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벤투호는 비록 8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우리 선수들에 대한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는 여전하다. 특히 ‘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응원 메시지는 우리 국민들의 성숙한 응원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어쩌면 과거와는 달리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우리 국민의식도 작용했을 것이고, 그만큼 우리 태극전사들의 투혼을 국민들도 어느 정도 인지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구의 세계는 냉정하다. 독일의 축구 영웅 베켄바우어 선수는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가 강하다’라는 명언을 남겼고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극적으로 우승을 안긴 서독의 헤어베어거 감독은 ‘공은 둥글고, 축구는 90분동안 계속된다’라는 유명한 발언은 아직도 회자된다. 결국 그라운드에서 작은 공을 놓고 싸워야 하는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고 엄정하다.

어쩌면 우리 기업들이 처한 현실과 축구는 비슷하다. 둥근 공을 앞에 두고 90분 동안, 아니, 무제한 시간 동안 경쟁사와 싸워야 하는 현실은 축구판보다 더 가혹할 수 있다. 필자가 지난 2022년 한 해 동안 본 칼럼에 쓴 내용을 다시 보더라도, 우리 기업들에게 더 강해지고 치밀하고 완벽해야 한다는 ‘주문’들로 가득하다. 그것이 경영전략의 본질이고 정체성이자 경영전략의 존재의 이유 그 자체다.

하지만 필자가 지난 여러 칼럼을 통해서, 마냥 기업들에게만 다양한 전략을 요구하고 주문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새삼 반성하게 된다. 마치 좋은 축구팀에게 있어서, 좋은 감독, 스태프, 축구협회, 응원단 등 여러 이해관계자가 함께 하듯이, 과연 우리나라 기업들도 현 시점에서 좋은 그라운드와 환경에서 경영활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동안 우리 사회가 우리 기업들을 이윤 추구만 하는 집단으로 매도하고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도배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필자가 올해를 되돌아보면서, 우리 기업들이 아직도 이런 경영환경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상징적인 뉴스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지난 8월 일부 국회의원들이 횡재세법을 발의한 가운데 11월 10일에 국회에서 '한국형 횡재세법 쟁점과 입법과제 토론회'를 열었다. 구체적으로 이번 법인세법 일부개정안에 따르면 석유정제업자 및 액화석유가스 집단공급사업자는 직전 3개 사업연도 평균 소득금액 대비 해당연도에서 5억원 이상 '초과소득'이 발생한 경우 20%를 법인세로 추가 납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번 법안이 발의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차단 등으로 에너지 위기에 처한 유럽연합(EU)이 위기 극복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정유사, 발전회사 등에 횡재세를 부과하기로 한 것에서 착안됐다고 한다. EU의 경우, 기업의 3년 치 평균 이익의 20%를 초과하는 수익에 대해 33% 세율로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것인데, 횡재세로 1400억유로(약 195조원)을 걷어 전기료·난방비 급등에 시달리는 가계,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처한 현실이 과연 EU와 비슷한 것일까? 물론 인플레이션의 암운이 우리를 비롯한 여러 국가를 뒤덮고 있지만, 과연 원유 한방울도 나오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도 횡재세라는 동일한 잣대를 적용할 수 있을까?

횡재(橫財)를 뜻하는 영어 ‘Windfall’의 어원을 이해하게 되면 횡재세의 배경을 덤으로 알게 된다. 중세 시대 영국에선 숲의 주인들이 땔감을 얻기 위한 도둑 벌채를 엄격히 금지했지만 폭풍에 쓰러진 나무를 주워가는 건 눈감아 줬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런 나무는 횡재나 다름없었다. 이런 배경에서 1997년 영국 노동당은 집권 직후 횡재세(windfall tax)라는 이름의 세금을 새로 만들었다. 보수당 대처 정부 시절 신자유주의 정책에 따라 많은 국영기업이 민영화됐는데, 이 과정에서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은 기업에게 뒤늦게 횡재세를 부과한 것이다. 이렇게 조달된 1조원가량 세금은 복지 재원으로 활용됐다고 한다.

일단 일부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횡재세 대상이 진짜 적용 대상인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정유사의 영업이익률은 평균 2~4%대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국내 정유 4사는 코로나19에 따른 수요 급감으로 5조원 넘는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원유 시추를 하지 않는 국내 정유사들은 원유를 들여와 정제한 뒤 제품으로 판매하는 ‘정제마진’에 수익이 좌우된다. 실제로 국내 정유사의 수익 가운데 재고 관련 이익을 제외하면 올해 1분기 영업이익률은 6% 정도로 추산된다. 미국 의회에서 이익률이 10%를 넘어서는 석유회사에 21%의 세금을 더 부과하자는 ‘초과이윤세’ 개념의 횡재세는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다.

아울러 횡재세의 조세 대상도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유럽에서 횡재세, 즉 초과이윤세는 원유를 시추하고 생산하는 이른바 ‘업스트림(upstream)’ 생산업자에 부과하는 것이다. 우리와 같이 원유를 도입해서 정제하는 정유사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즉 유럽 석유기업들은 자원 개발, 공급, 발전까지 하는데 원유를 채취하는 비용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에너지 가격만 올라 떼돈을 벌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정유사들은 직접 자원 개발을 하지 않고 해외에서 도입해 파는 구조라 상황이 다른 것이다. 구체적으로 원유를 직접 시추하는 기업은 판매 가격 중 약 5달러를 제외한 나머지를 수익으로 가져가는 구조다. 반면 국내 기업은 원유를 해외에 100% 수입한 뒤 휘발유와 경유를 만들고, 그중 절반 이상을 해외로 수출한다. 횡재세를 도입할 경우 국내 정유업계의 수출 경쟁력을 하락시킬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횡재세 논란의 근본적인 원인은 고유가로 인한 석유회사들의 ‘횡재’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에너지 대전환기에 살고 있다. 화석 연료에서 신재생 에너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정제 부문 투자가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으며 석유제품 공급 부족으로 인한 가격 폭등이 소비자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천연가스 부족이 대체 석유 수요로 옮겨가며 에너지 전반의 수급 불안과 가격 폭등을 가져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대전환 시기에, 무조건 자원개발 기업에게 횡재세를 물려 사회에 환원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일시적으로 세수를 늘릴 수 있겠지만 지금 당장 우리가 겪고 있는 고물가, 에너지 수급 불안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다.

횡재세 논란 이외에도 최근에 계속되고 있는 화물연대 문제, 노사관계 문제 등 우리나라 기업들은 늘 ‘극한환경’에서 경영을 해야 한다. 한 때, 우리 기업들이 정부와 유착해서 이윤만 추구한 폭리집단으로 전락했던 이력 또한 무시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최근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에 대해 이러한 인식 안에서 계속 매몰되는 것은 대한민국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과 기업들의 생산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은 한국경영학회 회원을 대상으로 기업경영환경 및 기업가정신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경영학자의 62.3%는 우리나라의 경영환경이 선진국에 비해 뒤처진다 평가하며 그 이유로 기업규제 부담(39.4%), 고용비용 증가(31.7%), 무역 관련 불확실성(12.8%) 등을 들었다. 글로벌 경영환경은 자국중심 보호무역 주의로 재편되고 있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우리 기업들에게 좀 더 친절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된다면, 필자도 다가오는 2023년 계묘년(癸卯年)에는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우리 기업들에게 경영전략과 관련한 다양한 주문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90분동안 그라운드에서 마음껏 공을 찰 수 있는 그 느낌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