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상승과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p 인상)이 한국증시를 찍어 누르고 있다. 여기에 가파른 금리인상에 따른 경기침체 우려까지 커지면서 코스피는 연저점을 경신, 2400선도 무너졌다.

투자자들은 패닉에 빠졌다. 코스피 하락에 저점매수 포지션을 잡았던 투자자들은 “바닥 밑에 지하가 있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존버’하며 무대응으로 대응하거나, 손실을 감수하고 팔아 현금을 보유하거나, 테마주나 배당주 등에 투자하거나, 금이나 원자재 등 대체투자에 나서거나,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도생’하는 시대가 됐다.

“28년 만의 자이언트스텝”, “1년7개월만의 코스피 2400 붕괴”, “13년만의 환율 1300원”, “24년만의 美 CPI 최대폭 상승” 등 기록적인 쇼크들이 연이어 나오는 증시에서 투자자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증권사 리서치들도 하반기에 대한 수정 전망을 내놓기 바쁜 상황에서 투자자들의 혼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첩첩산중’ 코스피

올해 증시는 다양한 대내외적 악재에 몸살을 앓았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시장에 풀렸던 유동성을 회수하기 위한 각국 중앙은행들의 움직임이 본격 나타난 데다, 공급망 이슈로 인한 물가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했다. 이런 와중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터졌고, 중국은 코로나 재확산으로 봉쇄조치에 들어가면서 공급망 문제를 한층 심화시켰다.

심지어 물가 상승폭이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 되자 미국 연준은 28년만에 기준금리 0.75%포인트(p)를 인상하는 자이언트스텝을 결정했다. 한국은행도 지난해 11월 0.25%p 인상 후 올해 1월과 4월, 5월 각 0.25%p씩 세 차례 금리를 인상했으며, 7월에는 0.5%p를 인상하는 빅스텝을 결정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코스피와 코스닥이 이틀 연속 연저점으로 추락한 6월 23일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이 업무를 보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코스피와 코스닥이 이틀 연속 연저점으로 추락한 6월 23일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이 업무를 보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금리인상 기조에서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강해지면서 원‧달러 환율이 치솟았다. 원‧달러 환율은 6월 23일 기준 13년 만에 1300원을 돌파하는 등 지속 강세를 띄고 있다. 1년 전 환율이 달러당 1128.5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1년 새 15.3%(23일 달러당 1301.2원 기준) 급등했다. 금리상승으로 주식시장 매력이 낮아진 상태에서 원‧달러 환율의 상승은 국내 증시에 외국인의 이탈을 야기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다섯 달 연속 순매도세를 이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월별 순매도 규모는 △1월 1조6770억원 △2월 2조5000억원 △3월 4조8660억원 △4월 5조2940억원 △5월 1조6140억원 등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6월에도 5조5043억원(23일 기준)을 순매도함으로써, 사실상 6개월 연속 ‘셀코리아’를 지속했다.

증권가 리서치 눈높이 수정 중

예상치 못한 하락폭으로 주식시장이 패닉에 빠지면서 코스피는 증권사 리서치센터들 기존 밴드 전망치(2400p~2600p)를 이미 이탈한 상황이다.

지난 6월 10일 종가 기준 코스피지수(2595.87p)가 2600선이 깨진 뒤 2거래일만인 14일(2492.97p) 2500대도 밀렸고, 20일(2391.03) 2400p도 무너졌다. 지난 2020년 11월 4일 2357.32p를 기록한 뒤 1년 7개월만의 최저치다.

급속한 하락으로 코스피가 증권사들이 전망한 밴드를 이탈하자 리서치센터들은 밴드 조정에 나섰다. 현재 주요 증권사들의 하반기 코스피 전망 밴드 하단은 모두 2500선 밑에 형성돼 있다.

NH투자증권과 다올투자증권은 하단을 2200p로 제시했으며, 이베스트투자증권(2220p)도 2200에 가까운 수준이다. 메리츠증권과 한화투자증권‧현대차증권(각각 2300p), 하나금융투자(2350p) 등도 밴드 하단이 2400p 밑이다.

IBK투자증권과 키움증권‧신한금융투자(각각 2400p), 하이투자증권(2450p)은 2400대를 하단으로 설정했다. 다만 하이투자증권과 IBK투자증권은 제시한 코스피 밴드 전망치에 대한 수정을 고려하는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 한국투자증권과 삼성증권, 대신증권, 유안타증권 등은 현재 수정하고 있는 중으로, 이달 내 수정 전망치를 내놓을 계획이다.

NH투자증권 관계자는 “과거 경기둔화 우려를 반영한 주식시장의 저점이 PER 8배 초반에 밀집돼 있었지만 현재 코스피 이익 수준을 감안하면 주가지수 하단을 PER 8.1배인 2200p 수준으로 설정하는 것이 적절하다”며 “경기둔화 우려가 잠재돼 있는 상황에서 코스피 PER이 장기 평균 수준을 넘어서기 쉽지 않다고 판단, PER 장기 평균 10배를 적용한 2700p를 상단으로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물가 잡혀야 금융시장 반등

주식과 채권시장이 동시에 무너지는 상황이다. 금융시장이 안정을 찾고 반등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물가상승률 둔화 및 시장 예상치 하회의 교집합이 연속적으로 나타나야 한다.

장현철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글로벌 주식과 채권의 월별 성과를 보면 물가상승률이 전월보다 상승하는 동시에 시장 예상치를 상회할 때 충격이 크게 나타났다. 지난 2월과 4월, 6월이 이에 해당한다”며 “충격 발생마다 점차 낙폭이 확대되고 있는데 시장의 기대감과 인내심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장 연구원은 이어 “3월, 5월과 같이 물가상승률이 전월대비 축소 됐거나 시장 예상치를 상회하지 않는 경우에는 비교적 양호한 모습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하반기 인플레이션 정점 통과 확인으로 금융시장이 의미 있는 반등을 나타낼 가능성을 높게 전망하면서, 6월과 7월, 8월의 물가 발표 후 인플레이션 정점 통과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는 9월 중순을 반등의 시기로 내다봤다.

다만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22일(현지시간) 파월 연준의장은 상원 은행위원회에 출석해 지속적인 금리인상을 이어갈 것이라고 발언하며, 경기침체 가능성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영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당분간 주식시장은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라는 두 악재를 둘러싼 불확실성을 반영하며 변동성을 이어갈 공산이 크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