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영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이 18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새출발기금 관련 금융권 의견수렴 및 소통을 위한 설명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권대영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이 18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새출발기금 관련 금융권 의견수렴 및 소통을 위한 설명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오는 10월부터 적용될 새정부의 첫 가계부채 대책이 시행 전부터 논란이다.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는가 하면 도덕적 해이도 문제 삼고 있다. 그럼에도 코로나19로 어려워진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빚은 조정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이들이 일부러 빚을 졌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신용이 떨어지고 빚 독촉을 당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이번 대책은 ‘새출발기금’을 설립해 90일 이상 연체한 개인사업자와 소상공인에게 채무 원금의 최대 90% 채무를 조정해 주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여기서 채무는 보유한 재산가치를 뺀 나머지다.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를 돕겠다는 취지다.

구조는 이렇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새출발기금’을 만든다. 새출발기금은 금융회사의 채권을 사와 채권자가 된 다음 그 금융회사에 빚이 있었던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채무를 조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디서 본 듯한 구조다. 역대 정부가 모두 해 봤던 채무조정 정책이다. 대상만 달라졌을 뿐. 그 정책들은 공표됐을 때 취지와는 달리 이미 빚이 바랬다.

박근혜 정부의 배드뱅크인 국민행복기금은 채무자의 빚을 최대 50%까지 탕감해줬다. 나머지 50%는 채무자가 분할로 상환했다.

행복기금은 금융사로부터 액면가의 3.7%가격으로 채권을 사 왔다. 4%도 안되는 가격으로 사 와, 채무자에게 원금의 50%를 탕감하고 나머지 50%는 회수를 했다. 이는 “기금에 배만 불렸다”는 비판을 불러왔다. 다른 배드뱅크도 마찬가지다. 운영주체는 캠코지만, 채권의 관리는 채권추심을 전문으로 하는 신용정보회사에 맡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익이 생기면서 이들 제도는 채무조정 보다는 채권추심으로 방향이 틀어졌다. 채무조정 속 채권추심은 현재 진행형이다. 새정부의 정책이 그 빚바랜 정책을 다시 답습하는 건 아닌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당장 9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콜센터도 시작부터 장애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채무조정을 훈련받지 않은 계약직 직원들이 대거 포진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2018년 장기소액채무 탕감 정책 때도 그랬다.

신용회복위원회 전경. 사진=이코노믹리뷰DB
신용회복위원회 전경. 사진=이코노믹리뷰DB

채무조정 왜 이원화...“신복위로 집중시켜야”

새출발기금 가운데 순채무를 기준으로 빚 조정을 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새 정책은 재산의 종류나 용도를 따지지 않고 자산으로 취급, 빚 조정이 어렵게 된다는 한계가 있다.

실질심사를 한다는 정부 발표는 신뢰하기 어렵다. 누가 어떻게 무슨 기준을 자산을 평가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채권회수를 위해 자의적 판단이 들어갈 여지가 있다.

같은 조건이지만 개인회생이나 워크아웃을 할 때와 결론이 달라져 또 다른 형평성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이쯤에서 제기되는 의문은 ‘왜 전문적이고 인프라가 갖춰진 신용회복위원회를 놔두고 굳이 새출발기금을 만들어 채무조정을 하느냐’이다. 30조원의 재원이 낭비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도 그러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신복위는 협약된 채권회사로부터 채권액의 50%가 넘는 채권자의 동의를 받아야 채무탕감이 가능하다.  신복위가 동의받지 못하는 채권에 대해서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빚 독촉에 노출된다. 연체위기의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보호되지 않는 사각지대가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영업자는 그렇다 치고 소상공인 법인은 신복위가 채무조정을 할 수 없다는 점도 그 이유 중 하나다.

해법이 없었던 것일까. 신복위에서 부동의 사례가 생기는 문제는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는 게 금융업계의 시각이다.

개인 신용업무를 담당하는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신복위가 부동의 받은 채권이 있으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보호할 수 없다는 논리인데, 그 채권을 캠코가 매입해서 채무조정 시 신복위에 동의하면 된다”라고 설명했다.

법인의 채무조정 제도는 정부가 신복위에 새 제도를 만들면 될 일이다. 신복위도 이제 개인채무 조정에서 기업 채무조정의 역할을 수행할 때가 왔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이미 민간단체가 기업의 채무조정의 중재역활을 해왔다. 게다가 신복위는 민간기구도 아닌 법정기구다.

회생법조계 일각에서는 매번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것보다 법원과 연계하는 채무조정이 도입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개인회생과 신복위의 개인워크아웃을 하이브리드 형식으로 결합하면 된다는 의견인데, 이미 기업의 회생절차에서도 자율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시행되고 있다.

연체를 기다릴 것 없이 연체우려가 있다면 개인회생을 신청한 뒤 사안에 따라 신용회복위원회에서 채무조정하는 제도가 그것이다.

안창현 법무법인 대율 대표변호사는 “개인회생 절차에는 법원의 금지명령 결정이 있어서 빚 독촉에 자유로워 질 수 있다. 사안에 따라 개인회생 신청 후 신복위의 개인워크아웃으로 채무조정을 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면서도 “현재 이와 같은 방식으로 개인회생을 신청하면 신청남용으로 기각될 수 있다. 법적 근거 또는 정부와 법원간에 협약 등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