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소기업 진화생존기> 오태헌 지음, 삼성글로벌리서치 펴냄.
이 책은 진화하며 성장하는 일본 중소기업들을 집중 분석한다. 저자에 의하면, 일본 강소기업의 특징은 ‘지속가능성’이다. 이들 기업은 오로지 한 분야에 매진하며 기업의 모든 역량을 해당 분야의 진화에 쏟아붓는다. 저자는 이를 ‘깊은 경영(딥 경영)’이라고 부른다.
딥(DEEP)은 이중성(Duplicity), 전문성(Expertise), 확장성(Expandability), 영속성(Permanency) 등 경영 4요소의 영문 머릿글자에서 따왔다.
▲이중성=일본 강소기업들은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전통을 지키고 이어나가면서도 혁신을 통해 진화를 도모했다.
고메다 커피는 한국에서는 요즘 보기 힘든 옛날식 다방이다. 테이블마다 신문 잡지가 비치돼 있고, 옆 좌석과는 칸막이로 분리되어 있다. 실내 인테리어도 옛날 경양식 레스토랑처럼 보인다.
고메다 커피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직원이 테이블로 와서 직접 주문을 받고 서빙을 해준다는 점이다. 스타벅스 등 현대적인 커피숍이 불편한 중장년층이 이 곳에선 눈치 보지 않고 오래 머문다. 1968년 동네 커피집으로 시작된 고메다 커피는 2020년 900여 개 매장을 거느린 대형 체인으로 성장했다. 영업이익률은 무려 28%나 된다.
▲전문성=여기서 말하는 전문성은 직업으로 인정받는 프로페셔널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가 인정하고 동료들의 존경을 받는 전문가를 말한다. 흔히 말하는 ‘달인’과도 비슷하지만, 그들의 전문지식은 노벨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확장성=사업다각화를 미리 준비하되 원래의 우물을 팽개치고 다른 우물을 넘보는 우를 범하지는 않는다. 뿌리가 하나인 나무가 여러 개의 가지를 치듯 사업을 확장해나간다. 회사 내에 축적된 유무형 자산이 비즈니스의 핵심 역량이 될 수 있도록 사업을 넓혀간다. 이런 기업은 지향점이 분명하다.
아키모토 베이커리는 1947년 개업한 평범한 빵집이었다. 1995년 한신 대지진 당시 피해지역에 2000개의 빵을 보냈는데 도로와 다리가 붕괴된 탓에 전달이 지연돼 30%를 폐기해야 했다. 이후 아키모토 베이커리는 최장 37개월까지 보존 가능한 빵통조림(PANCAN)을 개발했다.
빵통조림은 캔 안에 내화성과 흡습력을 갖춘 특수종이를 깐 다음, 발효시킨 반죽을 넣어 그대로 굽는 방식이다. 빵을 식힌 뒤 캔 속에 탈산소재를 넣고 캔 뚜껑을 덮으면 내부가 무산소 상태가 된다. 아키모토 베이커리는 구호품으로서 가치가 높은 빵통조림을 국내외 재해 지역민이나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는 사회공헌에도 열심이다.
▲영속성=오사카 장수기업들의 모임인 ‘오사카 노렌 백년회’는 ‘영속은 기업의 진수’라는 규범을 갖고 있다. 기업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을 영속성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기업이 영속하려면 오랜 기간에 걸친 신용축적이 있어야 한다. 그 결과로, 장수기업들의 가치는 직원들에게 체화된 기술, 경영 노하우, 보유 브랜드 와 같은 무형(無形)의 자산으로 측정되는 경우가 많다. 매출이나 이윤보다는 이런 무형자산이 기업 영속성을 보장해준다는 것이다.