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LX세미콘
출처= LX세미콘

1%대 글로벌 시장점유율에 머물러 있는 한국의 팹리스(fabless, 반도체 설계 전문) 산업은 반도체 업계의 취약점이다. 이에 대한 해결 방안으로 국내 반도체 업계의 전문가들은 중소기업의 연구 인프라에 대한 대기업들의 적극적 투자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메모리점유율 71%, 팹리스 점유율 ‘1%’

팹리스는 공장의 라인을 통해 반도체 제품을 직접 생산(fabrication)하지 않는(less) 대신 반도체 설계와 기술 개발에 역량을 집중시키는 사업 혹은 그러한 기업을 의미한다. 반도체 기술의 고도화가 이뤄지지 않았던 과거의 경우,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경쟁력은 주로 생산의 역량으로 평가됐다. 그렇기에 반도체 업계 내에서 팹리스의 중요도는 상대적으로 등한시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전자-IT기술의 비약적 발전이 시작되면서 반도체 설계에도 고도화된 기술력이 요구됐다. 이에 따라 미국의 엔비디아·애플·퀄컴, 대만의 미디어텍 등을 필두로 한 고도의 설계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의 반도체 업계 내 입지는 점점 확대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글로벌 팹리스 기업의 시장규모는 2019년 600억달러(약 78조5700억원), 2020년 680억달러(약 89조3079억원), 2021년 738억달러(약 102조5338억원)로 매년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현재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상황을 감안할 때 올해 팹리스 시장규모는 805억달러(약 105조4147억원)로 예측되고 있으며, 2025년 이후에는 1000억달러(약 131조원)를 돌파할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글로벌 집적회로(IC) 섹터 각 분야의 국가별 세계시장 점유율. 빨간색 그래프가 팹리스 시장 점유율. 출처= IC인사이츠
글로벌 집적회로(IC) 섹터 각 분야의 국가별 세계시장 점유율. 빨간색 그래프가 팹리스 시장 점유율. 출처= IC인사이츠

이러한 성장 전망에도 글로벌 반도체 강국의 반열에 오른 우리나라에서 팹리스는 마치 ‘미지의 영역’처럼 여겨지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2개 업체가 차지하는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시장점유율은 71.1%(삼성전자 41.7%, SK하이닉스 29.4%)에 이른다. 그러나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 전체의 글로벌 팹리스 시장점유율은 약 1%(IC인사이츠 조사, 2021년 기준)에 머무르고 있다. 국내 팹리스 업계의 입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다. 

희망이 보이는 긍정적 변화들 

최근 반도체 업계의 다양한 주체들은 국내 팹리스 산업의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실행에 옮기고 있다. 이는 매우 긍정적인 변화로 여겨진다.   

우선 팹리스 산업의 인재 확충을 위해 기업-지자체-교육기관들의 연대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서울대학교는 지난해 10월 시스템반도체 산업 발전을 도모하는 ‘시스템반도체산업진흥센터’를 학내에 설립했다. 센터의 주요 목적 중 하나는 국내 팹리스 역량강화 지원이다. 서울대학교는 센터를 통해 팹리스 분야 인재양성 및 멘토링, 정책연구 등 다양한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가천대학교와 성남시는 지난 6월 24일 성남시 팹리스 전문인력 양성 사업의 일환으로 ‘취업JOB! GO 매칭데이’를 개최했다.  취업 준비생들과 전문가들, 기업들이 참여한 본 행사에서는 팹리스 전문 인력 양성 과정과 해당 분야의 취업 정보들이 공유됐다.   

출처= 신한금융투자
출처= 신한금융투자

여기에 국내 팹리스 기업들의 성장세가 두드러지면서 산업에 ‘여유’가 생긴 것도 플러스 요소로 여겨지고 있다.

국내 팹리스 1위 기업 LX세미콘은 올해 2분기 매출 5992억원, 영업이익 1096억원의 실적을 기록했다. 분기 기준으로 LX세미콘이 기록한 역대 2분기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이었다. 1분기 결산을 반영한 LX세미콘의 상반기 실적은 매출 1조1842억원, 영업이익 2375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각각 38.5%, 53.4% 증가한 수치를 기록했다. 

주요 사업 영역에 팹리스가 포함된 DB하이텍은 올해 2분기 매출 4357억원, 영업이익 2132억원의 실적을 기록하며 지난 6분기 연속으로 역대 최대 실적 기록을 고쳐 썼다. 상반기 종합 실적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각각 60.3%, 178% 증가한 매출 8308억원, 영업이익 3947억원을 기록했다.

“대기업-중소기업 연대 통한 투자활성화 필요”

전문가들은 장기적 관점에서 국내 팹리스 시장의 성장을 위한 방안으로 중소기업의 팹리스 연구개발  인프라에 대한 대기업들의 적극적 투자를 제안한다.

지난 5월 13일 열린 좌담회 ‘유니콘 팹리스 기업 육성을 위하여’에서 반도체공학회 부회장 유재희 홍익대학교 교수는 “대기업들이 팹리스 중소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관련 IP도 사는 등의 일이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한다”라면서 “그래야 국내 팹리스들도 각자의 연구개발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동력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강성철 선인연구원은 “대기업의 생산인프라가 중심인 국내 반도체 산업의 구조에서 팹리스는 상대적으로 외면을 받아왔다”라면서 “반도체 고도화에 따른 팹리스의 중요성도 강조되는 만큼, 반도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활발한 연대를 통한 경쟁력 강화 방안들이 빠르게 실행에 옮겨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