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한 후 4일 현재 한국에 체류하는 가운데 그 후폭풍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에 격렬하게 항의하던 중국은 우려됐던 무력도발을 감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대규모 군사훈련으로 맞불을 놓는 등 대만해협의 긴장감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는 평가다.

이런 가운데 시진핑 국가 주석의 3연임을 노리던 중국 지도부는 오히려 반사이익을 노릴 수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펠로시 의장과 차이잉원 대만 총통. 출처=연합뉴스
펠로시 의장과 차이잉원 대만 총통. 출처=연합뉴스

긴장 최고조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에 맞춰 중국 인민해방군 군용기 27대가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에 진입했다. 

직후 인민해방군은 대만 주변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에 돌입했다. 4일 12시부터 사흘간 대만을 둘러싼 형태로 설정한 6개 구역에서 실탄훈련을 시작했다는 것이 인민해방군 동부전구의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대만 동부 해역에서 재래식 미사일 사격 실험이 벌어질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사실상 대만에 대한 무력통일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현재 니컬러스 번스 주중미국대사는 초치된 상태다.

경제적 압박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 상무부는 3일부터 천연모래의 대만 수출을 금지했으며 해관총서도 대만산 과일에 대한 수입을 잠정 중지한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글로벌 1위 전기차 배터리 회사인 CATL의 북미 투자 계획도 잠정 보류됐다. 중국 기업인 CATL의 투자 계획 발표 보류는 사실상 팰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팰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당장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1일 팰로시 의장의 방문을 두고 "세계 3차 대전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 장관. 출처=연합뉴스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 장관. 출처=연합뉴스

중국, 웃는다?
팰로시 의장은 대만을 방문하며 시 주석과 중국 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자신의 방문을 두고 "대만의 민주주의를 지지하려는 확고한 약속"이라며 "전 세계가 독재와 민주주의 사이에 놓인 상태에서 미국과 2300만 대만 국민의 연대는 확고하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 기고를 통해서도 "대만의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면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집권을 강화하면서 인권과 법치에 대해 무시하고 있다"고 강경한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중국도 반격에 나섰다.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 장관은 3일 낸 성명을 통해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릴 것"이라며 "미국은 중국의 통일 대업을 방해하려는 환상을 가지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런 가운데 팰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이 중국 지도부의 리더십에 큰 타격을 줄 가능성이 있지만, 오히려 반대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시 주석이 오는 가을에 열리는 20차 당대회에서 완전한 3연임에 도전할 예정인 상태에서 팰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은 내부의 응집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기 때문이다.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샤오캉 시대의 개막이 당장 어려워진 가운데, 중국 지도부가 팰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통해 국론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는 평가다. 당장 미국의 군사력과 정면대결을 펼칠 수 없지만, 최소한의 긴장국면을 유지하며 시 주석의 3연임을 매끄럽게 풀어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최근 미국의 대외전략도 중국의 이러한 자신감에 힘을 더한다.

지난해 아프가니스탄 철수, 나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확인됐지만 미국은 최근 외국의 전장에서 최대한 발을 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의 냉랭한 관계도 따지고 보면 미국이 이란과 핵협상을 벌이면서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족 반군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고, 여기에 사우디가 실망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대만 문제에서도 미국은 비슷하게 움직일 여지가 있다. 최소한 중국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비록 팰로시 의장의 전격 방문으로 각자의 계산은 더 복잡해졌으나 최소한 중국은 대만 문제에서 미국이 전사적으로 움직이기는 어렵다고 본다. 이 역시 중국의 배팅에 힘을 실어주는 요소라는 평가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빈 살만 왕세자와 주먹악수를 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빈 살만 왕세자와 주먹악수를 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골치아픈 바이든 행정부
미 바이든 행정부는 고민이 더 깊어질 전망이다. 

현재 미 바이든 행정부는 강력한 인플레이션, 나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허덕이고 있다. 지지율은 하락하고 있고 11월 중간선거 전망도 녹록치않다.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까지 날아갔으나 증산은 커녕 체면만 구겼다. 당장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 OPEC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는 3일(현지시간) 9월 원유 증산량을 하루 10만 배럴로 결정하며 오히려 증산 속도를 늦췄다.

당분간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 고공행진을 거듭할 가능성이 높다. 카슈끄지 사건의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까지 받으면서 사우디행을 강행했던 바이든 행정부 입장에서는 속이 뒤집힐 일이다.

여기에 같은 민주당 소속인 팰로시 의장까지 대만 방문을 강행, 중국의 반발을 끌어내며 미중 패권전쟁 상황도 심각해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미중 패권전쟁이라는 또 하나의 전선이 수면 위로 부상하는 순간이다. 

인플레이션을 막겠다면서 내부의 반발을 무릅쓰고 강행했던 바이든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은 소득이 없었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미중 패권전쟁까지 커지는 것을 막으려던 바이든 대통령의 만류에도 팰로시 의장이 강행한 대만 방문은 역시나 '우려했던 일'로 결론이 났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마지막까지 팰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만류했으나 팰로시 의장은 결국 방문 강행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행정부의 스텝이 완전히 꼬이고 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