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급 배우인 송중기 씨가 영국인 여성과 결혼해 화제다. 맘까페 같은 곳에선 우리의 국보를 외국 여성에게 빼앗겼다고 한탄하기도 한단다.
  
영국 하면 런던, 왕실, 빅벤, 런던브리지, 축구와 손흥민 선수, 셰익스피어, 펍 등을 떠올리는 사람이 대다수겠지만, 아주 극소수의 독자는 필자가 영국 이야기를 시작하면 일단 의심부터 할 수도 있다. 지난 필자의 칼럼 <축하한다, 자랑해라>를 혹시 읽으신 분이라면, 나를 재미있는 사람으로 생각해주면 다행이고 못 믿을 사람 아닌가 경계해도 할 말이 없다.
 
수많은 사람을 돌출입수술 해보았지만, 흑인의 돌출입수술은 극히 드물다. 사실, 흑인에게 돌출입은 피부색과 함께 하나의 생물학적, 인류유전학적 특성이며, 아름다운가 아닌가의 차원이 아닌 하나의 아이덴티티에 가깝기 때문에 돌출입수술을 할 동기가 있기 어렵다.

만에 하나 갑자기 흑인의 돌출입 붐이 일어난다면 수술장이 엄청나게 바빠지겠지만,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것 같다.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현대 아프리카인의 타 국가 거주 현황은, 미국이 4천 7백만 명 정도로 1위이고, 브라질이 그 다음이다. 프랑스가 7위, 영국이 9위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런 다인종 국가에서는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외모나 태생, 문화의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에,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과하게 참견하지 않는 것이 ‘국룰’이다. 따라서 어떤 인종, 어떤 모습이든지 간에 타고난 외모에 대한 스트레스가 확실히 덜 할 것으로 추정된다. 

가장 외모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한 나라는 어쩌면 오랜 역사의 단일민족 국가, 한국일 수도 있다. ‘얼굴학자‘ 조용진 교수의 <미인> 이라는 책에 의하면 한국인의 얼굴형은 남방계 아시아인 특징과 북방계 아시아인 특징이 섞여 있다고 한다. 남방계 아시아인은 두터운 입술과 돌출입, 낮고 넓은 코, 쌍꺼풀이 진하고 큰 눈 등의 특징이 발견되고, 북방계는 반대로 쌍꺼풀 없는 가늘고 작은 눈, 긴 코, 얇은 입술의 특징을 지녔다. 그런데, 아마 수십 대를 거쳐 무작위적인 유전자의 재조합을 통해 창조된 새로운 형질 중에서는, 남방계와 북방계의 아름다운 특징만을 골라서 가진 초특급 미인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특급 미인이 한국에 꽤 많이 존재하고, 한국은 ’단일‘ 민족 국가이니, 내가 그 미인과 다르게 생긴 것은 영 달갑지가 않은 게 직관적인 삼단논법이다.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칼 구스타프 융 학파의 권위자인, 전 서울의대 정신과 이부영 교수의 강의 중 인상 깊었던 게 분단국가 한국에서의 ‘통일 이데올로기’다. 생각해보면, ‘짜장면으로 통일합시다’ 문화, 그리고 K팝 아이돌의 ‘칼 군무’ 까지, 어쩌면 우리는 획일화되지 않은 것, 남과 다른 것, 남과 다르게 생긴 것, 남은 가졌는데 나는 못 가진 것에 대해 마음 속 깊은 곳의 불안증이 있는지도 모른다.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열린사회가 되었다고 자부하는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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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나를 찾아온, 50대 후반의 여성 환자 K는, 흑인이었고 돌출입이었다.
그런데, 피부색이 아주 하얗다. 어찌된 일일까?

‘비틸리고(Vitiligo)’ 라는 질환 들어보셨는지. 백반증이라고 불리는 이 질환은 피부가 하얗게 변하는 후천적 탈색소성 질환이다. 피부의 색을 만드는 멜라닌 세포가 파괴되거나 생성되지 못하기 때문인데, 유전적 요인 혹은 자가면역 요인 등이 일부 작용하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정확한 원인은 모른다. 완치가 가능한 치료법도 아직 없다. 전설적인 팝스타 마이클 잭슨도 이 병을 앓았다.

이 백반증이 군데군데 있으면 피부가 얼룩져 보이겠지만, 전신이 백반증에 이환되면 결국 몸 전체가 흰색이 된다. K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그러니까, 그녀는 흑인에서 일반적으로 자주 관찰되는 곱슬머리와 커다란 눈, 돌출된 입, 두툼한 입술, 우월한 긴 다리를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새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는 아주 특이한 경우였다. 

그녀가 구글 세계 지도에서 필자의 병원을 찾아냈을 리는 없고...날 찾아온 건 어찌된 영문일까? 

그녀가 이야기 해준 사연은 이렇다.

몇 년 전 영국에서 코 수술을 받았지만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녀는, 세계 최고의 성형외과의사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를 탄다. 미국 아이비리그 의대의 대학병원 교수를 찾아간 것이다. 사실, 영국식 공공의료 시스템에서 의사의 임금이 낮고 의료의 질도 저하되어 있어, 실력 있는 의사들이 짐 싸들고 다른 나라로 뜬다는 것은 더 이상 숨겨진 비밀이 아니다.

그런데, K는 미국의 대학병원 성형외과에서 다시 쓴 맛을 보게 된다. 전신 백반증을 가진 희귀한 흑인 환자라면서, 코수술과 관련도 없는 진료과의 교수, 레지던트 수십 명이 ‘구경’을 하러 온 기억은 선명한데, 정작 코 재수술의 결과는 실패였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그녀에게 떠오른 것은 성형강국 한국이었다. 한국에서 가장 코수술을 잘하는 의사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놀랍게도 그녀는 미국 성형외과학회 공식저널인 PRS를 뒤졌다고 한다. 코수술 논문이 실린 한국 의사를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PRS는 영향력지수가 무려 5.169에 달하는 세계 최고권위의 성형외과 학술지이다 (여기서 잠깐, 2022년 말, 필자가 책임저자인 돌출입과 턱끝수술 영어논문이, 바로 그 PRS 저널에 출간 확정되었다는 깨알 자랑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해서 한국 성형외과 전문의를 찾아와 세 번째 코수술에 성공한 K의 추진력과 집요함에 박수를 보낸다. 그렇게 한국 성형수술의 수혜자가 된 그녀는, 이번에는 돌출입수술을 계획한다. 백인으로 오해받는 하얀 얼굴 피부와 돌출입은 더욱 심한 부조화로 느껴졌을 것이다. K는 은인인 한국 의사에게 조언을 구했고, 그 답은 바로, 필자를 찾아가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날 찾아온 ‘희귀한 흑인’ K는, 이미 필자에게 돌출입수술을 받았다. 너무 서구적인 입매는 싫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영국으로 돌아가 가족과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사실 수술은 그 어떤 것도 다르지 않았다. 호모사피엔스인 인간의 해부학은 모두 동일한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보통 환자와의 연락은 실장을 통하지만, K의 경우는 필자가 직접 메시지 앱을 통해 영어로 소통했다. 그녀는 사실, 3주의 휴가를 내고 오로지 나에게 돌출입 수술을 받기 위해 무작정 혼자 한국으로 온 것이었다. 수술 후 2주가 넘은 어느 날, K는 한국에 머무는 게 너무 따분하다고 한다. 아는 사람도 없고, 한국인 친구도 없고, 애당초 투어 계획도 없었으며, 호텔 직원도 영어가 서툴러서, 호텔 방에만 있기도 답답하고, 지나가던 영미권 여행자에게 말을 걸 지경이라며 웃는다. 

좀 안쓰러웠다. 심심하기도 하겠지만, 외롭기도 하고 서럽기도 했을 것이다. 필자가 제안을 했다. 코리안 바비큐 어떠냐고. ‘주치의’가 환자에게 하는 제안이 의외였을 것이다. 필자가  환자로부터 저녁 대접하겠다는 제안을 받은 적은 있지만, 거꾸로 환자에게 소고기 사주겠다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누님뻘인 영국인에게 흑심이 있어서는 아니었으니 오해 마시길.

꽃등심을 굽는 자리에, 의사친구 두 명을 더 초청했다. 남자 교수와 여자 의사였다. 그렇게 넷이서 최고급 등심과 함께 한국 소주를 마셨다. K에게는 스테이크 아닌 한국식 등심구이를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순간이었다. 황홀한 맛이라고 한다. 건배를 하자, K가 술을 마셔도 되냐고 묻는다. “주치의와 함께라면 괜찮다”는 흔한 답변을 해주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런데, 영어로 된 꽃이었다. 한 시간도 안 되어 (한국말로) 한 의사 친구의 일갈.

-영어 하는 거 너무 피곤하다. 그만 일어나자.

나는 사실 영어로 이야기하는 게 전혀 불편하지 않다. 외국에 유학한 적도 없고, 한국 교과과정의 영어만 배웠는데 이상한 일이다. 우리 때는 영어유치원 같은 건 없었고, 영어는 중 1 때 “아이 엠 어 보이”부터 시작하는 거였다. 대학입시에서도 제일 자신 있는 과목이 영어였다. 영어 문제집이 나오면 싹 다 사서 풀었다. 풀다 풀다 더 이상 풀 문제집이 없어서, 공부하는 셈 치고 영어 문법책을 내가 직접 썼다. 손글씨로 쓴 다음 복사하고 제본해서 친구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했다.

환자가 눈치가 백단인 건지, 자기는 먼저 호텔로 돌아가 쉬겠단다. 한국 음식이 정말 어메이징했고, 즐거운 시간 만들어줘서 감사하단 말을 몇 번이나 한다. 사실, 영국인을 게스트로 초대해 식사한다면, 한국인끼리도 영어로 말해야 예의다. “영어 하는 거 피곤하다”고 한국말 하는 표정을 읽었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알고 보니, K는 심리학 전공자고, 직업이 심리상담가였다.

영국의 여왕이 서거했을 때도, 한국의 할로윈 대규모참사 때에도, 앱을 통해 서로에게 애도의 뜻을 전했다. 생각해보면, 우주에서 먼지처럼 작은 이 지구별에 몇 명 존재하지 않는 새하얀 피부의 흑인이, 하필 동북아시아의 조그만 나라 대한민국으로, 이 세상에 셀 수 없이 많은 의사 중 딱 필자를 찾아와 돌출입수술을 한 것이 보통 인연은 아니다. 

행복하게 잘 지낸다며 셀피(selfie)도 보내주었던 K. 언젠가는 그녀의 남편과 함께 ‘의느님의 나라’ 한국을 방문하게 될 것이다. 아내가 아름다워졌으니, 남편이 한 턱 내지 않을까? 영국산 위스키를 한 병 들고 올 수도 있다. 

맛있는 한국 음식을 영국식 영어에 버무려 먹게 될 그 날을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