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연합뉴스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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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찍는 카메라가 전부 캐논이네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한국의 밤’ 행사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자신의 사진을 찍는 국내 취재진들에게 던진 농담이다. 캐논은 세계 카메라 시장 점유율 1위인 일본의 브랜드다. 

극장용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국내 개봉 17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 작품은 1990년대 <슬램덩크> 만화에 열광했던 3040 세대 남성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극장에서 개봉되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30만 관객 이상을 넘기는 일이 대단히 드문 우리나라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캐논 카메라나 슬램덩크 사례를 두고  NO JAPAN(일본 제품 불매 운동)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다. 얼마 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NO JAPAN에 참여하고 있지만,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고 왔다”라면서 “슬램덩크는 대체재가 없으니 괜찮지 않은가”라는 게시글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게시글의 댓글 창은 그야말로 야단법석이 났다고 한다. 웃지못할 일이다.  

전 세계가 서로 비교우위를 지닌 재화들을 교환함으로, 모두가 성장하는 자유무역경제는 현대 자본주의의 근간이다. 한국과 일본은 이미 지난 수십 년 간의 교류를 통해, 경제적인 측면에서 서로 깊숙하게 의존하고 있는 관계다. 한국에서도 일본이 있어 먹고사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일본에서도 한국이 있는 덕에 먹고사는 이들이 많다. 

최근 100만 관객을 돌파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 출처= 네이버 영화
최근 100만 관객을 돌파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 출처= 네이버 영화

아직도 NO JAPAN을 ‘애국심의 상징’인 것처럼 부르짖는 이들은 대체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인가. 그들에게 묻고 싶다. 초밥 한 번도 안 먹어 본 사람 있는지,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 한 편도 안 보고 산 사람 있는지, 일본제 시계 한 번이라도 착용해보지 않은 사람 있는지. 일본 맥주 한 번이라도 안 마셔본 사람 있는지.    

넷플릭스 재팬에서는 최근 2022년 한 해 동안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시청한 콘텐츠 100편을 선정해 발표했다. 놀랍게도 100편 중 33편이 한국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우리가 영향을 받는 만큼, 상대방도 영향을 받게 된다. 이것이 문화의 속성이다.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각 나라들 간의 소비재, 문화 콘텐츠 그리고 경제 교류는 외교적 상황 또는 역사적 배경과 이미 별개의 문제다. 당장 전쟁으로 대치하는 극단적 상황이 아니고서는 말이다. 

NO JAPAN으로 대표되는 현재의 반일 프레임은 지난 정권에서 진보 진영이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의도적으로 활용했다는 공식 문서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렇듯 저열한 정치놀음에 생각 없이 놀아난 이들의 비이성적 불매운동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소름이 돋을 정도다.  

이 글을 쓰느라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라도 이번 설 연휴에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나 한 번 더 보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