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개최된 인문가치포럼에서 ESG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최태원 회장. 출처 : SK
2020년 10월 개최된 인문가치포럼에서 ESG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최태원 회장. 출처 : SK

최태원 SK그룹(이하 SK) 회장의 부친 故최종현 회장은 역대 우리나라 기업인들 중에서도 뛰어난 경영 역량으로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미국 시카고 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를 수료한 최종현 회장이 1979년 직접 구축한 SK그룹의 경영관리체계 ‘SKMS(Sunkyoung Management System)’는 지금까지 벤치마킹될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SKMS는 1990년대 시대상을 반영해 한 단계 진화했고 현재는 SUPEX(수펙스)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같은 최종현 회장의 체계적인 경영관리 시스템을 앞세운 선경그룹(SK의 전신)은 재계 50대 기업에서 5위의 대기업으로 급성장하게 된다. 

최종현 회장은 인품측에서도 존경받던 인물이다. 최종현 회장은 평소 그룹 구성원들을 알뜰하게 챙기는 한편, 미래 인재 육성에도 적극적이었다. 직원들에 대한 교육이나 연수 개념이 생소했던 1975년 설립된 선경연수원(현 SK아케데미)가 대표적인 사례다.

1974년 사재를 출연해 설립한 한국고등교육재단은 미래인재 육성을 위한 주춤돌 역할을 했다. 평소 최종현 회장은 ‘국가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인재 육성’을 강조했고 이같은 의지가 재단 제1 운영원칙이 됐다. 재단은 장학생들에게 해외 유명 대학 등록금, 5년간 현지 생활비를 지원하는 혜택을 제공했다.

최종현 회장의 경영 방침과 인재 육성 의지는 최태원 회장에게 고스란히 이식됐다. 최태원 회장은 회사 구성원들의 행복한 삶을 중시하는 ‘SK의 행복 경영’, 그리고 SK의 성장, ESG 경영, 사회적 가치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최종현 회장 유지를 녹여내고 있다.

최태원호 20년, 재계 순위 2위로 발돋움 

최태원 회장은 1998년 9월 SK그룹(이하 SK) 회장에 취임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국제통화기금(IMF) 통제를 받던 시절로, 이른바 ‘대한민국 경제 암흑기’로 회자된다. IMF 위기 직후에도 위기는 계속됐다. 환율·유가·금리 등 기업성과와 직결되는 대외환경이 급변하면서 국내 다수의 대기업들이 하나둘 쓰러져 가던 시절이다. 1998년 기준 국내 재계 서열 30위권 대기업 중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기업은 절반 수준이다.

최태원 회장은 20년 전 취임사를 통해 SK가 직면한 절박함을 강조하는 동시에 혁신을 경영전면에 내걸었다. 최태원 회장은 “우리는 혁신적 변화(Deep Change)를 통해 생존할 것인가 아니면 천천히 사라질 것인가(Slow Death)라는 두 선택지를 마주한 기로에 서 있다”면서 그룹의 체질 변화를 선언했다. 

결론적으로 최태원 회장이 이끈 체질 변화는 20년 만에 SK 자산을 10배 가까이 증가시키는 눈부신 성과로 이어졌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4월27일 2021년 자산총액 기준 ‘2022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현황’을 발표했다. SK의 자산총액은 2020년 대비 52조4390억원 늘어난 291조9690억원을 기록하면서 257조8450억원을 기록한 현대자동차그룹을 제치고 17년만에 재계 순위 2위로 뛰어 올랐다. 최태원 회장 취임 당시인 1998년 자산총액은 34조1000억원이었다.

최태원 회장이 취임 직후 실행에 옮긴 SK의 체질 개선은 ‘글로벌’이었다. 해외시장 개척, 수출 드라이브 등을 통해 내수 중심이었던 SK 사업 역량을 글로벌로 확장시켰다. 1998년 기준 약 8조3000억원이었던 SK의 글로벌 매출액은 2020년 62조7000억원으로 증가했다.  

최태원 회장은 2002년에는 그룹 지배구조 변화를 선언했다. ‘따로 또 같이’ 경영을 통해 상하관계가 굳어진 전통적인 그룹 지배구조에서의 탈피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SK 그룹과 계열사 관계는 ‘지배-종속’ 관계가 아닌 ‘기업 문화를 공유’하는 관계로 전환됐다.

출처 : SK바이오사이언스
출처 : SK바이오사이언스

‘신의 한 수’였던 반도체, 그리고 새 성장 동력 ‘바이오’

최태원 회장의 경영 능력을 가장 단적으로 입증할 수있는 것은 ‘반도체’와 ‘바이오’다. 현대전자 자회사였던 ‘하이닉스 반도체’는 2000년대 초까지 국내 굴지의 반도체 기업이었다. 그러나 당시 하이닉스는 불안정했던 반도체 업황에 운영난까지 겹치면서 적자가 누적되던 상황이었다. 경영난은 생산 차질로 이어졌고 고객사들로부터의 평판은 바닥을 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2010년께 사세 확장을 고민하던 최태원 회장은 하이닉스 인수를 통한 반도체 사업 육성을 타진한다.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알려진 내용에 따르면 SK 경영진 대부분은 하이닉스 반도체 인수에 부정적 의견을 피력했다.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1978년 故최종현 선대회장 의지로 설립됐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선경반도체 존재였다. 두 번째는 계속된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글로벌 기업들이 투자 규모를 줄이고 있던 당시의 업황이었다. 

최태원 회장은 반도체 산업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최태원 회장은 하이닉스 인수를 결정하기 직전까지 반도체 기본 원리, 반도체 역사, 세계적 기술 동향을 직접 학습하는 열정을 보여줬다. 이를 통해 최태원 회장은 하이닉스 인수에 대한 내부 반대를 직접 설득했고 2011년 인수에 성공했다.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2위 기업 ‘SK하이닉스’ 출범의 순간이다.  

SK는 하이닉스 인수 이후에도 입지 확장을 지속하고 있다. 2017년 구성된 ‘베인캐피탈 컨소시엄’을 통해 일본 전자기업 도시바社의 메모리반도체 사업부문을 인수했다. SK하이닉스는 도시바에 대한 지분 투자로 성장성이 큰 낸드플래시 분야 사업에서 기술적 우위를 확보했다. SK는 2015년 11월 SK머티리얼즈, 2017년 8월 SK실트론 출범을 통해 각각 삼불화질소(NF3) 제조 경쟁력과 반도체용 웨이퍼 제작 역량 확보에도 성공했다. 

SK하이닉스 M16 조감도 출처 :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 M16 조감도 출처 :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는 2020년 미국의 전자기업 인텔 사의 낸드플래시 사업부문을 90억달러(약 10조3104억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2022년 6월 현재까지 국내 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이다. 이를 통해 SK하이닉스는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전반에 걸친 글로벌 입지를 확고히 했다. 

SK는 바이오 분야 M&A에서도 큰 손으로 통한다. SK는 바이오사업을 ‘제2의 반도체’로 집중육성한다는 방침이다. SK의 투자형 지주회사 SK㈜는 미국 바이오·제약 위탁개발생산(CDMO)기업 앰팩(AMPAC)의 지분 100%를 인수했다. 인수금액만 7000~8000억원대에 이르는 대형 M&A였다.

다수의 해외 바이오 기업들과 기술제휴 및 인수합병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했다. SK의 바이오사업은 현재 신약 및 의약 중간체를 연구개발(R&D)하는 SK바이오팜, 국내와 유럽 생산을 담당하는 SK바이오텍, 미국 생산을 맡는 앰팩 등 3각 편대가 완성됐다. 

SK는 ‘탄소중립’ 실현을 통한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친환경 사업부문 사업 확장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SK관계자는 “글로벌 시장을 기반으로 한 수요 확장, 미래 성장 가능성을 고려한 전략적 투자 등의 선택은 SK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면서 “여기에는 외부의 격렬한 반대의견에 맞서 끝내 자신의 판단을 경영에 관철시킨 최태원 회장 의지가 강하게 반영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