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나노 파운드리 공정으로 세계 최초 반도체 양산을 시작한 삼성전자. 출처= 삼성전자
3나노 파운드리 공정으로 세계 최초 반도체 양산을 시작한 삼성전자. 출처= 삼성전자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부문의 분사가 재계의 화두로 다시 떠올랐다. 국내 한 증권사는 삼성전자(005930) 반도체 경쟁력의 강화를 위해서는 파운드리의 분사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는 최근 삼성전자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반도체 업황과 맞물려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경학적 변화의 관점 

지난 8일 삼성증권은 기획 보고서 <지정학 패러다임 변화와 산업> 시리즈의 첫 번째 주제로 ‘지경학(Geo-economics) 시대와 반도체’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등으로 대표되는 최근의 글로벌 분쟁은 지리적 입지가 각 국가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확대되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하면서 지리적 이점 혹은 한계를 반영해 산업도 변화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고서의 저자인 삼성증권 황민성 연구원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에 대해서도 변화를 제안했다. 황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고객사들과의 접점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파운드리 산업의 상황을 반영해 고객사들이 위치한 미국과 더불어 유럽 등지에도 추가로 공장을 설립하는 등 적극적 현지화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라면서 “파운드리 사업부문을 분사하고 이를 미국에 상장하는 등의 대안도 생각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다른 증권사가 아닌 삼성전자의 계열사인 삼성증권이 발표한 기획 보고서였기에 해당 내용은 관련업계에서 많은 관심 속에 화제가 됐다.

이전과 다른 상황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문의 ‘분사설’이 업계에서 회자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7월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문과 삼성디스플레이의 LCD(액정표시장치) 사업부문이 각각 분사돼 합작 회사를 세울 것이며 삼성디스플레이의 천안 LCD 사업장이 삼성전자 파운드리 공장으로 활용될 것”이라는 소문이 확산됐다.

이러한 소문은 다수의 미디어를 통해 보도되면서 더 확산됐고, 이를 보다 못한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공식 입장을 밝히면서 사그라들었다.

현 시점에서 회자되고 있는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분사는 지난해와 다소 관점이 다르다. 2020년에서 2021년은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호황기였다. 메모리와 시스템을 막론하고 반도체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해 가격이 상승하면서 삼성전자를 포함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기록적인 호실적을 냈다. 당시 제기된 분사설에는 파운드리 부문의 변화를 통한 ‘흐름을 탄’ 삼성전자의 추가 성장에 대한 바람이 섞여져 있었다.

그러나 현재 파운드리 분사가 거론되고 있는 것에는 삼성전자가 마주한 위기상황이 반영돼있다. 최근 삼성전자 반도체 매출의 약 70%를 차지하는 메모리반도체의 가격은 뚜렷한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파운드리. 출처= 삼성전자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파운드리. 출처= 삼성전자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가 지난 5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6월 메모리카드·USB향 범용(128Gb 16Gx8 MLC) 낸드플래시 제품의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개당 4.67달러로 5월의 4.81달러 대비 3.01% 하락했다. D램 가격 역시 하락세다. PC향 범용제품(DDR4 8Gb 기준) D램의 5월 고정거래가격은 3.35달러를 기록해 4월 대비 1.76% 하락했다. 6월에는 5월 가격 수준이 유지됐다.

파운드리 영역에서도 삼성전자가 마주한 상황은 긍정적이지 않다. 30% 이상의 간극이 유지되고 있는 TSMC와의 파운드리 점유율 격차, 삼성전자에서 TSMC로 파운드리 발주를 옮긴 인텔·퀄컴·엔비디아 등의 글로벌 고객사들 그리고 3나노 반도체 양산을 시작했으나 여전히 의문이 남아있는 공정의 수율(생산량 대비 양품비율) 등 문제점들이 산적하다.

“분사 논하기에는 시기상조”

이러한 상황에서 파운드리에 역량을 집중함으로 ‘고객사와 절대 경쟁하지 않는’ TSMC와 종합 전자 기업으로써 애플·인텔·퀄컴 등 글로벌 플레이어들을 고객이자 경쟁사로 둔 삼성전자의 차이가 부각됐다. 반도체 업계 일각에서는 파운드리 부문이 삼성전자에서 별도 법인으로 분사돼 생산 기반을 독자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 밸류체인의 수직계열화를 강조해 온 삼성전자의 원칙을 고려하면 파운드리 부문이 분사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매우 낮다.

TSMC 팹 12A. 출처= TSMC
TSMC 팹 12A. 출처= TSMC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강성철 선임연구위원은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문의 별도법인 분사는 업계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돼온 것으로 고객사와 경쟁할 수밖에 없는 구도를 생각하면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의견”이라면서 “그러나 삼성전자의 시스템반도체와 메모리반도체 사업이 공유하고 있는 R&D, 첨단 공정의 인프라, PIM과 같은 융합 반도체 등의 문제들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삼성전자의 파운드리가 지금 당장 물리적으로 분리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강 연구위원은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현재 메모리반도체 수준의 경쟁력을 가진 이후라면 분사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현 시점에서 그를 이야기하는 것은 다소 시기상조”라면서 “설사 분사가 이뤄진다고 해서 애플·퀄컴·엔비디아 등이 당장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고객사가 될 것이라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