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1년 12월, 일본의 메이지 정부는 대규모 해외사절단을 파견한다. 행정기관의 수장이었던 이와쿠라 도모미가 특명전권대사를 맡고 기도 다카요시, 오쿠보 도시미치, 이토 히로부미 등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이 부사로 참여한 100여명 규모의 사절단이었다.

‘이와쿠라 사절단’으로 이름 붙은 이 사절단은 거의 2년에 걸쳐 미국과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구미 12개국을 순회한다. 귀국 후 사절단의 일원인 구메 구니다케가 대표 집필한 출장 보고서가 ‘미구회람실기(米歐回覽實記)’다.

이 실기에는 각국의 문화와 산업, 행정 및 정치 체제 등에 대한 견문록이 담겨 있다. 그 중 미국의 정치체제에 대한 기록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의회는 다수결 원칙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미래를 내다보는 탁월한 견해보다는 하책이 선택되는 경우도 많고, 의안에 문제가 있어도 십중팔구 원안대로 통과되므로 그 사이에 뇌물이나 흥정이 없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미국 의회제도의 맹점에 대한 예리한 비판이다.

이 기록은 두 가지 점에서 경이롭게 느껴진다. 첫째는 150여 년 전의 일본인들이 보여준 통찰력이다. 난생 처음 접한 서양의 정치체제에 대해 그 취약점을 어떻게 이처럼 ‘뼈 때리듯’ 짚어냈는지 감탄스럽기만 하다.

그에 못지않게 놀라운 점은 이 글에 묘사된 모습이 오늘날 대한민국 국회의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우리 국회는 그동안 정쟁에 매달리느라 국가의 장기 비전이나 민생을 도외시하는 모습을 자주 연출했다. 또 부실입법으로 국민 경제에 부정적 결과를 빚은 사례도 적지 않다. 충분한 보완 대책 없이 시행돼 오히려 세입자에게 고통을 안겼던 주택임대차보호법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와 관련 지난 23일 한국산업연합포럼(KIAF)이 주최한 세미나에서는 우리 국회의 과잉입법, 부실입법 실태가 도마에 올랐다. KIAF 산하 미래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20대 국회의 경우 발의된 법안 중 1만4986건이 부결되거나 임기만료, 철회 등의 사유로 폐기됐다. 부실 입법이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다.

앞서 한국경제연구원도 지난 6월 '과잉·졸속 입법사례 분석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같은 맥락의 비판을 제기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의원 발의 법률안은 17대 국회 6387건에서 20대 2만347건으로 급증했다. 21대 국회도 출범 후 1년 새 1만5000여 건을 발의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처럼 법안 발의에 열심인 국회가 정작 필요한 법안의 입법은 외면하는 경우가 잦다. 최근 화물연대 파업의 원인이 된 안전운임제만 해도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었지만 국회는 이를 방기했다.  

또 올해의 경우 행정부가 77건의 법안을 제출했지만 야당의 몽니에 단 한 건도 통과되지 못했다. 이런 행태는 지난 정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례로 2019년 11월25일자 한국경제신문은 ‘정부, 올해 법안 155건 발의…협치 실종에 국회 통과 3건뿐’이라는 기사를 싣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국회의원들이 ‘선출된 권력’을 운위하며 위세를 부리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하지만 앞서 지적한 국회의 행태를 보면 그들이 권력에 상응한 책무를 다 하고 있는 지는 회의적이다. 이와쿠라 사절단이 오늘날 대한민국 국회의 모습을 본다면 어떻게 기록할지 궁금해 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