령을 두고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틱톡이 정치적 희생양이라는 주장에 시선이 집중된다. 미중 패권전쟁이 벌어지며 트럼프 행정부에 이어 바이든 행정부도 노골적으로 틱톡 저격에 나서는 가운데 필요이상의 압박이 가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정황적인 증거도 있다. 

2000년대 초 중국 정부가 소위 만리장화벽을 통해 외국 ICT 기업을 대거 몰아낸 후 구글 및 페이스북 등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지속적으로 중국 시장 재진출을 노린 바 있다. 

그 중에는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도 있었다. 마크 저커버그는 2016년 3월 18일(현지시간) 중국을 방문해 악명높은 베이징 거리를 마스크도 없이 조깅하는 쇼맨십까지 보여주는 한편 웃음을 머금은 채 마오쩌뚱 초상화가 내려다 보는 광장을 뛰었으며, 이후 마윈 알리바바 창업주와 함께 인공지능에 대한 환담을 나누고 현지 대학 강의에 나서는 등 중국 끌어안기에 필사적으로 나섰다.

마크 저커버그가 2016년 중국을 방문해 마윈 알리바바 창업주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마크 저커버그가 2016년 중국을 방문해 마윈 알리바바 창업주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이 과정에서 중국계 미국인 아내 프리실라 챈과의 인연을 바탕으로 중국과의 유대를 부쩍 강조하는 정성까지 보였고, 결국 중국 당국으로 부터 중국 자회사 설립을 전격 허락받는 선물을 받아냈다.

문제는 중국 당국의 돌변이다. 2018년 갑자기 페이스북의 중국 자회사 설립이 취소됐기 때문이다. 이후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며 미중 패권전쟁이 벌어지며 트럼프 행정부의 틱톡 압박이 시작되자 그 배후에 마크 저커버그가 있다는 말이 나왔다. 그가 정부쪽 인사들과 스킨십을 시작하며 틱톡 압박의 정당성을 어필했다는 뜻이다. 

실제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20년 마크 저커버그가 미 의회와 정부를 대상으로 틱톡이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여기에 미중 패권전쟁을 치르며 반도체에 이은 또 다른 공격 포인트를 찾던 미국 정부가 틱톡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틱톡이 정치적 희생양에 불과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순간이다.

다만 틱톡에 대한 백도어 논란도 무시할 수 없다. 아직 명확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서버 이전 등에 있어 틱톡이 석연치 않은 장면을 다수 연출했기 때문이다. 

틱톡이 중국 당국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것도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디디추싱이 중국 정부의 만류에도 미국 증시 상장을 시도할 당시 틱톡의 바이트댄스는 중국 당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미국 증시 상장을 철회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