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 미국 등 유럽의 러시아에 대한 압박이 커지고 있으나, 발 밑에서는 서방의 중요한 축인 유럽의 분열 가능성도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이미 영국이 브렉시트로 떨어져 나간 가운데 유럽이 미국의 또 다른 맞수인 중국과의 관계개선에 나서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출처=갈무리
우크라이나 전쟁. 출처=갈무리

점입가경 우크라이나 전쟁
지난 2월부터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현재 불확실성의 연속에 빠져있다. 러시아가 실지배하고 있는 크름반도에 대한 타격, 이어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습이 숨 가쁘게 벌어진 상태에서 동부전선 분위기가 심상치않다. 

우크라이나 군대의 대규모 반격이 시작되며 헤르손 일대의 러시아 군대가 후퇴를 시작했으나 이 역시 확실하지 않다. 로이터는 3일(현지시간) 헤르손의 고위 관리를 인용해 현재 러시아 군대가 최후의 보루인 드네프르강 서쪽에서 완전히 철수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 군대를 유인하기 위한 함정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우크라이나 국가저항센터는 러시아 군대가 드네프르강을 건너 동쪽 강둑에 배치된 것은 확인한 상태다. 그러나 러시아 군대의 추후 진군로가 예상되지 않는 상태에서 라스푸티차(진흙탕)가 발목을 잡자 추가 반격에는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말 그대로 '이전투구' 양상으로 치닫는 가운데 경제전쟁의 총성도 요란하다. 

미국 등 서방이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에너지 제재에 나서는 가운데 G7이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에 전격 돌입했다. 실제로 로이터는 3일(현지시간) G7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전쟁 자금 조달을 차단하자는 취지로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를 단행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미 재무부가 지난 5월 처음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 필요성을 주장한 가운데 G7이 반년 후 이를 받아들인 셈이다. 실제 발효일은 내년 2월 5일이다.

러시아도 반격하고 있다. 노드스트림 밸브관을 인질로 잡으며 겨울이 찾아오고 있는 유럽의 천연가스 인프라를 위협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에너지 기반 시설을 정밀타격하며 판을 흔들고 있다.

지난달 초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는 미국의 의지와 180도 다른 OPEC+의 전격적인 원유 감산 결단 배경에도 러시아의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는 글로벌 식량 안보도 흔들고 있다. 지난달 29일 우크라이나의 자국 흑해함대 공격을 이유로 흑해 곡물 수출 협정 중단을 선언하는 등 초강수를 두고 있다. 이후 유엔 및 튀르키예의 설득에 나흘 만에 협정에 복귀하겠다고 밝혔으나 러시아는 "언제든 협정을 탈퇴할 권리가 있다"는 메시지로 일종의 여지를 남겼다.

중국으로 기우는 유럽

우크라이나 전쟁이 치열한 가운데 아직까지는 미국과 유럽의 단일대오가 굳건하다.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를 중심으로 하는 군사동맹을 바탕으로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있다.

다만 미국과 서방의 단일대오는 중국 앞에서는 다소 주춤거리고 있다. 미국이 러시아는 물론 중국을 겨냥한 패권전쟁 전선을 유지하고 있으나 유럽 일각에서는 친중행보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 본부. 출처=갈무리
유럽연합 본부. 출처=갈무리

당장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4일 중국을 찾았다. 폭스바겐 지멘스 등 독일 대기업 수장들과 함께 중국을 찾은 그는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에 실린 기고문을 통해 "오늘날 중국은 5년 또는 10년 전 중국이 아니다"면서 "우리는 중국과 디커플링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다각화를 통해 일방적인 의존도를 줄일 것"이라면서도 "중국에 대한 이런 차별화된 자세는 독일과 유럽의 장기적이고 전략적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슐츠 총리의 독일은 최근 자국 최대 항만인 함부르크항 확대 개발 사업에 중국원양해운의 지분 투자를 허용하며 중국과의 관계개선에 나선 바 있다. 그 연장선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3연임이 확정된 지금 전격 중국을 방문해 양국관계 강화에 방점을 찍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지난달 유럽연합 정상회의 뒤 “중국에 대한 기술 및 원자재 의존이 위험하다"는 메시지를 낸 바 있으며 티에리 브르통 유럽연합 산업 담당 집행위원은 지난달 31일 중국을 찾는 슐츠 총리를 직접적으로 겨냥해 "순진하게 굴어서는 곤란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슐츠 총리는 이번 중국 방문을 통해 경제협력을 중심에 둔 큰 그림을 그린다는 각오다.

한편 유럽과 중국의 교감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지난 2일 왕이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카트린 콜로나 프랑스 외교장관이 전날 통화를 했다고 밝혔다. 왕 부장은 "중국은 프랑스와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계속 추진할 용의가 있다"라고 말했으며 콜로나 장관은 "프랑스는 중국과 상호 신뢰를 심화하고 세계 평화와 안정을 공동으로 수호할 용의가 있다"고 화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탈리아의 극우 정당 출신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설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 멜로니 총리는 브뤼셀 유럽연합 본부를 방문해 로베르타 멧솔라 유럽의회 의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등과 연이어 회동한 후 유럽연합과의 공조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지만 일각에서는 그가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친밀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와 함께 연합전선을 꾸린 만큼 돌발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 연장선에서 중국과의 공조 가능성도 높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이탈리아와 중국 관계는 다소 악화됐으나, 이탈리아는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한 유일한 G7 국가기도 하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지난 7월 시 주석의 초청을 받아 중국을 방문할 유력한 인물로 멜로니 총리를 지목하기도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출처=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출처=연합뉴스

미국의 고민
유럽과 중국의 부쩍 잦아진 동행은 역시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다. 중국이 글로벌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크기 때문에, 유럽국가들은 중국의 손을 일부 잡을 수 밖에 없다. 당장 독일의 경우 주력 산업인 자동차 산업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이 절대적이다. 독일경제연구소(DIW)에 따르면 독일 기업들은 올해 상반기 중국에 무려 100억유로를 투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지며 상대적으로 중국의 전략적 가치가 커진 것도 유럽과 중국의 연대에 힘을 보태고 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자 유럽은 미국과 함께 강력한 러시아 제재에 돌입했고, 그 반대급부로 자국 경제 사정이 나빠지는 악순환에 빠진 상태다. 일종의 등가교환 법칙이다. 

유럽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를 압박하면서도 러시아와 보폭을 맞추고 있는 중국과는 관계개선에 나설 수 밖에 없는 딜레마가 펼쳐지는 중이다.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이 다소 무너지는 것도 유럽의 분열에 일조하고 있다. 당장 지난해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무기력한 미군 철수, 나아가 이란 핵 협정 과정에서 속수무책으로 밀리는 미국의 외교력에 의문부호가 달리는 중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정치적 논란을 무릅쓰고 사우디아라비아로 날아가 빈 살만 왕세자와 주먹악수까지 했으나 원했던 증산은 물론 감산 날벼락을 맞았고, 최근에는 앞마당인 남태평양 솔로몬 제도에 중국군이 들어오는 역습에 허를 찔렸다. 이런 가운데 대중국 포위전선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할 유럽의 친중국 행보는 상당한 타격이 될 전망이다.

미국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일단 파이브아이즈 등 전통의 동맹은 물론 신설 오커스, 쿼드 등을 바탕으로 하는 대중국 포위망은 유지되고 있다. 실제로 캐나다는 2일(현지시간) 국가안보를 이유로 자국 리튬업체들에 투자 중인 중국 기업 3개를 퇴출시키는 등 미국과 교감하는 중이다.

한 때 미국의 요청에 따라 화웨이 런정페이 창업주의 딸인 멍완저우 부회장을 장기간 가택연금했던 캐나다는 여전히 미국 대중국 전선의 든든한 파트너다. 캐나다는 최근 화웨이 5G 통신장비도 모두 퇴출시켰다.

파이브아이즈 중 하나인 호주는 상황이 미묘하다. 중국과 철광석 전쟁도 치를 정도로 강경한 대중국 정책을 보였으나 일각에서는 오커스 탈퇴론까지 나오고 있다.

호주 일간 디오스트레일리안에 따르면 집권 노동당의 원로인 키팅 전 총리는 지난달 연설에서 "미국은 오랜 신뢰를 보인 동맹에 대해 특별히 고마워하지 않는다"며 오커스 동맹에서 탈퇴해야 한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고 있다.

여기에 유럽 국가들이 대러시아 봉쇄전에는 보폭을 맞추지만 대중국 압박 전선에는 이반되는 중이 지금의 상황이다.

다만 미국은 러시아는 물론 중국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낮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실제로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지난달 7일(현지시간) 중국 반도체 기업인 YMTC 등 31개 기업을 수출 통제 대상으로 지정했다. 이들 중국 기업이 '민감한 기술수출을 책임있게 다를 수 있을지 신뢰하는 것이 어렵다'는 이유다.

미 행정부의 이번 조치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꺾는 한편, 미국의 기술이 중국 반도체 회사를 통해 중국 정부에 넘어가는 것을 막으려는 성격이 강하다. 여기에 중국의 군사 프로그램 강화를 막으려는 의도도 깔렸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꺾는 순간 첨단 군사 프로그램 진행도 더디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여세를 몰아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지난달 12일(현지시간) 새로운 국가안보전략(NSS)을 발표하며 러시아는 즉각적인 위협이지만 중국은 "경제·외교·군사·기술적 힘을 모두 갖춘 유일한 경쟁자"라고 평가했다.

러시아는 당장의 위협에 불과하지만 중국은 극복해야 할 대등한 수준의 힘을 가진 경쟁자로 본 셈이다. 투자·제휴·경쟁이라는 3대 대중 전략 전략을 통해 향후 10년간 중국과의 치열한 경쟁에 나설 것임을 선언했다.

두 슈퍼파워의 경제는 오랫동안 패권전쟁을 거치며 어느정도 디커플링(탈동조화)을 보이는 중이다. 실제로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발표한 '미-중 무역전쟁 4년 경과 및 전망-양국 무역비중 및 탈동조화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무역의 경우 중국의 비중은 2017년 16.6%로 정점에 도달한 후 지속 감소해 올 상반기에 13.5%에 그쳤다. 중국 무역 중 미국 비중도 같은 기간 14.3%에서 12.5%로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탈동조화가 심해졌고, 그와 비례해 전쟁은 더욱 치열하게 벌어질 전망이다. 그 연장선에서 미국 정부가 이번 발표를 통해 시스템에 이어 중국 메모리 반도체도 압박하면서 당분간 치열한 패권전쟁이 더 이어질 전망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출처=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출처=연합뉴스

중국도 가만히 있을 생각은 아니다. 유럽과의 접점을 만들며 미국과의 대결에 주력할 가능성이 높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후 정해진 수순이다. 

발판은 만들어졌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3연임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 공산당 20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 회의(1중 전회)가 지난달 23일 베이징에서 열린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당 총서기로 재선출됐다. 시황제의 대관식이 열린 가운데 공청단 계열의 리커창 총리가 물러나는 등 중국 최고 지도부의 위용은 완전히 시 주석의 색으로 가득찼다는 평가다.

여세를 몰아 시 주석은 지난 7월 대만의 독립 도모를 "단호히 분쇄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낸 후 중국 군용기 150대가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에 진입한 직후인 지난 9일 신해혁명 기념식은 물론, 당 대회 개막식에서 "대만에 대한 무력 사용 포기 약속을 절대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어 전국대표대회는 20차 당 대회 폐막일인 지난달 22일 대만 독립에 대한 단호한 반대 및 억제 의지를 담은 중국 공산당 '헌법'인 당장(黨章·당헌)에 처음으로 명기했다.   

시황제의 등극으로 단기적으로는 아시아 지역의 군비확대에 속도가 걸릴 전망이다. 일본 정부가 2023회계연도부터 5년 동안의 방위비 총액을 43조에서 최대 45조엔(441조원) 규모로 검토하고 있다고 마이니치신문의 보도가 나왔으며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달 22일 호주 서부 퍼스에서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안전보장 협력에 관한 신(新) 일본·호주 공동선언’에 서명하기도 했다.

장기적으로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이 정면충돌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여기서 유럽의 스탠스가 어떤 흐름을 보일지는 확실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11월 미 중간선거가 종료되고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 결과에 따라 추후 국제정세의 재편이 벌어질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