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터키)의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눈길을 끈다.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국으로 활동하며 유럽연합에 가입하기 위해 움직이던 튀르키예가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브릭스(BRICS) 가입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외신의 보도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동북아 요충국이자 역시 미국과 중국, 러시아 사이에 있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바이든 대통령이 G7에서 발언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이 G7에서 발언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치열한 난타전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미국 등 서방을 중심은 G7과 나토 정상회담을 열어 러시아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의 전투가 러시아의 승리로 굳어가는 가운데 강력한 경제 제재 및 무기지원을 바탕으로 압박의 강도를 높이는 분위기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고속기동 포병로켓시스템(HIMARS)까지 지원하는 한편 G7과 함께 러시아 군사생산 및 공급망을 겨냥한 추가 압박카드까지 꺼냈다. 

러시아를 디폴트에 빠트리기도 했다. 러시아는 충분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디폴트에 빠질 상황이 아니며, 실제로 필요한 대금을 송금하기도 했으나 서방의 제재로 디폴트에 빠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됐다. 비유하자면 채무자가 빚을 갚기위해 채권자를 찾아갔지만 채권자가 '채무자와 만나지 않기로 결정'한 후 돈을 받지 않고 일방적으로 신용불량자라 낙인 찍는 것과 비슷하다. 이번 디폴트는 국가적 체면을 강조하는 푸틴 대통령을 겨냥한 러시아 망신주기에 불과하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 등 서방은 여세를 몰아 G7에 초대된 인도와의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인도와 같은 개발 도상국의 사회 인프라, 전력·통신망 및 보건 체계에 6000억달러 지원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미국과 서방의 러시아 에너지 수입 금지 조치가 취해진 후에도 인도는 다량의 러시아 원유를 공급받는 등 엇박자를 낸 바 있다. 그 연장선에서 미국과 서방은 G7을 통해 인도에 대한 구애의 손짓을 보내는 한편 러시아를 고립시킨다는 각오다.

러시아는 3차 세계대전까지 운운하며 반발하고 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미국 등 서방이 크름반도 문제를 지적하자 "나토 회원국이 크름반도에 발을 들인다면 재앙이 될 것"이라며 "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G7이 러시아에 대한 추가제재에 나선 당일 러시아가 민간인으로 붐비던 우크라이나 중부의 쇼핑몰을 폭격해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G7의 추가제재와 이번 공격이 관련이 있다는 증거는 없으나 미국 등 서방은 G7 추가제재가 나온 직후 러시아의 공격으로 민간인 사망자가 다수 나왔다는 점에서 현안을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텔레그램을 통해 "쇼핑센터가 화염에 휩싸였고 소방대원들이 진화 작업을 하는 중이지만 희생자 수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면서 "러시아군에 기본적인 인간성을 바라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이 입증됐다"고 개탄했다.

한편 미국 등 서방이 러시아와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는 가운데 러시아의 강력한 연대 세력으로 평가받는 중국과의 난타전도 벌어지는 중이다. 나토 정상회담을 통해 전략개념을 확장하며 중국을 ‘구조적 도전(systemic challenge)'으로 명시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세라 비앙키 미국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와 덩전중 대만 경제무역협상판공실(OTN) 대표는 27일(현지시간) 21세기 무역에 관한 미-대만 이니셔티브 첫 회의를 열었다. 중국의 반발로 대만이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 가입하지 못한 가운데 별도의 이니셔티브를 통해 미국과 대만의 연대를 키운다는 전략이다.

튀르키예 국기. 출처=갈무리
튀르키예 국기. 출처=갈무리

튀르키예의 한 수?
국제정치가 한 치 앞도 모르는 혼란속으로 빠져드는 가운데 튀르키예의 전략적 행보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이끄는 튀르키예는 오랫동안 유럽과 아시아의 관문이자 강대국들을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온 나라다.

보스포루스 해협(Bosporus Strait)이라는 지정학적 강점을 통해 스스로의 입지를 최대한 살리는 배팅을 즐겨왔다. 실제로 중세시대 십자군 전쟁 당시부터 동서양의 충돌이 벌어진 보스포루스 해협을 보유한 튀르키예는 유럽 입장에서 러시아의 지중해 진출을 막는 최후의 보루다. 

이러한 자신감은 우크라이나 전쟁 정국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영세 중립국 핀란드와 스웨덴이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 가입을 선언하자 튀르키예는 자국이 테러단체로 칭하는 쿠르드족 정당 ‘쿠르드노동자당(PKK)’이 스웨덴과 연결고리를 가졌다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내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어깃장은 나토와 미국에 대한 도전이라기 보다는 F-35 전투기 등 미국의 최신식 무기를 받으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것이 중론이지만, 튀르키예의 대외정책이 지정학적 강점을 바탕으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왔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튀르키예가 나토의 대항전선으로 여겨지는 브릭스에 가입할 수 있다는 말이 나와 눈길을 끈다. 

브릭스는 브라질(B), 러시아(R), 인도(I), 중국(C), 남아프리카공화국(S) 등 신흥 경제 5개국 모임이며 러시아와 중국이 주도한다. G7 및 나토 정상회담 직전 브릭스 플러스 회의를 열어 강력한 존재감 과시에 나서기도 했으며 최근 이란과 아르헨티나가 추가 가입을 신청하기도 했다.

여기에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아르헨티나와 함께 튀르키예가 합류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주요 외신에 따르면 브릭스 플러스 회의에 참석했던 리커신 중국 외교부 국제경제사 사장은 27일(현지시간) 브릭스가 G7 및 나토에 대항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긋는 한편 "포용과 개방을 바탕으로 언제나 열려있다"고 밝혔다. 그 포용과 개방의 대상 중 하나가 튀르키예일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국제 외교가에서는 나토 회원국인 튀르키예가 전격적으로 브릭스에 참여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다만 지금까지 튀르키예가 보여준 줄타기 외교를 고려할 때 언제든 새로운 국면이 펼쳐질 수 있다고 본다.

러시아와의 관계가 그렇다. 푸틴-에도르안 시대에 접어들며 한결 누그러지기는 했으나 사실 튀르키예와 러시아는 오랫동안 대립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15년 러시아의 전투기를 튀르키예가 격추한 사건이 벌어지며 양국은 전쟁 직전까지 갔으나 뒤이어 터진 튀르키예 쿠데타 시도에서 러시아가 에도르안 정부에 결정적인 도움을 제공, 양국 관계가 극적으로 회복된 사례가 있다. 

힘의 역학관계에 있어 튀르키예의 외교적 후각은 상당히 예민하다는 뜻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22일(현지시간) 튀르키예를 방문한 것도 마찬가지다. 2018년 10월 터키에서 사우디 출신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살해된 후 양국은 크게 대립했으나 미국과의 핵협상 타결에 나설 것으로 보이는 이란을 견제하는 한편 반 시아파 벨트의 확장을 꾀하는 사우디의 전략과, 글로벌 경제가 휘청이며 엄청난 타격을 받아 사우디의 지원이 필요한 튀르키예의 판단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브릭스 회의. 출처=연합뉴스
브릭스 회의. 출처=연합뉴스

"걱정된다"
한국은 윤석열 정부를 기점으로 완전히 미국의 손을 잡았다.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 가입하는 한편 윤석열 대통령이 나토 정상회담에도 참석했다.

중국은 강하게 반발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계열 글로벌타임스는 28일 "윤석열 정부가 미국에 의존해 점차 외교적 독립성을 상실할 경우 중국과의 관계는 더 복잡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물론 국익을 위한 최선의 결정이겠지만, 정부의 이러한 최근 기조가 자칫 동북아 요충국인 한국의 입지를 불안하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특히 우리가 가진 카드를 너부 이르게 공개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지정학적 위치를 충분히 활용하는 한편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꾸며 국익을 따라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계속하는 터키의 얄미운 외교정책에도 일정부분 참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