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의 단가 상승세에 대응하기 위해 가격을 올려야 하지만 정부와 소비자등의 요구로 가격 인하 여부를 고심해야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18일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최근 연식변경모델로 새롭게 출시된 전기차들의 가격이 줄줄이 인상됐다.

국내 주요 순수전기차 모델의 가격 변동 추이. 출처=각 사
국내 주요 순수전기차 모델의 가격 변동 추이. 출처=각 사

주요 전기차별 인상폭은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5 310만~430만원, 쉐보레 볼트EUV 300만원, 푸조 e-208 660만~760만원 등에 달한다. 이중 일부 모델은 상품성을 개선해 가격 인상의 근거를 마련했다. 현대차는 아이오닉 5의 최장 주행거리를 늘리고 편의사양을 추가했다. 이에 비해 e-208의 경우 주행거리를 10% 가량 늘린 것 외에 같은 사양을 갖췄고 볼트EUV는 이전 연식 모델과 동일한 사양 구성을 보인다.

업체별 전기차의 연식변경모델은 그동안 출시돼온 신차들의 특징을 고려할 때 큰 가격 인상폭을 보인다. 업체들은 통상 연식변경모델을 출시할 때 이전 모델에 적용된 사양을 트림별로 재구성한 뒤 수십만원 범위에서 가격을 새롭게 책정하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경우 이전 모델을 구매한 고객의 반발을 고려해 최신 아이오닉 5의 상품성을 제한적으로 개선할 수밖에 없다.

이를 고려할 때 가격 인상폭을 결정한 요인은 발전한 상품성이 아니라 최근 늘어난 차량 생산단가와 물류비 등 비용 때문인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고전압 배터리 소재나 강판 등 전기차 구성요소들의 단가가 일제히 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소재 중 하나인 리튬의 ㎏당 가격은 지난해 2분기 81.62위안화에서 1년만인 지난 분기 5.4배나 상승한 443.14위안화에 달했다.

전기차 가격이 인상되는 추세를 보임에 따라 전기차를 구매할 의향이 있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구매가를 중시하는 경향이 더욱 강화하고 있다. 컨슈머인사이트가 지난 3~6월 기간 매월 설문한 결과 ‘국산차보다 50% 이상 저렴할 경우 중국산 전기차를 구매할지 고려하겠다’고 응답한 비율이 60% 안팎 수준을 보였다.

해당 응답자들은 다양한 전기차 구매요인 중 가격에 최고 우선순위를 둔 것으로 분석된다. 설문이 이뤄진 지난 상반기 현재 중국산 전기차의 품질이나 고객서비스 수준 등을 가늠할 근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쉐보레 볼트EUV. 2022년식 모델에 비해 2023년식 모델의 가격이 300만원 인상됐다. 출처=한국지엠
쉐보레 볼트EUV. 2022년식 모델에 비해 2023년식 모델의 가격이 300만원 인상됐다. 출처=한국지엠

국가별 전기차 보급 정책, 제조사에 가격인하 압박

정부가 소비자에게 지급할 구매보조금을 산정할 전기차 가격 기준을 내년까지 2년 연속 유지한 점은 제조사 가격정책에 이목을 집중시킬 요인이다. 환경부는 올해 보조금을 차등지급할 전기차 ‘기본가격’의 범위를 내년까지 동일하게 적용할 계획이다. 제조사가 전기차의 주요 구매요인인 보조금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기 위해 신차 가격을 낮춰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가 기업에게 전기차 가격을 인하하도록 정책적으로 압박한 사례는 최근 미국에서도 나왔다. 지난 16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인플레이션 완화법(Inflation Reduction Act)에는 5만5000달러 이상 승용차나 8만달러 이상 SUV·픽업트럭 등 가격대별 전기차에는 세액공제 혜택이 적용되지 않는 내용이 담겼다.

고소득자에게 돌아갈 세제혜택을 중하위 소득자에게 지급해 전기차 보급 격차를 해소하려는 취지다. 이는 결과적으로 현지 기업들에게 전기차 가격을 낮추도록 유인하는데도 기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전략본부는 “전기차 업체들 대부분 세액 공제 혜택을 받기 위해 5만5000달러~8만달러 가격대의 모델을 생산하는데 치중할 것”이라며 “고급차 업체들은 원가 절감을 적극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분석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전기차 가격 하락의 계기가 기술 발전 양상에 따라 자연스럽게 찾아올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전기차 가격을 크게 좌우하는 배터리의 성능이 개선됨에 따라 원자재 물량이나 구입 가격에 대한 부담에서 일부 해방될 전망이다. 이 경우 단기적으로는 완성차 업체가 전기차의 수익성과 고객 편익 양쪽을 저울질하는 것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S&P글로벌 플랫 애널리틱스의 저탄소 운송분야 연구원인 데이비드 카파티(David Capati)는 “리튬과 코발트 가격이 올해 정점에 도달한 후 충분한 공급이 이루어지고 수요를 충족하기에 충분한 운영 완화로 인해 가격이 하락하고 안정화될 것”이라며 “또한 리튬 및 기타 핵심 배터리 금속의 필요성은 배터리 효율이 증가함에 따라 줄어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