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기준 전국의 총 기업회생 신청건수는 398건이고 이 가운데 146건이 서울회생법원에 집중돼 있다. 자료=대법원 사법 통계  

“영업점을 서울에 만들어 서울회생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하면 됩니다”

한 로펌의 변호사가 부산에 본점을 둔 어느 한계회사에 대해 법률 자문한 내용이다. 법정관리(=회생절차)사건을 서울 관할로 가져오기 위한 조언이다. 부산법원에 비해 서울회생법원의 회생절차 속도가 빨라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정치권이 전국적으로 회생 전문법원 설치를 잇달아 예고했다. 주요 광역도시에 회생 전문법원의 설치가 공론화되면서 기업 구조조정 절차의 지역적 불균형이 해소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현재 기업 구조조정을 전담하는 회생법원은 2017년에 설치된 ‘서울회생법원’이 유일하다. 일반 법원으로부터 인사와 재정을 독립시킨 서울회생법원은 국내 주요 기업의 기업 구조조정을 전담하다시피 했다. 

지방에 본점을 둔 기업들도 서울회생법원에서 법정관리(=기업회생) 절차를 밟는 경우가 많았다. 한계기업들은 채무자회생법의 관할 규정을 적극 이용해 관할을 옮겼다. 

예컨대 법정관리신청을 앞두고 영업소를 서울에 설치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채무자회생법의 관할규정에 따르면 채무자 회사는 주된 사무소나 영업소가 있는 곳에 기업회생을 신청할 수 있다. 본점이 부산에 있더라도 서울에 영업소가 있으면 부산지방법원이 아닌 서울회생법원에 법정관리(=기업회생)를 신청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은 관할규정은 서울회생법원에서 구조조정을 하려는 기업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개정돼 왔다. 이 때문에 지방에 본점을 둔 기업들이 로펌의 자문을 받아 서울회생법원의 직행하는 사례가 늘어 났다.

서울회생법원을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회생절차의 처리 속도다. 서울회생법원의 기업회생 절차는 다른 지역 법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인적, 물적 재판 여건이 완전히 독립된 데다가 많은 판례가 쌓인 것이 빠른 업무 처리의 요인이다.   

똑같은 법률 서비스 줘야...광역시 회생법원 설치 법안

최근 부산지역에 회생법원을 설치하는 법안을 발의한 김도읍 의원(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민의 힘)도 부산법원의 회생 처리 속도에 문제를 제기했다. 

김 의원실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의 기업회생 절차가 신청부터 개시일까지 평균 28.5일이 걸렸지만 부산지방법원은 70.6일로 2.5배가량 더 소요됐다. 개시결정이 늦춰진다는 것은 채무자 기업의 불안정한 법적 지위가 오래 유지된다는 의미다.

서울회생법원에 비해 부산지법의 회생절차가 느린 이유는 법관과 직원 수 부족 때문으로 나타났다. 제2의 도시 부산이 속해 있는 부산법원에 기업회생과 파산을 전담하는 법관은 모두 9명에 불과하다.

한계기업의 입장에서는 본점이 어느 지역에 위치되어 있느냐에 따라 구조조정의 법률 서비스가 달라지는 문제가 생긴다.

더불어민주당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박주민은 의원도 이와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박 의원은 부산, 대구, 광주, 대선, 수원 등 주요 광역시에 전문 회생법원의 설치를 주요 내용을 한 입법안을 지난 9월에 발의한 바 있다.

박 의원은 입법 취지를 설명하면서 "지방법원별로 절차의 신속성과 채무자 입장 반영 정도가 달라 채무자가 어느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 법률적인 구제에 차등 대우를 받고 있다. 전국 모든 곳에서 전문적이고 통일적인 회생절차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작 있어야 할 지역에 전문법원이 없는 것도 문제로 거론됐다. 경기도가 여기에 해당된다.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법제사법위원회)은 지난 4일 수원특례시에 도산사건 처리를 전문으로 하는 회생법원을 추가 설치하는 내용을 담은 법원설치법 개정안을 냈다.

현재 수원지방법원 관할구역 인구는 870만명으로 전국 지방법원 가운데 가장 많다. 또 수원지법의 도산사건 접수건수는 기업과 개인 사건 모두 2만 7000건으로 전국 법원 중 두 번째다.

수원에 지역구를 둔 김승원 의원은 “경기 침체로 벼랑 끝에 내몰리는 채무자가 늘고 있는 만큼 도산사건 접수건수가 서울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원특례시에 국내 최초의 지역 회생법원을 설치해 채무자에 대한 신속한 재원이 이뤄지게 하겠다는 취지”라고 밝혔다. 

기업 구조조정 어떤 변화 오나?..."전문 법관제 도입해야"

도산 법조계의 전망은 엇갈리고 있다. 입법 취지와 같이 기업이 어느 지역에 있더라도 전체적으로 균일한 구조조정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크다. 

반면, 전문 법원의 설치가 곧 사건 처리의 전문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서울회생법원 한 관계자는 “광역시에 회생법원이 설치되더라도 서울회생법원의 신청 건수가 줄어든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법원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서울회생법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외국에 비해 전문법원치고는 법관의 임기가 지나치게 짧다. 서울회생법원 법관의 임기는 3년이다. 파산법원에서 14년을 재직하는 미국과는 비교가 된다. 

도산 법조계에서도 담당 법관이 회생절차를 익힐 때 즈음이면 인사이동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에 문제를 제기해 왔다. 담당 판사가 바뀔 때마다 구조조정 재판도 혼선을 빚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회생법원의 설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에 초점을 맞춰야 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 '전문법관제'가 그것이다.

회생법원의 전문법관제 도입은 서울회생법원이 생기기 전부터 도입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대법원 산하 회생·파산위원회(위원장 오수근)은 지난 2014년부터 전문법관제 도입을 대법원에 건의했다. 위원회는 “도산전문번관제 제도가 도입되면 법관이 3년 이상 기업 구조조정 업무에 전담할 수 있기 때문에 법관 전문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건의 취지를 설명했다. 

파산 변호사들은 전국적으로 회생법원이 설치되더라도 통일적 기준이 마련되지 않으면 소용없다고 지적했다. 기업 구조조정 재판이 지역마다 보수적으로 운용된다면 결국 기업 구조조정 사건이 서울에 몰릴 수 있다는 염려가 담겨있다. 

아예 모든 기업 구조조정을 서울회생법원에서 전담해야 한다는 견해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 안창현 공보이사(법무법인 대율)는 “광역시마다 회생전문법원 설치가 기업 구조조정 절차에 통일적 실무를 정립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서도 “각 지역 법원이 실무를 통일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안 이사는 “오히려 전문법관제를 도입하면서 서울회생법원에 전국의 기업 구조조정을 전담하게 하는 집중관할 제도의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주민 의원의 법률 개정안에는 주소지에 관계없이 서울회생법원에 회생 또는 파산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집중관할제가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