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연합뉴스
출처=연합뉴스

최근 주요 시중은행들의 정기예금 금리가 연 5%를 넘어서는 등 수신경쟁이 치열해지자 금융당국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예금금리가 올라가면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의 지표로 활용되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에 반영돼 결과적으로 대출금리 인상을 가속화한다는 이유에서다.

당국의 행보를 놓고 업계 안팎에선 의견이 갈린다. “당국이 ‘은행채 발행 자제령’을 내린 데 이어 예금금리 인상에까지 관여하게 되면 자금조달 여건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업계의 불만과 “금리가 급격히 높아지는 특수한 상황과 금융기관의 독점력이 맞물린 상황임을 감안했을 때 당국의 스탠스는 타당성이 있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이 서로 배치되는 상황이다.

‘예금금리→코픽스→대출금리’…“금리 사슬 관리 목적”

21일 당국에 따르면, 당국은 은행권을 상대로 자금 확보를 위한 수신금리 인상을 자제해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시장금리가 상승 기조여서 예금금리도 이를 거스르기 어려운 측면이 있으나, 금리 조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지 말아 달라는 차원이라는 게 당국 측 입장이다.

앞서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은행장들과 만난 간담회에서 “은행들이 금리 상승에 대한 대응 과정에서 경제에 부담을 줄일 방안을 고민해 달라”고 주문한 바 있다.

당국이 예금금리 인상에 브레이크를 걸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예금금리 인상이 곧 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메커니즘으로 작용되기 때문이다. 은행권 변동형 주담대의 지표로 활용되는 ‘코픽스’가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코픽스는 NH농협·신한·우리·SC제일·하나·기업·KB국민·한국씨티은행 등 국내 8개 은행이 조달한 자금의 가중평균금리로 은행이 실제 취급한 예·적금, 은행채 등 수신상품 금리가 인상 또는 인하될 때 이를 반영해 상승 또는 하락한다.

특히 코픽스 산정 요인 중 저축성 수신상품 금리의 기여도가 80% 이상인 것을 고려하면 결국 ‘예금금리 상승’이 코픽스 상승과 주담대 금리 상승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구조인 셈이다.

최근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금리는 연 5%를 돌파, 6%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세계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이후 1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난 15일 공시된 ‘10월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는 3.98%로 공시가 시작된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고, 월간 상승 폭(0.58%포인트)도 가장 컸다. 이는 9월 은행권 수신금리 인상이 반영된 결과이며 발표 이튿날 코픽스 변동 분만큼 주담대 변동금리에 즉시 반영됐다.

이에 대출금리 역시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변동형 주담대 금리는 지난 16일 8.154%까지 치솟았고, 이날 기준 5대 시중은행의 변동형 주담대 금리 상단은 7.17%, 고정형(혼합형) 금리 상단은 7.01%로 집계됐다. 신용대출도 금리 상단이 7.48%에 달해 3대 대출금리 모두 8%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쏠림현상’에 2금융 수신고 급감 가능성도

전문가들도 당국의 조처에 힘을 싣는 분위기다. 치솟는 대출금리에 가계와 기업의 부담이 커졌고 이런 상황 속 은행의 ‘이자 장사’에 대한 비판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의 예금금리 인상이 제2금융권의 자금을 빨아들여 제2금융권의 수신고가 급감할 가능성도 위험요소로 지목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일반적으로는 당국이 시장 및 가격에 대해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지만, 현재처럼 금리가 급격히 높아지는 상황에서 독점력을 지닌 금융기관이 예금금리를 올리는 것은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며 “예금금리를 올리는 것 자체보다 그 과정에서 대출금리가 급격히 올라가는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에 예대 금리의 스프레드가 크게 벌어지지 않도록 관리한다는 차원에서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김대종 세종대 교수는 “미국이 오는 2024년까지 기준금리를 지속적으로 올릴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최근의 흐름으로 본다면 내년 중 주담대 금리가 최고 10%대에 진입할 수 있다”며 “주담대 금리가 급격히 오르다보면 집값이 하락해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게 되는데 이 경우 은행의 부실화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어 이번 당국의 결정은 가계·기업뿐만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은행 건전성까지 생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교수는 “정부는 집값이 크게 오르는 것도 기피하지만 집값이 큰 폭으로 내릴 경우 금융권 전반에 더 심각한 문제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부동산 현상유지’가 정부가 가장 바라는 방향으로 이를 위해 은행권 가산금리를 묶으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반면 업계 내부에선 “은행채에 이어 예금금리까지 묶여 자금조달에 비상이 걸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레고랜드’ 사태 이전부터 부동산 경기 침체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등으로 기업대출이 크게 늘었고 은행들은 자금 마련을 위해 은행채 발행을 대폭 늘려왔다. 이에 최근 당국은 채권 시장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은행채 발행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대출금리를 선제적으로 관리하겠다는 당국의 취지가 이해는 된다”면서도 “다만 은행채 발행을 두고 당국이 자제하라는 지시를 했는데 예금금리 인상에 대해서도 제동을 걸어 자금조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전문위원은 “은행의 자금조달 수단은 예금수신과 은행채 발행 두 가지인데 당국이 제2금융권의 유동성 경색을 우려해 수신 경쟁도 제한하면서 은행의 자금 조달에 상당한 제약이 생겼다”며 “이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