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진퇴양난에 빠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에 따른 지지율 하락을 만회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방문 및 미중 패권전쟁 속도조절 등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으나 무엇 하나 제대로 풀리는 것이 없다.

11월 중간선거에 빨간불이 들어온 가운데 트럼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첫 워싱턴 연설에 나서는 등 상황은 더욱 꼬이고 있다. 출구전략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과 만나고 있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 출처=연합뉴스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과 만나고 있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 출처=연합뉴스

유럽 조련하는 푸틴
우크라이나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며 러시아 군대가 동부 돈바스 지역을 사실상 장악한 가운데, 푸틴 러시아 대통령 특유의 '조련술'이 유럽연합을 사정없이 몰아치고 있다.

무기는 '천연가스'다.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은 25일(현지시간) “노르트스트림1 가스관의 터빈 2개 중 하나의 가동을 중단한다”고 발표하며 "앞으로 하루 공급량이 현재(6700만㎥)의 절반인 3300만㎥까지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정기 점검을 위해 유럽으로 향하는 천연가스를 수송하는 가스프롬의 밸브를 잠근 후 재가동에 들어간지 사흘만에 벌어진 일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당시부터 노드스트림1 가스관의 밸브로 유럽을 협박하던 러시아가 이제는 가스프롬의 밸브까지 손을 대며 최고수준의 압박에 나서는 셈이다.

유럽연합은 비상이다. 가스프롬을 통해 유럽으로 들어오는 천연가스량이 평상시의 20%로 줄어든 가운데 당장 가격이 폭등하며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 27개 회원국에 천연가스 사용을 내년 3월까지 8개월 동안 최대 15% 줄일 것을 요청하는 한편 러시아 의존도를 최대한 낮춰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으나 그 외에는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는 평가다.

러시아산 원유의 경우 유럽연합이 제재의 의미로 스스로 감축에 나설 여지가 있으나 천연가스는 이야기가 다르다. 유럽연합은 연말까지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33%만 수입하자는 방침이지만 대부분의 난방을 천연가스에 의존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상황이 심각하다는 말이 나온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로 "러시아는 계약상 (천연가스 공급) 의무가 있다"고 반발하고 있으나 러시아는 신경도 쓰지 않는 모양새다.

한편 천연가스 사용이 폭증하는 겨울이 다가오는 가운데 러시아는 외부 광폭행보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당장 월스트리트저널 및 이란 국영 IRNA 통신 등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이란을 방문해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과 만났다. 러시아 국영 에너지기업 가스프롬과 이란 국영석유회사는 400억달러에 달하는 천연가스 개발 및 투자 관련 협정에도 서명했다. 세계 천연가스 매장량 1위 러시아, 2위 이란이 만나 반서방 에너지 연대를 구축하는 중이다.

사우디 빈 살만 왕세자와 만난 바이든 미국 대통령. 출처=연합뉴스
사우디 빈 살만 왕세자와 만난 바이든 미국 대통령. 출처=연합뉴스

골치아픈 바이든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가 날카로운 전략으로 미국 등 서방의 속을 뒤집어놓고 있지만 바이든 미 행정부는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 자신이 한 때 "카슈끄지 살인자"로 비판했던 빈 살만 왕세자와 직접 만나 주먹악수까지 하며 증산을 요청했으나 일언지하에 거절당하는 등 체면을 구긴 상태다.

이런 가운데 중국과의 패권전쟁에서 일종의 속도조절에 나서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제재에 나서면서 중국과의 충돌에서는 잠시 힘을 빼는 전략이다.

내부사정이 심상치않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바이든 행정부의 자국 내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다. 퀴니피악 대학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재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31%에 그쳤으며, 민주당원들도 바이든 대통령의 재출마를 원하지 않는다는 결과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강력한 인플레이션이 시작되며 내수경기가 침체된 가운데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믿음이 깨지고 있다는 평가다. 그 연장선에서 우크라이나 전선을 유지하되, 미중 패권전쟁에서는 일정부분 발을 빼려는 움직임이 자주 포착되고 있다.

심지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26일(현지시간) 극우 싱크탱크로 알려진 ‘아메리카퍼스트정책연구소’가 워싱턴 호텔에서 주최한 컨퍼런스에 등장해 "지난 대선은 부정이었다"는 메시지를 내놓는 등 바이든 행정부의 신경을 날카롭게 긁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강력한 인플레이션과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떨어지고 있는 지지율이 바이든 행정부의 숨통을 짖누르고 있다는 평가다. 그 결과 아직 전면전으로까지는 비화되지 않은 미중 패권전쟁만이라도 속도조절에 들어가려는 전략이 엿보인다.

실제로 로이터는 28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이 오는 28일 통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도 언론 브리핑을 통해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의 대화 가능성을 인정한 상태다.

격세지감이다. 미국은 불과 두 달전 남태평양 솔로몬 제도를 사이에 두고 중국과 치열한 외교전을 펼치는 한편 남중국해 인근에서는 군사적 충돌 긴장감도 커진 바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미국 등 서방에 쏟아지는 러시아의 반격을 맞아, 미국이 일단 미중 패권전쟁의 '일시멈춤'을 통해 이른바 선택과 집중을 택했다는 말이 나온다.

문제는 이러한 전략적 포석들이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순간이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추진에 시선이 집중된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 출처=연합뉴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 출처=연합뉴스

만약 펠로시 의장이 대만을 방문할 경우 1997년 이후 처음으로 대만을 방문하는 현직 미 하원의장이 된다.

그런 이유로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우는 중국은 만약 펠로시 의장이 대만을 방문하려고 할 경우 할 수 있는 모든 강력대응에 나서겠다는 각오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대만이 선포한 방공식별구역에 군용기들을 진입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바이든 행정부는 펠로시 의장을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 공화당을 중심으로 펠로시 의장이 대만 방문을 취소할 경우 중국에 굴복하는 인상을 준다며 역시 반발하고 있다. 

심지어 중국도 시진핑 주석 3연임을 위해 총력전을 벌이는 한편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큰 타격을 받은 경제상황을 돌파하며 강력한 리더십 체제를 강하는 중이다.

쉽게 물러날 생각은 없다는 뜻이며 타협의 여지도 적다는 뜻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