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원칙은 흔들리는가> 민재형 지음, 월요일의 꿈 펴냄.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대부분 사람이 윤리적 삶을 살고 싶어한다. 기업은 물론 공공 기관과 대학 등 대다수 조직들도 윤리 경영을 강조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정치적, 사회적으로도 공정, 정의, 원칙, 윤리 등이 시대적 화두가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그다지 윤리적이지 못하고, 조직체들은 불공정과 무원칙한 행태로 지탄받기 일쑤다. 정치권에선 내로남불 시비가 끊이질 않는다.

왜 개인의 윤리적 삶, 조직의 윤리적 경영이 제 뜻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일까? 저자는 이 같은 괴리를 ‘제한된 윤리성’의 관점에서 풀어낸다.

인간의 두뇌 능력은 무한하지 않다. ‘인지적 한계’가 있다. 이로 인해 종종 윤리적 의사결정이 의도치 않게 회석되거나 왜곡된다. 비윤리적 판단이나 행동이 나타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것을 ‘제한된 윤리성(bounded ethicality)’이라고 부른다. 저자는 ‘무심코 걸려드는 비윤리의 덫’으로 비유한다.

책에는 ‘제한된 윤리성’의 근본 원인이 집중 분석돼 있다. ‘자기 기여의 과대평가’ ‘워비곤 호수 효과’ ‘내재적 태도’ ‘표준의 조정’ ‘이해 충돌’ ‘비윤리성의 기억 상실증’ ‘도덕 면허’ 등 비윤리적 판단이나 행동을 초래하는 18가지 이유가 나온다.

▲자기 기여의 과대평가

인간은 자기 업적을 과대 평가하려는 습성이 있다. 자기 기여의 과대평가(overclaim one’s own credit)라고 말한다. 이것은 상대방 입장에서 보면 비윤리적인 행동이다.

실제로 부부간의 가사 분담률이라든지 수업 시간의 팀 프로젝트에 대한 팀원들의 기여도 등을 조사해보면 전체의 합이 100%를 넘는 경우가 흔하다.

기업은 자사가 100% 투자한 프로젝트에는 가장 뛰어난 직원들을 투입한다. 하지만 타사와 공동으로 수행하는 프로젝트에는 그저 그런 직원을 보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프로젝트 완료 후 이익 분배 시 일어날 수 있는 기여도 분쟁을 예상하여, 혹시라도 원하는 만큼의 이익을 가져오지 못할 바에는 굳이 전력을 다할 필요가 없다는 심리 때문이다.

▲워비곤 호수 효과

워비곤 호수는 미국 라디오 쇼에 나왔던 가상의 마을 이름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별 근거도 없이 자신들이 남들보다 잘 생겼고, 훨씬 똑똑하며, 힘이 세다고 믿고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자기 능력을 과신하는 현상을 ‘워비곤 호수 효과(Lake Wobegon effect)’라고 부른다. 사실 사람들은 우연에 의한 성공도 자기 능력 덕분이라고 믿는 자기위주 편향(self-serving bias)’에 곧잘 빠지곤 한다.

한 조사에 의하면, ‘나는 평균보다 우수한 인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응답자의 70%에 달했고, 이 가운데 80%가 자기 능력에 비해 연봉이 낮다고 불평했다고 한다. ‘회사에서 당신의 기여도는 어느 정도인가?’라는 질문에는 무려 80% 이상이 ‘잘하는 편’이라고 대답하여, 실제보다 30% 이상이 자신을 과대평가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기 기여의 과대평가는 도덕성에도 적용된다. 프란체스카 지노(Francesca Gino)는 사람들이 윤리적 표준을 지키는 자기 능력을 과대평가한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그에 의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다른 이들보다 도덕적이고, 미래에도 다른 이들보다 윤리적으로 행동할 것으로 믿고 있다. 또한 다른 사람이 저지른 일탈 행위는 자신의 행위보다 훨씬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지나친 자기 과신과 낙관주의는 근거 없는 희망을 낳는다. 냉철해야 할 판단을 그르치게 할 수 있다.

▲표준의 조정

‘표준의 조정(standard adjustment)’이라는 말이 있다. 표준 또는 원칙에서 한 발짝 벗어나게 되면 처음에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이를 정당화 하려 한다. 하지만 한번 이동한 원칙은 제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다시금 새로운 표준의 역할을 한다.

부정은 항상 소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공직자의 부정부패도 처음에는 작은 식사 자리부터 시작되곤 한다. 민원인과의 작은 식사 자리가 자신의 원칙을 이동시키고 이동된 원칙은 새로운 원칙이 되어 점차 애초에 지키려던 원칙과는 멀리 떨어져 가게 된다. 에너지 기업 ‘엔론’을 무너뜨린 분식회계 사례도 이런 몰락의 경로를 밟았다.

책에는 좋은 의사결정을 위한 아홉 가지 팁(tip)도 소개돼 있다. 그 중 ‘기본값 재설계하기’는 현상유지 편향’에서 벗어나야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기본값 재설계 하기

인간은 현재에 머물고자 하는 관성이 있다. 현재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을 불안해하고 불편해한다. 자기가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일을 처리하는 것을 가장 편하게 여긴다. 낯선 방법을 싫어한다. 이를 ‘현상유지 편향(status-quo bias)’이라고 말한다.

현상유지 편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있을까? 현상유지 편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습관을 바꾸어야 하는데,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바꾸고 싶은 습관이 있다면 다음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번 던져보자.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일과 생활을 계속하면 그토록 바라는 꿈과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정직하다면 아마도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이러한 성찰적 문답은 우리를 현상에서 벗어나게 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인간의 현상유지 편향은 모든 정책 입안에서 ‘기본값(default)’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기본값이란 내가 특별히 다른 선택을 하지 않는 한 나에게 적용되는 기본적인 규칙이나 제도를 말한다. 인간은 대부분 적극적인 의사결정자라기보다는 소극적인 의사결정자이다. 그래서 특별한 선택을 일부러 하기보다는 주어진 기본값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선호한다.

기본값은 우리에게서 지금 무엇을 선택해야 한다는 정신적인 고통을 제거해준다. 하지만 기본값이 잘못 설정되었을 경우,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개인적 비용뿐만 아니라 사회적 비용도 증가시킨다. 금융상품이나 복지제도 등 모든 정책에서 기본값을 잘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