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파. 출처 : SM엔터테인먼트
에스파. 출처 : SM엔터테인먼트

K-POP이 산업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아티스트 육성부터 공연 기획, 마케팅에 이르는 공정을 체계화한 국내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의 시스템이 있었다. 그러나 단지 시스템의 힘만으로 이룬 성과는 아니었다. 최근 몇 년 K-POP의 성장세가 가팔라진 것은 전 세계 수억 명 이상의 글로벌 팬덤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매력적 아티스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 확산기인 2020년 이후에 등장한 4세대 K-POP 아티스트들의 대 활약은 이전 세대와 확연하게 비교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K-POP 양대 산맥의 힘

하이브의 BTS, YG엔터테인먼트의 블랙핑크는 명실상부 K-POP 그룹의 최정상에 있는 양대산맥이다. 글로벌 메가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두 그룹의 영향력은 코로나19의 여파와 관계없이 강했다. BTS는 2021년 아메리칸뮤직어워드(AMA)에서 3관왕에 올랐으며, 지난해 5월에는 미국 3대 음악 시상식인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3관왕에 오르며 6년 연속 수상의 대기록을 세웠다. BTS의 힘은 음반판매 수치에서도 드러난다. 가온차트의 집계에 따르면 BTS는 2022년 한 해 동안에만 총 720만8920장의 음반을 판매했다. 전체 K-POP 연간 음반판매량이 약 5000만장 수준에 이르는 것을 고려하면 BTS의 영향력은 쉽게 가늠할 수 있다.

같은 기간, 블랙핑크는 4인 멤버 완전체로 음반을 발매하지는 않았으나 리사·로제 등 2명의 멤버가 각각 발표한 솔로 음반이 발매됐다. 리사의 솔로 싱글 앨범 <LALISA>는 76만6486장, 로제 솔로 싱글 앨범 <On The Ground>는 62만2624장의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통상 K-POP 음반의 흥행을 판단하는 판매량 기준이 ‘50만장’임을 감안하면 블랭핑크의 영향력은 개별 멤버의 활동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광야’ 에스파부터 ‘슈퍼루키’ 뉴진스까지

글로벌 코로나 팬데믹 기간인 2020년에서 2022년은 공교롭게도 차세대 실력파 K-POP 그룹들이 대거 등장한 시기였다. 이 기간 동안 두각을 드러내면서 전 세계 팬덤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그룹들은 특히 여성 그룹들이 많았다.

‘광야’라는 이름의 메타버스 세계관 스토리텔링 그리고 기존 팝 음악의 문법을 비튼 ‘하이퍼 팝(Hyper POP)’ 장르를 음반에 도입한 SM엔터테인먼트의 ‘에스파(aespa)’는 차세대 K-POP의 시작을 알린 그룹이었다. 2020년 11월 데뷔한 에스파는 메타버스 세계관의 ‘난해함’을 하나의 콘셉트로 앞세워 전형적인 SM 스타일 그룹과는 다른 느낌을 전달해 “독특하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여기에 각 멤버들의 압도적 비주얼과 그에 상응하는 가창력, 퍼포먼스 실력으로 에스파는 <Next Level>과 <Savage> 등 인기곡으로 2021년 한 해 K-POP 업계의 인기를 독점하다시피 했다.

뉴진스. 출처 : 어도어
뉴진스. 출처 : 어도어

에스파의 독특함은 의외의 미디어에서 호평을 받았는데, 미국의 경제 미디어 <포브스(Forbes)>는 에스파의 첫 미니앨범 <Savage>가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100개의 음반 순위를 매기는 빌보드의 ‘톱 앨범 세일즈’ 차트에서 2위를 차지한 것에 대해 “이 4인조 그룹의 첫 앨범은 한국의 모든 여자 가수들의 기록과 비교해도 매우 중요하고 엄청난 승리”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2021년 12월 데뷔한 스타쉽엔터테인먼트의 K-POP 그룹 ‘아이브(IVE)’는 ‘아이즈원(IZ*ONE)’의 전 멤버로 인지도가 높은 장원영·안유진이 합류한 그룹으로 데뷔 직후부터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멤버들이 가진 보이스의 장점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귀에 감기는’ 멜로디가 돋보이는 <ELEVEN>, <LOVE DIVE>, <After LIKE> 등 주요 대표곡이 모두 성공을 거두면서 차세대 K-POP 그룹의 대표주자로 우뚝 섰다. 특히, 인기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은은한 광기’라는 재미있는 콘셉트를 내세운 멤버 안유진의 또 다른 매력이 재발견되면서 아이브는 2022년 상반기 K-POP 시장을 주름잡았다.

아이브. 출처 :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아이브. 출처 : 스타쉽엔터테인먼트

2022년 K-POP 시장이 사실상 아이브의 독무대가 되고 있을 무렵, BTS를 탄생시키며 국내 4대 엔터기업으로 위상이 높아진 하이브도 K-POP 걸그룹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하이브 산하의 레이블 쏘스뮤직, 어도어를 통해 2022년 5월 데뷔한 르세라핌(LE SSERAFIM)과 2022년 7월 데뷔한 뉴진스(NewJeans)는 모두 2022년 하반기 K-POP 시장을 완전 장악한 그룹으로 기록됐다.

前 아이즈원 멤버 미야와키 사쿠라와 김채원이 소속된 르세라핌은 데뷔 초기 한 명의 멤버가 과거 문제로 퇴출되는 등의 논란을 겪었다. 그러나 개별 멤버들의 뛰어난 퍼포먼스 실력과 중독성 있는 멜로디가 돋보이는 대표곡들의 시너지로 일련의 논란을 극복하면서 르세라핌의 첫 미니앨범 피어리스(FEARLESS)는 발매 일주일(2022년 5월 2일∼8일) 동안에만 총 30만7450장이 판매됐다. 당시를 기준으로 르세라핌의 음반 판매 기록은 역대 K-POP 걸그룹의 데뷔 음반 초동(발매일 기준 일주일간 음반 판매량) 신기록이었다.

르세라핌 출처 : 쏘스뮤직
르세라핌 출처 : 쏘스뮤직

공교롭게도 르세라핌의 데뷔 음반 초동 판매 기록을 깬 것은 하이브라는 같은 지붕의 이웃 그룹인 뉴진스였다. 뉴진스의 데뷔 앨범 <New Jeans>는 첫 발매 후 일주일 동안 총 31만1271장이 판매돼 르세라핌이 세운 기록을 넘어섰다. SM엔터테인먼트에서 Creative Director, 하이브에서 CBO(Chief Brand Officer)를 역임한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가 직접 기획한 뉴진스는 데뷔와 동시에 국내 주요 K-POP 차트 순위 1위를 독식하며 그야말로 ‘괴물 신인’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와 같은 차세대 K-POP 그룹들의 팬덤 유입력은 국내 시장을 넘어섰고, 데뷔와 동시에 두터운 글로벌 팬덤을 구축하는 힘을 보여주면서 K-POP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