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비즈니스를 바꾸다> 정희선 지음, 미래의창 펴냄.

2020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세상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변화는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일어났다. 특히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본격화되었다.

저자는 이런 변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한다. 2020년, 공간(空間)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공간 혁명’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상의 많은 행위가 ‘가상 공간’에서 이루어지게 됐다. 원격근무라는 형태로 ‘업무 공간’도 변화했다. ‘주거 공간’과 ‘상업 공간’도 탈바꿈하는 중이다.

공간이 변하면 우리의 라이프스타일과 행동반경에도 변화가 따른다. 공간 변화는 소비의 흐름을 바꾸고, 산업 지형의 변혁과 부의 재편을 가져온다.

저자는 앞으로 공간 변화에 적응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일하는 공간이 분산되면서 인터넷상의 가상 오피스 혹은 원격근무 협업 툴을 제공하는 IT 기업들은 사상 최고의 실적을 달성했다. 반면, 항공 및 여행업, 외식업, 백화점 등 오프라인 유통은 실적 감소에 시달리고 있다.

공간이 만드는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지금, 다양한 공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과 변화를 꼼꼼하게 관찰하여 트렌드를 파악하라고 조언한다.

책에는 업무-주거-상업 공간에서 벌어지는 공간 혁명이 소개되어 있고, 공간 트렌드를 선도하는 120여 개 기업의 혁신적인 사례가 나온다.

▲일본 도쿄 시부야역 인근에 ‘리렌트 레지던스 시부야’라는 맨션이 있다. 가구와 가전이 완비된 11평(37평방미터) 크기 월세가 19만9000엔(약 200만 원)이다. 이 곳은 세입자가 출장이나 여행으로 방을 비울 경우 월세를 깎아준다.

세입자가 외박하기 3일 전에 전용 앱을 통해 신청할 경우 맨션측에서 단기로 머물 고객을 찾아 그 방을 빌려주고, 그 수익의 일부(1박당 6000엔)를 월세에서 할인해준다. 에어비앤비 방식을 차용한 것이다.

▲2020년 기준 전 세계에서 여섯 가국 중 한 가구는 1인 가구로 나타났다. 2021년 한국의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40%에 육박했다. 1인 가구의 증가와 집값 상승이 맞물려 등장한 글로벌 트렌드가 협소 주택의 확산이다.

협소 주택에서도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협소 주택 ‘범블비 스페이스’는 천장을 활용한다. 천장에 침대와 각종 수납장을 배치해놓고 필요할 때마다 내려 사용한다. 공간을 극대화한 것이다.

▲일본 미쓰이 부동산은 65개의 대형 상업 시설과 아웃렛 등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 확산 후 매장 방문객이 감소하자 2021년부터 이동형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시폰 케이크 판매점, 마사지, 중고 명품 매입, 신발 수선 서비스 등 40개 매장을 트럭에 설치하여 도쿄 아파트 단지들을 돌고 있다.

이동 트럭에서는 의외로 고가의 상품도 잘 팔린다고 한다. 미쓰이 부동산은 트럭이 위치한 장소, 시간대, 방문 고객수, 매출 등을 분석하여 제품별로 최적의 장소와 시간을 찾아내고 있다. 앞으로는 이동형 매장을 임대해주는 비즈니스를 추가할 계획이다.

일본 전역에 324개의 안경 체인점을 갖고 있는 ‘메가네 슈퍼’는 고객이 급감하자 트럭을 개조하여 시력 검사가 가능한 검안기와 렌즈를 깎는 가공기를 갖춘 이동형 안경점을 만들었다.

루이비통은 2020년 후반부터 2021년 초반에 걸쳐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과 뉴욕 등에서 이동형 트레일러를 운영한 바 있다. 100% 예약제로 운영했고, 고객이 신청하면 의류 신발 가방 등 고객 취향에 따른 상품을 모아 고객을 방문하는 방식이었다.

▲최근 오프라인 공간에 대한 니즈가 있는 브랜드에 공간을 제공하고 운영을 대행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확산되고 있다. 소위 ‘RaaS(Retail as a Service)’라고 불리는 서비스형 리테일은 소매 운영에 필요한 매장, 직원, 인프라를 패키지화해 제공한다.

RaaS를 이용하면 저렴한 비용으로 이른 시일 안에 오프라인 매장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최근 1인 기업과 중소기업 및 D2C 스타트업에서는 RaaS를 주목하고 있다.

▲아마존은 2022년 5월 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패션 매장인 ‘아마존 스타일’을 전격 오픈했다. 아마존 스타일은 여느 패션 매장과 다르게 품목당 하나의 샘플만 진열하고 있다. 고객은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발견하면 QR 코드로 스캔한 후 입어 보고 싶은 옷의 사이즈와 색상을 선택해 ‘피팅 룸으로 보내기’ 버튼을 클릭한다.

편하게 모든 옷을 둘러보고 피팅 룸에 들어가면 입어 보고 싶은 옷이 미리 준비돼 있다. 그뿐만 아니라 패션 큐레이터의 의견이나 고객 피드백 및 선호도 등을 고려해 AI가 스타일링을 제안해주기도 한다. 마치 나만을 위한 옷장인 퍼스널 쇼퍼 룸을 연상케 한다.

▲일본은 생활권의 기준을 30만 명에서 10만 명으로 조정했다. 디지털 사회로 전환되면서 병원 진료, 쇼핑, 행정 업무 등 생활의 많은 부분이 온라인으로 가능해지면, 생활권 내에 모든 도시 기능이 갖춰지지 않아도 큰 불편 없이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생활권 형성에 필요한 인구수가 줄어들게 되면, 그만큼 여러 지역으로 분산해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내가 사는 곳 반경 15분 이내를 중심으로 생활이 이루어지면 자연스럽게 로컬 비즈니스가 부상하게 된다. 로컬을 기반으로 한 상업 시설은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이 있다.

▲LG전자는 CES 2022에서 자율 주행차 ‘LG 옴니팟(LG Omnipod)’을 선보였다. 이 것은 차량을 집이 확장된 공간으로 해석한 결과물이었다. 옴니팟은 필요에 따라 업무용 사무실이 되며, 휴가지에서는 캠핑카로도 쓰일 수 있다. 영화 감상 같은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사용자 니즈에 따라 자동차 내부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어 누구나 쉽게 이동형 매장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MZ세대들은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이 아니라 ‘일과 삶이 결합된 방식(워라블)’으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일과 여가가 블렌딩된 삶에서는 공간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진다. 업무 공간은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함과 동시에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곳이 돼야 한다.

▲전 세계의 많은 기업은 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직원들에게 업무 장소를 선택할 자유를 부여하는 하이브리드 근무 방식으로 전환할 것이라 밝혔다. 일주일에 2~3번만 출근하면 나머지 시간은 근무 장소에 제한을 두지 않는 회사들도 많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