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27일 이사회를 열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회장 승진을 의결했다. 별도의 취임식은 없으며 이 부회장은 곧바로 회장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설명이다. 위기 속 강력한 리더십을 통해 책임경영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다. 

산업계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이 대형 인수합병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낼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이재용 회장. 출처=연합뉴스
이재용 회장. 출처=연합뉴스

입사 31년 만 회장
삼성전자 이사회는 글로벌 대외 상황이 불확실성의 연속으로 치닫는 가운데 책임경영 강화 및 경영 안정성 제고,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이 절실하다고 판단해 이 부회장의 회장 승진을 의결했다고 설명했다.

1991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후 31년 만의 일이며 부친인 고 이건희 회장이 별세한 지 10년 만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18년 이 부회장을 삼성그룹의 동일인(총수)으로 지정된 지 4년여 만에 공식 회장 직함을 달게 됐다.

이재용 회장은 최근 사장단 회의에서 밝힌 소회를 사내게시판에 올려 취임사를 갈음했다. 

이 회장은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진다. 선대의 업적과 유산을 계승 발전시켜야 하는 게 제 소명이기 때문"이라면서 "안타깝게도 지난 몇년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새로운 분야를 선도하지 못했고, 기존 시장에서는 추격자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글로벌 시장과 국내외 사업장들을 두루 살펴봤다. 절박하다.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엄중하고 시장은 냉혹하다"면서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앞서 준비하고 실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지금은 더 과감하고 도전적으로 나서야할 때"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창업이래 가장 중시한 가치가 인재와 기술"이라면서 "세상에 없는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인재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조직문화가 필요하다"면서 "목표를 향해 치열하게 나아가면서도 상황 변화에 유연하고, 우리의 가치와 질서를 존중하면서도 다양성을 인정하는 개방적인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와 함께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이 회장은 "고객과 주주, 협력회사, 지역사회와 함께 나누고 더불어 성장해야 한다. 나아가 인류의 난제를 해결하는 데도 기여해야 한다"면서 "꿈과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기업,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기업, 세상에 없는 기술로 인류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기업, 이것이 여러분과 저의 하나된 비전, 미래의 삼성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마지막으로 "오늘의 삼성을 넘어 진정한 초일류 기업,  국민과 세계인이 사랑하는 기업을 꼭 같이 만들어야 한다"면서 제가 그 앞에 서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6월 네덜란드 ASML 본사를 방문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 오른쪽에서 세 번째). 출처= 삼성전자
지난 6월 네덜란드 ASML 본사를 방문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 오른쪽에서 세 번째). 출처= 삼성전자

녹록치 않은 상황...리더십 보여줄까
삼성전자가 처해있는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당장 핵심 전력인 반도체 부문에서 경고등이 들어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27일 실적발표를 통해 3분기 연결 기준으로 매출 76조7800억원, 영업이익 10조8500억원을 기록했다고 공시했다. 매출적 측면에서는 선방했으나 메모리 반도체 이익이 줄어 전체 영업이익은 직전 분기 대비 3조2500억원 감소한 10조8500억원을 기록했고 영업이익률도 14.1%로 전분기 대비 4.1%p 감소했다.

반도체 사업의 DS(Device Solutions) 부문은 3분기 매출 23조200억원, 영업이익 5조1200억원을 기록했다. 

메모리는 예상을 상회하는 고객사 재고 조정과 중화권 모바일 등 소비자용 메모리 제품군의 수요 둔화세 지속으로 전분기 대비 실적이 감소했다. 시스템LSI는 모바일, TV 등의 수요 둔화 여파로 이익이 감소했다는 설명이다. 위기상황의 경고등이 더 명확해지는 중이다.

미중 패권전쟁을 시작으로 대외 환경도 불확실해지는 중이다. 미국이 중국 반도체 굴기를 꺾으려 강도높은 규제에 돌입하는 등 시장 전체가 요동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격한 대립 속에서 삼성전자는 두 나라 모두를 중요한 반도체 수요처이자 핵심 생산거점으로 두고 있다. 최악의 경우 양쪽 모두에게서 견제를 당할 수도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나아가 TSMC로 대표되는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최강자의 압박도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생활가전 부문 등 반도체 외 사업도 위기의 연속이다. 크게 불길한 신호는 보이지 않아도 "이대로는 곤란하다"는 시그널이 나오는 중이다. 생활가전사업부장을 맡고 있는 이재승 사장이 일신상의 사유로 사의를 표명하는 등 몇몇 이상신호도 나오고 있다. 이 회장의 앞 길이 마냥 순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갤럭시 신화의 경우도 여전히 탄탄하지만 최근 시장 점유율에 이상기류가 감지되는 등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최근 반도체 외 영역에서는 확실한 기술적 한 방을 보여주지 못했고, AI 및 소프트웨어 전략에서는 여전히 경쟁사에 뒤쳐지고 있어 그 미래를 마냥 낙관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만만치않다. 나아가 사면을 받기는 했으나 이 회장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도 아직 유효하다는 점도 '리스크'다.

그런 이유로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정면돌파를 통해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글로벌 경영 및 인재 유치에 속도를 내는 한편 신기술 개발을 통해 활로를 찾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나아가 삼성전자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등 입체적인 로드맵을 보여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대형 인수합병 카드도 유효하다. 삼성전자가 판을 흔들기 위한 대형 인수합병에 나설 것이라는 주장은 이미 나온 바 있다.

이에 앞서 1월 개최된 CES 2022의 기자간담회에서 삼성전자 DX부문장인 한종희 부회장은 “인수합병 계획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으며, 곧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 연장선에서 이 회장이 대형 인수합병을 통해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