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륙을 통일한 진시황의 망상으로 수 백만명의 사람들이 만리장성으로, 혹은 아방궁 건설현장으로 끌려가던 격동의 시기. 변두리 마을 패현에도 죄수들을 건설현장으로 보내라는 동원령이 떨어졌다. 현장에 조금만 늦어도 몰살, 무사히 도착해도 가혹한 노역에 시달리다 태반이 죽는 절망의 여정이었다.

이 위험한 임무를 맡게 된 유방이라는 사내는 자신의 고향 후배들이나 다름이 없는 패현의 죄수들을 이끌고 택중이라는 곳에 이른다.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없었던 그가 술이나 퍼마시며 느릿느릿 가다가 그만 장마에 발이 묶였기 때문이다. 자. 이미 도착하기로 한 시일은 지났다. 어떻게 해야 할까. 유방의 선택은 간단했다. "다 도망가라. 나도 도망갈 것이다"

결국 대부분이 도망가고 10여명의 남자들이 유방의 곁에 남았다. 그러자 유방은 별 고민없이 이들을 이끌고 망탕산으로 올라가 도적이 되기로 결정한다. 그것도 크게 한 탕하는 대도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술만 퍼먹고 탱자탱자 노는 도적이 된다.

그 즈음 유방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퍼진다. 

사연은 이렇다. 택중으로 가던 유방이 길을 잃어 숲속을 헤매다가 길을 헤매던 중 커다란 뱀을 만났는데 단숨에 칼을 휘둘러 죽여버렸다고 한다. 그리고는 스스럼없이 길을 가다가 울고있는 노파를 만났다고 한다. 유방이 연유를 묻자 노파는 "내 아이는 백제(白帝)의 아들인데 뱀으로 변해 길에 누워 있다가 방금 적제(赤帝)의 아들에게 죽었소"라고 말한 후 연기처럼 사라졌다고.

이를 본 주변 사람들이 "과연 유방은 하늘이 낸 사람이다"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고조참백사(高祖斬白蛇). 천하를 붉은색으로 통일한 한제국 고조 유방의 전설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사실일까? 많은 역사가들은 이면이 있을 것으로 본다. 특히 고조참백사라는 고사가 원래는 취참백사(醉斬白蛇)로 불렸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유방은 술에 취해 잠을 자다가 커다란 뱀을 한 마리 죽였고, 그 사실이 이리저리 윤색되어 별안간 유방의 범상치않음을 시사하는 장치가 되었을 것일 가능성이 높다. 많은 역사가들은 아마도 유방의 아내이자 중국 대륙을 호령했던 여걸인 여치가 지어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음 질문'이다. 한고조 유방의 성공이 과연 고조참백사 하나로만 가능했던 것일까?

아니다. 명재상 소하, 강력한 장수 번쾌의 무력이 큰 위력을 자랑했으나 따지고 보면 그 모든 인재를 품어낼 수 있었던 유방의 리더십이 고조참백사를 통해 깨어난 것이 가장 주효했다. 주변의 웅성거림에 본인 스스로가 어느새 고조참백사의 힘을 믿어버렸기 때문이다. 뱀을 베어버린 후 그가 거병을 결심하고,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 단적인 증거다.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공한 사람 중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나아가 미중 패권전쟁과 같은 엄혹한 국제정치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한편 강력한 인플레이션도 시작됐다. 난세다. 덕분에 최근 만난 경영인들도 대부분 의기소침하다. 반짝반짝 빛나던 눈은 어두워졌고 미간은 일그러진다. 삶의 무게다.

그들에게 고조참백사의 고사를 들려주고 싶다. 조심스럽게 손을 잡고 격려하고 싶다. 지금까지 잘 해오지 않았나. 스스로를 믿으면, 믿는 대로 이뤄질 것이다. 당신은 대단한 경영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