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오염은 전 인류가 풀어야 할 숙제다. 그리도 다행히 그 숙제를 풀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입체적 접근을 시도하며 벌어진다. 지금의 환경오염, 이상기후 문제는 단편적인 접근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고차 방정식에 가깝기 때문이다. 

8일 내린 폭우로 도시가 마비됐다. 출처=연합뉴스
8일 내린 폭우로 도시가 마비됐다. 출처=연합뉴스

미친 폭우
계절은 입추를 넘겼으나 장마가 끝나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 8일에는 서울에 무려 80년 만의 폭우가 찾아와 도시가 사실상 마비되는 일이 벌어졌다.

곳곳에서 침수와 지반붕괴, 산사태가 벌어졌다. 서울 강남역에는 하수 역류 현상이 벌어졌고 양재역 일대는 폭우로 차오른 물로 난장판이 됐다. 영등포역과 동작역, 이수역 등이 침수됐으며 서울 주요 도로도 물에 잠겼다. 중랑천은 범람했고 인천 지역도 심각한 폭우로 넉다운 상태가 됐다.

일부 퇴근길 직장인들은 하염없이 내리는 폭우에 집으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인근 숙소에 머물기도 했다. 도로 곳곳에서 교통사고가 벌어지고 있으며 SNS에서는 폭우로 도시가 마비된 사진들과 경험담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8일 내린 폭우로 길이 침수됐다. 출처=연합뉴스
8일 내린 폭우로 길이 침수됐다. 출처=연합뉴스

끝나지 않는 장마의 행간은?
시민들은 7월 한 달간 긴 장마를 보내고 한 숨 돌렸으나 8월 재차 찾아온 폭우에 망연자실하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기상청의 설명에 따르면 북태평양 고기압과 대륙 기압이 충돌하며 장마전선이 다시 생성됐고, 그 장마전선이 서울 및 중부지방에 머물렀기 때문에 폭우가 내리고 있다고 한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덥고 습한 공기를 한반도에 밀어넣고, 티베트 고기압이 또 남하하며 이른바 폭우 구름이 높게 형성됐다는 설명이다.

자연스러운 현상일까? 전문가들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기상청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기후센터는 지난 14일 국내 유역별 극한 강수량의 미래변화 분석결과를 공개하며 권역별 극한 강수량의 100년 재현빈도를 데이터로 분석했다. 지금과 같은 탄소배출이 이뤄질 것을 가정해 시나리오별로 예상 강수량을 계산해 봤다.

결과는 놀라웠다. 현재와 유사하거나 약간 높은 탄소배출이 이뤄지는 고탄소 배출 시나리오를 적용한 결과 100년 재현빈도 극한 강수량이 21세기 전반기(2021~2040년)에는 2000~2019년보다 약 29% 높을 것이라 예상됐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지금처럼 탄소 배출이 이뤄진다면 극한 강수량의 경우 현재 일 누적 강수량 기준 187.1~318.4㎜에서 21세기 전반 기준 21.4~174.3㎜, 중반기에 56~334.8㎜, 후반기에는 무려 70.8~311.8㎜로 증가한다는 설명이다. 

8일과 9일 서울 및 중부지방에 떨어진 폭우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심각한 탄소 배출로 인한 이상기후가 말 그대로 일상적 재난의 수준으로 올라서는 순간이다.

이상기후는 비단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현재 스페인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은 말 그대로 타들어가고 있다. 40도를 넘기는 극심한 폭염이 기승을 부리며 곳곳에서 식수를 구하지 못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특히 유럽의 채소밭이라 불리는 스페인의 폭염은 식량위기까지 부채질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밀 수급에 제동이 걸린 상태에서 이제는 이상기후까지 인류의 굶주림을 촉발시키는 트리거로 활동하는 셈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상기후의 대명사 중 하나인 지구 온난화 문제도 심각해지며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피지는 조만간 수몰될 것으로 예상된다. 스리랑카에는 폭우가, 미국에서는 산불이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중이다. 쿠웨이트는 한 때 기온이 50도로 오르기도 했다.

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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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성찰, 그러나
이상기후 현상이 심각해지는 가운데 인류도 성찰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에 나서는 한편 전 지구적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을 짜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 상원은 지난 7일(현지시간) 기후변화 대응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nflation Reduction Act)’을 전격 통과시켰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40% 감축하기 위해 3690억달러(약 480조원)를 투자한다는 것이 골자다. 바이든 대통령의 역점 추진 법안인 ‘더 나은 재건 법안’(BBB)을 일부 수정한 법안이며 말 그대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총력전으로 해석된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경고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경고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문제는 성찰의 의지를 상회하는 파탄의 무게다.

당장 미 상원이 통과시킨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도 미 공화당의 지지를 얻으려 멕시코 만과 알래스카 해안가의 석유가스 임대 사업을 재개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환경단체들로부터 "반쪽 법안"이라는 비판을 받는 실정이다.

심각해지는 환경오염 문제에 인류가 지나치게 '나이브'한 대응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제6차 평가보고서(AR6)를 공개하며 지구 평균기온이 2021년부터 2040년까지 기간동안 1.5도를 넘길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호주 국립기후복원연구소 연구팀의 보고에 따르면 만약 지구의 평균기온이 1.5도 올라갈 경우 생물종의 20%가 순식간에 멸종할 수 있다.

미국 프리스턴대 연구팀은 지구 평균기온이 1.5도 올라갈 경우 세계 인구의 절반이 살고있는 적도 인근 지방의 인간 생존 한계온도가 치솟아 생명을 위협받을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현재 적도 인근에는 전세계 인구의 40%가 살고있다.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200개 나라가 참여한 가운데 21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1)이 열려 파리 기후협약을 체결한 배경이다. 회의에 참여한 당사국들은 2100년까지 지구 평균기온을 기존 목표던 2도보다 낮은 수준으로 유지해 1.5도를 새로운 목표로 잡았다.

문제는 이 목표치에 경고등이 들어오며 시작됐다. IPCC 6차 보고서에 따르면 1.5도 상승의 마지노선인 2100년에서 무려 60년이 단축된 2040년 이내에 1.5도 상승이 예고되고 있다. 2018년 2030년에서 2052년 사이 1.5도 상승이라는 수정된 목표에도 훨씬 미달되는 충격적인 결과다. 

이 상태로 계속 이어지면 인류 멸종까지 갈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로 BBC 등에 따르면 영국 케임브리지대 등으로 구성된 다국적 연구진들은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기후 엔드게임: 파국적 기후변화 시나리오 탐구’ 제하 보고서를 발표하며 "인류 멸종과 관련된 극한의 가능성을 전제하고 관련 논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산불진화 현장. 출처=연합뉴스
미국의 산불진화 현장. 출처=연합뉴스

복병이 나타났다
이상기온, 기후변화는 글로벌 거시경제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킨다. 그 자체로 재난재해로 분류되며 예전부터 작동하던 다양한 산업 인프라가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 내린 폭우로 교통 기반 인프라가 파손되어 상당한 수준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고, 스페인을 뜨겁게 달구는 폭염이 식량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단적인 사례다. 당장의 생존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진지하게 따져봐야 할 문제다.

다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는 법이다.

전 지구적 이상기후 현상을 막으려 각국 정부가 혼신의 힘을 다하는 한편 기업들도 RE100 정책을 공격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그 행간에는 이상기후 현상에 대응하기 위한 지구촌 연대의 선봉에 선 선진국들의 딜레마가 선명하다.

현재 공격적인 탄소중립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국가는 미국과 유럽연합이다. 이들은 오랫동안 글로벌 경제를 좌지우지했으며 선진적인 경제 패러다임을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여기서 확보한 기초체력을 바탕으로 탄소중립과 같은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탄탄한 기초체력을 가지고 있는 상태다.

개발도상국들은 사정이 다르다. 미국과 유럽 등 현재의 선진국들이 오랜기간 산업화 정국을 주도, 막대한 탄소를 펑펑 뱉어내면서 기후악당으로 살아오다 이제야 정신을 차렸다지만 개발도상국들은 이제 막 제조업 기반의 산업화 터널을 지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들은 선진국처럼 당장 공격적인 기후변화 대응 로드맵을 짜기에는 시간도, 돈도, 경제 인프라도 준비되지 않았다. 2차 산업혁명 이후 오랫동안 기후악당으로 살다 지금에 이르러 탄소제로 전략을 유연하게 추진한다는 미국 및 유럽 선진국들의 방침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 보기에 따라 '산업혁명 후 지구 환경을 망치며 부를 축적한 선진국들이 지금에 이르러 자신들의 환경오염 책임을 이제 막 발전하기 시작한 개발도상국에 미루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유럽연합의 고강도 철강세 부과를 두고 일각에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는 이유다.

RE100도 마찬가지다. 그 자체로는 탄소중립 로드맵의 핵심이지만, 이면에는 개발도상국의 상황을 외면한 반쪽 대책이라는 비판이 비등하기 때문이다.

그린플레이션도 따져봐야 할 문제다. 친환경을 뜻하는 그린(green)과 물가상승(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친 그린플레이션은 친환경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치뤄야 할 일종의 비용이다. 그리고 그 비용은 인플레이션, 나아가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패권전쟁 등 현실의 지정학적 위기로 더욱 높아지는 중이다. 

뉴욕타임스(NYT)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만은 지난해 10월 칼럼을 통해 "올 겨울 시민들이 난방하기에도 어려울 상황이 올 것 같다"면서 "이런 흐름이 기후 및 녹색 운동에 대한 반발로 이어질까 두렵다"고 우려한 바 있다. 

그의 발언은 그린플레이션의 우려가 있더라도 이상기후 등에 대비하려는 전 지구적인 움직임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 고통받을, 특히 친환경 에너지 인프라를 갖추기도 어려운 개발 도상국들에게는 무책임한 말일 수 있다. 

영국의 해상 풍력발전. 출처=연합뉴스
영국의 해상 풍력발전. 출처=연합뉴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여정"
환경오염에 따른 이상기온, 기후변화는 실제하는 위협이다. 반드시 해결해야 할 인류의 숙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글로벌 거시경제의 흐름과 더불어 맥락을 타고 흐르는 '불편한 진실'도 넘실거린다. 

선진국의 원죄와 개발도상국의 고통이 대표적이다. 우리가 유행처럼 말하는 RE100과 ESG는 최근 파시즘으로도 치닫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모든 답안은 반쪽에 불과하다.

어렵지만 확실한 대안을 찾는 길로 걸어가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무엇보다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과,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택해야 하는 솔루션을 극단적으로 확장시키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환경오염 문제를 인류의 멸절과 직접적인 연결고리로 이해하고, 글로벌 거시경제 차원의 그림자도 국제무대 차원에서 역시 최대한 확장시켜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