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재용 시대’가 열렸다. 이 회장에게는 대내외적 혼돈의 시기를 마주한 삼성의 새로운 리더로서 새로운 비전을 보여줘야 할 막중한 과제가 주어졌다.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제 3대 회장으로 공식 선임됐다. 삼성전자 이사회는 27일 글로벌 대외 여건이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책임경영 강화·경영 안정성 제고·신속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 부회장의 회장 승진을 의결했다.

삼성전자는 새로운 최고 경영자인 ‘이재용 회장’을 중심으로 한 전열의 재정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이재용 회장의 시대

1972년 장충동 자택서 찍은 가족사진. 출처 : 삼성전자
1972년 장충동 자택서 찍은 가족사진. 출처 :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은 삼성의 창립자인 이병철 회장, 그리고 2대 이건희 회장에 이어 세 번째로 삼성전자 및 삼성 전 계열사의 경영 방향성을 총괄하는 총수가 됐다.

그는 2014년 이건희 회장이 병상에 오른 이후부터 작고한 최근까지 ‘사실상’ 회장의 역할을 수행했으나 그 입지는 제한적이었다. 이재용 회장을 중심으로 한 여러 가지 법정 공방이 중첩되던 시기였기에 삼성의 이사회도 새로운 회장 인선의 결단을 유보해 왔다. 최근까지도 그는 본인의 회장 취임 여부를 두고 "지금은 기업을 생각할 때"라며 명확한 언급을 피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이재용 회장은 이번 승진을 통해 명실상부한 최고 경영자로서 삼성의 경영권을 온전하게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획득했다.

‘산전수전’ 대기만성 리더

이재용 회장은 2000년 처음으로 삼성의 경영진으로 이름을 올린 후 약 20년 동안 차기 경영인으로서의 준비를 거쳤다. 재계에서 대표적 ‘대기만성(大器晩成)형 리더’로 일컬어지는 이유다.

창업주의 손자이자 2대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회장은 1968년 6월 23일 서울 출생의 이 회장은 경기초등학교, 청운중학교, 경복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87학번)에 입학했다. 직계의 총수일가 중 서울대학교 출신이 없었던 것을 늘 안타깝게 생각하던 이병철 회장은 이 회장의 대학 입학을 두고 크게 기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병철 회장은 “경영학은 나중에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젊은 시절에 인간을 이해하는 폭을 넓힐 수 있는 인문학을 전공하라”고 권유했고, 그에 따라 이재용 회장은 서울대 동양사학과에 입학한다.

뒤이어 대학 졸업 이후 이재용 회장은 삼성의 미래 경영인에 걸맞은 학문적 역량을 쌓기 위해 유학길에 오른다. “일본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는 부친 이건희 회장의 조언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일본으로 건너가 게이오기주쿠대학(慶應義塾大學)에서 MBA를 취득한 후 하버드 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이재용 회장의 경영에 큰 도움이 되고있는 글로벌 네트워크의 근간이다.

이 회장이 본격적으로 본인의 이름을 내세워 삼성의 경영 일선에 참여한 것은 2000년대 부터다. 당시 33세의 젊은 나이였던 이 회장은 삼성의 예비 차세대 경영인으로서 두각을 나타내는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대내외적으로 경영의 역량을 의심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 시기의 경험들은 이 회장 스스로에게 절치부심의 기회가 됐고, 2010년 삼성의 부회장 취임 이후에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에 2014년 이건희 회장이 갑작스럽게 병상에 들면서 본격적으로 이재용 회장이 경영 전면으로 나선 2014년부터 그가 보여준 경영의 성과들은 삼성의 절대적 입지를 만드는 데 크게 일조한다.

이전 세대의 삼성을 뛰어넘다

이재용 회장은 선대 총수들이 삼성에 남긴 최고의 유산으로 여겨지는 ‘반도체’ 사업의 규모를 수십 배 이상으로 키워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의 절대 입지를 만들어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는 압도적 시장점유율로 지난 십 수 년 동안 단 한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비메모리 반도체 영역에서도 TSMC 등 세계 수위의 기업들을 바짝 뒤쫓으며 세계 반도체 시장의 큰 흐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강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이 회장은 인사(人事) 측면에서도 인상적인 전략을 보여줬다. 다양한 영역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인사들의 적극적 임원 승진, 개인적 역량을 중심으로 실시되는 임직원 평가 제도를 적용하는 이른바 ‘이재용식’ 인사를 가감없이 보여줬다는 평가다.

이재용 회장이 하만을 방문하고 있다. 출처 :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이 하만을 방문하고 있다. 출처 : 삼성전자

이를 통해 삼성이라는 거대 조직의 내부적 안정감을 완성시킴과 동시에 회사의 성장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현재 삼성의 규모가 이건희 회장의 시대보다 수 배 이상으로 커졌음에도, 여전히 꾸준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재용 회장의 조직 운영 역량은 충분히 증명된다.

효율적 경영을 위한 과감한 결단 측면에서도 특유의 감각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실제로 부회장 취임 직후 그는 삼성테크윈 등 비주력부문 사업체를 한화그룹에 매각했고 이를 통해 유입된 자본으로 글로벌 전장·음향기업인 하만(MARMAN)을 인수해 삼성전자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한다. 이 때의 선택은 삼성전자의 주력사업인 반도체와 미래 사업으로 각광받는 차세대 모빌리티의 연계 측면에서 삼성의 새로운 잠재력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다른 한 편으로 이재용 회장은 과거 산업화 시대에 관행처럼 굳어진 대기업의 경영 부조리를 자신의 대에서 끊어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전 세대 삼성 경영진의 대표적 오점으로 지적받는 무노조 경영, 편법 승계 문제, 사업장 안전성 등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적극적으로 이를 개선하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2020년 5월 이재용 회장은 삼성의 무노조 경영 방침을 폐지함과 더불어 지난 수 십 년 동안 총수일가를 중심으로 이뤄진 경영권 승계에 대해서도 “자녀들에 대한 경영권 승계는 없을 것”이라고 공표하며 “완성형 기업에 이른 삼성은 이제 다양한 사회적 요구에 대해서도 기여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라면서 변화에 대한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