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정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장. 사진=박재성 기자
박현정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장. 사진=박재성 기자

“고객들의 고민은 다양하다. 가족 간 상속 분쟁부터 세금 관련 고민, 상속인이 너무 많아서 고민, 직계 상속인이 없어서 고민, 치매가 걸릴까 봐 고민, 시한부 통보를 받았는데 미성년 자녀가 재산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지, 장애가 있는 아이의 장래를 어떻게 지켜줘야 할지 등 매일 우리가 상담하는 고객들 고민은 가정마다 다르고 다양하다.”

‘100세 시대’를 맞아 리빙트러스트, ‘신탁(信託)’이 메가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신탁이 주목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늘어난 수명에 따라 ‘웰리빙’의 삶을 살다 ‘웰다잉’하는 인생을 꿈꾸는 이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열심히 벌어놓은 돈을 죽을 때까지 잘 지키고, 죽은 후에도 잘 통제할 수 있는 방법. 신탁은 재산에 대한 통제권을 발휘하는 최고의 무기로 칭해진다.

하나은행은 노후와 죽음까지 대비할 수 있는 방안들을 연구해 지난 2010년 국내 금융권 최초로 ‘신탁’을 활용한 상속과 자산관리 서비스를 선보이고, 2020년 7월경 ‘100년 리빙트러스트(Living Trust) 센터’를 출범했다.

이를 이끌고 있는 박현정 리빙트러스트센터장은 국내 손꼽히는 신탁 관련 전문가다. 1993년 하나은행에 입사해 PB(Private Banking) 등 다양한 업무를 담당했다.

<이코노믹리뷰는> 지난 7월 7일 하나은행 본점서 박 센터장을 만났다. 아래는 박 센터장과의 일문일답.


리빙트러스트센터에 대해 간단한 소개

“리빙트러스트센터는 통합 자산 플랫폼을 운영하는 곳이다. ‘신탁’이라는 금융상품에 세무 및 법률 등 지원을 더해 고객들의 고민을 해결하고자 한다. 예컨대 부동산 관련 신탁을 설계할 때는 세무 관련 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하고, 법률 관련건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때문에 센터 안에 여러 전문가 집단이 머리를 맞대 고객의 솔루션을 찾는다. 변호사·세무사·부동산 전문가·금융컨설턴트 등 전문가들이 원팀으로 모인 통합 자문 센터라고 보면 된다.”

‘신탁’의 개념을 먼저 알아야 할 것 같다.

“신탁(信託)은 글자 그대로 누군가에게 무엇을 믿고 맡기는 법률관계를 의미한다. 소유자가 특정인에게 재산을 분배하거나 특정한 목적에 사용하기 위해 자기 소유 재산의 전부 또는 일부를 타인에게 이전하고 자신이 지정한 사람을 위해 처분·관리하도록 하는 사법상 제도다. 신탁은 위탁자·수탁자·수익자 등 3당사자 구조로 구성된다. 본인의 재산을 맡기는 고객이 ‘위탁자’, 신탁회사는 고객의 재산을 맡는 ‘수탁자’가 된다. 신탁 재산을 얻는 사람은 ‘수익자’다. 예컨대 위탁자는 ‘금전은 내가 죽을 때까지 매월 나를 위해서만 쓰게 하라’ ‘돈은 딸 4명 중 막내만 와서 찾게 하라’ ‘내가 죽으면 집은 종교단체에 기부하라’ 등의 구조를 아주 구체적으로 짤 수 있다. 수탁자는 전문적인 지식을 기반으로 함께 설계를 구상하고 이행하는 업무를 맡는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신탁이 메가트랜드로 자리 잡았다. 신탁과 고령화 사회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

“예전엔 은퇴 후 10년 정도 열심히 살다가 죽으면 인생이 끝났다. 지금은 이제 55~65세 사이에 퇴직할 경우 거의 40~50년을 살아야 되는 시대다. ‘100세 시대’이자 ‘관리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그런데 인생이 길어지고 점차 나이를 먹게 되면 관리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게 된다. 자신이 가진 자산이 많든 적든 죽을 때까지 안전하게 지키고 현명하게 물려주는 방안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신탁계약을 체결해두면 자신이 치매와 같은 노인성 질환에 걸려 스스로 재산을 관리할 능력이 없는 상황이 되더라도 안전하게 재산을 지킬 수 있고 상속까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진행할 수 있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자동차보험에 가입하는 것처럼 100세 시대에는 자신의 상황에 맞는 신탁을 이용하는 고객들이 늘어날 것으로 본다.”

요즘 그런 말도 있더라. ‘100세 시대지만 90세부터 이후 10년은 병상에 누워 보내는 시간’이라고.

“맞다. 사실 아파서 누워 지내는 시간에 대한 돈, 즉 세금적인 부분을 따져보는 것도 유의미하다. 예컨대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셨을 경우다. 간병시설 이용비나 치료비가 드는데 치매에 걸리면 금융기관에 있는 재산이 동결되는 경우가 많다. 의사 판단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때 보통 자식들은 본인 소유 재산으로 어머니의 병원비를 낸다. 여기서 세금적 측면서 생각할 포인트가 있다. 어머니의 돈은 어머니 본인을 위해서 써야 상속세가 절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식들 돈은 그대로 쓰고 어머니 돈은 묶여있는 형국이다 보니 세금부분으로 봤을 때 상당히 역발상적이다. 고령화 시대에서 신탁이 보다 필요한 이유다.”

‘성년후견제’ 제도와는 어떤 차이점이 있나?

“성년후견제는 독자적인 판단을 하기 어려운 성인이 법률행위나 재산관리 등 업무를 할 때 후견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이는 가정법원의 심판을 받아야만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후견인에 의한 재산관리를 반대하는 가족이 있을 수도 있다. 이 때 신탁은 객관성을 확보하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은행이라는 금융기관이 계약을 집행할 뿐만 아니라 당초 위탁자가 직접 짜놓은 설계대로 이행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언’ 혹은 ‘유언장’과도 비교해달라.

“유언장의 한계는 ‘가장 마지막의 것 하나만 유효하다’는 것이다. 유언장 100장을 써도, 고급 로펌에서 법률자문료 2000만원을 주고 만들어도 죽기 직전 유언 형식에 맞게 녹음된 파일 하나만 있으면 앞의 것들은 모두 무효가 된다. 결국 무엇이 가장 마지막 유언장인지 알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유언장으로 상속을 집행할 경우 절차가 상당히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기관 입장에선 어떤 유언장이 가장 마지막 유언장인지, 무엇이 진짜인지 분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 만일 기혼 여성이 ‘내가 죽으면 모든 재산을 남편이 아닌 엄마에게 상속하라’고 했을 경우에도 상속인인 남편이 이에 동의하지 않으면 은행은 유언장 진위 여부를 판별하기 전까지 금전 집행이 힘들게 된다.”

신탁은 유언장보다 집행기능이 빠르고 강한가?

“그렇다. 수탁을 받은 은행이 그의 재산을 들고 있는 형태, 즉 소유권을 갖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제3자 동의와는 상관없이 계약에 따라 그대로 이행하게 된다. 또 유언장은 이를 집행할 ‘집행자’를 지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문제는 이 집행자의 권한이 상당히 크고 집행에 강제성이 없다는 것이다. 집행자 역시 사람이기 때문에 인정에 흔들려 유언장대로 집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신탁계약의 경우 수탁자가 은행이고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리지 않아 위탁자가 생전에 지정한 대로 이행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